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찾아서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141 | 작성일 : 2021년 6월 25일

평화를 찾아서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그 집의 평화를 위해/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하고 인사하여라/ 거기 평화 바라는 사람/ 살고 있으면 평화 머물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게 되돌아올 것이다/ 네 집안에 평화/ 네 나라에 평화/ 온누리를 향해 평화의 노래 불러라/ 네 겨레와 벗들/ 나 사랑하기에/ 평화의 노래가 넘치게 하리라/ 남쪽에도 평화/ 북쪽에도 평화/ 우리나라 위해 평화의 노래 불러라.”

내 젊은 시절 애창곡 중 하나인 김정식 작사 작곡의 평화의 노래이다. 통계에 의하면 사람이 한평생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사랑, 그다음이 놀랍게도 평화라 한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 귀한 가치이고 실현하는 것이 너무 어려우므로 가장 많이 듣는 말인지도 모른다. 평화는 우리에게 가장 아쉽고, 가장 필요하고, 가장 큰 소원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는 갈등, 폭력, 테러리즘, 전쟁 등으로 점철되어온 것이 현실이다. 현재에도 나라 안팎으로 반평화적인 사태가 계속되고 있고,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 대한민국도 6·25 한국전쟁의 참상을 겪어야 했고, 아직도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라진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그러기에 어떤 이는 말한다. 평화의 실현은 유토피아적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노력만으로 성취할 수는 없다.

오늘날 평화문제는 특히 지구의 보전과 인류의 생존에 꼭 필요한 것이 되었다. 독일의 핵물리학자요, 철학자인 바이책커(Weizsäcker)오늘날과 같은 과학, 기술시대에서 평화는 곧 삶의 조건이다라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과연 평화란 무엇일까? 삶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 중 하나이다. 성경에서 샬롬이라는, 평화를 가리키는 말의 뜻은 한마디로 온전함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일상에 있어서 자연과 자기 자신과 하느님과 화합한 사람의 처지를 가리킨다. 평화는 전쟁이 없는 것만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과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타인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든 상황이다.

평화로운 것은 조용한 것과 다르다. 단호하게 행동하고 열정적으로 환호하면서도 평화로울 수 있는 충만이다. 평화는 움직임이 없는 고요함보다 역동적 심오함을 지닌다. 그러기에 평화는 우리의 참여기도를 요구한다.

가톨릭교회에는 교회가 인가한 공식적인 기도가 있다. 예수님께서 직접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주님의 기도외에도 후대에 교회에서 만든 사도신경’, ‘묵주기도들이 있다. 교회의 이런 공식적인 기도 외에 교우들의 사랑을 받는 기도는 성인 중의 성인으로 알려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기리는 평화를 위한 기도이다. 이 기도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직접 지은 기도는 아니다. 이 기도문은 성인이 돌아가신 지 600여 년이 지난 17세기경에 이름 모를 어떤 사람이 만든 것이다. 기도문의 내용이 프란치스코 성인의 정신을 완벽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해서 프란치스코 성인의 평화를 위한 기도라고 알려져 내려오고 있다.

주님! 저를 당신 평화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모욕이 있는 곳에 인내