"어머니, 리나가 아파요~"

작성자 : 정진선 | 조회수 : 4,266 | 작성일 : 2012년 9월 13일

“리나가 많이 아프다고 전화가 왔는데.....”
이른 아침 막 눈을 뜨고 일어나려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그래요? 내가 담임선생님과 통화해 볼게요.”

아직 이른 시간이기에 식사 준비를 하며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담임선생님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수녀님과 함께 병원에 갈 것이며 상태를 봐서 귀가 조치 할 수도 있다 라는 말씀이셨습니다. 별 문제도 아닌데 오히려 선생님께서는 리나를 아프게 한 사람처럼 미안한 느낌으로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주말부부입니다.
저는 지적장애인시설에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을 하고 주말에 집으로 갑니다.
남편은 춘천 집에서 철원으로 출퇴근 하고, 큰아이는 집에서 대학에 다니고 있습니다.
네 명의 가족이 네 집 살림을 합니다.

오랜 세월 리나와 떨어져 살았지만 학교가 있는 청원군은 옆집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리나는 초등학교 5학년부터 호주와 핀란드, 덴마크에서 생활했습니다. 청원군은 대한민국에 있는 곳이며, 그것도 제가 생활하고 있는 서울로 부터는 자동차로 1시간 30분만 달려가면 도달할 수 있는 지척에 있습니다.
양업고등학교에 입학 후 1학년 1학기, 2년간의 공백기 그리고 3학년 2학기를 다시 양업에서 생활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놀라며 묻습니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2년이나 학교를 비웠는데 다시 제 학년으로 받아줬단 말이예요? 무슨 특혜가 있었나요?”
그에 대한 대답은 “네. 특혜를 받았습니다.”입니다.

물론 유럽으로 떠날 때는 언제 돌아온다는 기약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다면 그 곳은 두 말 할 것 없이 양업입니다.
덴마크에서 입국 후 수차례에 걸친 학교와 충북교육청과의 논의 과정을 통해 재입학이라는 과정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요구 하는 여러 종류의 과제물과 지필시험, 면접시험이 그것이었습니다.
2년간 유럽 학교에서 받아온 성적표와 아포스티유 확인 서류등을 기본서류로 산악등반, 여수엑스포방문, 세 곳의 성지순례, 가족관계, 핀란드 덴마크 한국 교육비교 등을 레포트로 작성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막 입국하여 시차적응이나 휴식의 시간 없이 과제를 해야 한다는 것은 여간 부담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과제 발표일로부터 제출일인 시험일까지는 불과 10여일의 시간 밖에 남아있지 않은 상태였구요. 부여된 과제들이 리나 혼자 할 수 있는것보다 가족이 함께 움직이고 체험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것 역시 걸림돌 중에 하나였습니다. 토플시험일을 코 앞에 두고 있었지만 계획을 세워 레포트들을 작성해 갔습니다.

드디어 시험일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아침 일찍 학교로 향했습니다. 찌는듯한 폭염에 쏟아지는 여름비는 습도를 높여 불쾌지수를 끌어올리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오전에는 지필고사, 오후에는 면접고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물론 면접고사는 삼년전 입학시험때와 마찬가지로 부모 동석으로 이루어졌으며 여섯 분의 면접관들로부터 받는 질문에 대답해야 하는것 또한 쉬운일이 아니었습니다. 지금은 그 때의 질문과 답변이 다 기억나지는 않지만 리나가 했던 답변 중 한 가지를 적어봅니다.
학교로 돌아오는 것이 대학에 쉽게 진학하기 위한 선택은 아닌가? 라는 질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리나의 답은

“대학을 쉽게 가는 방법은 양업에 있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양업으로 온다면 더 어렵게 가는 길이 되는 겁니다. 저는 3년 내내 한국에서 공부한 친구들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과 대등한 대결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 이유로 제게는 대학입시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학교생활기록부가 없습니다. 대학에서는 3학년1학기까지의 자료를 요구하는데 제게는 그 부분이 비어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양업을 선택함으로 인해 감수해야 하는 마이너스적 요소입니다. 만약 학교가 아닌 검정고시를 선택했다면 더 쉽게 대학에 진학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대학에 입학하기 까지 몇 달 간의 자유로운 시간이 주어지게 되므로 저의 취미활동이나 독서등 많은 부분에서 여유를 가질 수도 있을겁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업은 제가 돌아가야하는 곳입니다.  대학진학이 저의 목표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
아마 이런 내용이었던것 같습니다.

모든 시험이 끝나고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합격 결과가 나왔습니다. 재입학은 신입생으로 입학 하는 과정보다 더 어렵고 험난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충분히 의미 있고 가치있는 일이었습니다. 돌아오는 차 속에서 오늘 하루 리나를 위해 시험 문제를 출제해 주시고 오랜 시간을 할애하여 논의하고 결과를 도출해 주신 학교에 감사했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한 명의 재입학생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내어주실 수 있을까? 이것은 하지 않아도 그만인 과정일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그러니 리나는 재입학 과정에서 신입생 입학보다 더 어렵고 힘든 과정들을 밟아야 하는 어려운 특혜를 받은 것이 맞습니다.

8월19일 리나는 다른 양업의 학생들과 똑같이 큰 짐가방을 들고 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지금, 학교에 돌아간 리나는 보통의 입시생들과 마찬가지로 입시스트레스속에 있습니다. 어떤 분은 얘기합니다. “교육의 최고라고 하는 핀란드와 덴마크에서 교육받고 온 아이가 왜 그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 질문에 저는 이렇게 말합니다. 교육적 변화는 학생 한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학생은 이제 열여덟의 청소년입니다. 변화되었다 하더라도 학생이 소속된 가정과 사회, 학교, 환경이 변화된 곳이 아니라면 표출되어 나타낼 수 없습니다. 그러한 면면은 자신의 방어기제 속에 숨어들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교육의 주체는 학생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에서는 학생의 일을 부모와 상의하길 원합니다. 상의해야할 당사자는 학생입니다. 그 이후에 부모와 논의 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학생의 말에 귀 기울이고 학생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리나가 경험했던 호주와 핀란드, 덴마크의 학교에는 학생이 학교생활하면서 불편한 것은 무엇인지 또 어려운 것과 즐거운 부분을 묻고 체크하십니다. 또 리나와 같은 교환학생의 경우 변화된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모니터 하십니다. 이러한 모든 것은 매우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교사와 학생이 대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집니다. 교사가 학생에게 명령하거나 지도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학생은 거리감 없이 교사에게 다가가 자신의 문제에 대해 의논하기를 원합니다. 교사역시 그렇게 다가오는 학생에게 다그침이나 훈계의 방식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교육전문가들이 선진교육탐방에서 얻어와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런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근사한 학교 건물과 교육기자재를 보러 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양업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런 변화에 앞장서 왔습니다. 그것을 알기에 학교가 양업을 선택 했듯이 학생들 역시 양업을 선택한 것입니다. 이제 밑그림이 완성 되었다면 그 위에 색을 입히고 명암을 주는 것은 교사와 운영진의 몫입니다.  그 그림 속에 학생들이 들어간다면 피카소의 명화가 되거나 웬디워홀의 작품이 될 수 도 있을겁니다.

장애인가족들과 저녁식사를 마친 시각 담임선생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옵니다. 병원에 갔던 일과 보건실에서 쉬었던 상황, 내일 상태를 보고 조기 귀가를 할 것인지 다시 결정하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 까지 퇴근도 하지 못하셨단 말인가?
선생님께는 가족도 있고 사생활이 있는데....
외국의 학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현상입니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점점 더 미안한 마음입니다.

리나가 한국에 돌아온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그 동안 양업고재입학과 토플시험, 세계레저대회봉사, 여성중앙9월호에 덴마크교육에 관한 원고 기재, 대학수시입시등으로 바쁘게 보냈습니다. 오늘 발병의 원인은 과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로에 특효약은 휴식이지요.

아이들은 사고도 치고 아프기도 하면서 자랍니다. 자기조절법이나 병을 관리하는 방법 등을 알려주고 잘 실행할 수 있도록 살펴주는 정도면 됩니다. 나머지는 스스로 치유 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아이들은 인생이라는 경기장에 나선 선수입니다. 경기장에는 선수만 나갈 수 있습니다. 감독도 코치도 나가면 안됩니다. 부모는 그 경기의 응원단장입니다. 붐비나를 흔들며 열심히 응원만 하면 됩니다.
“힘내라, 힘내라, 우리 선수 힘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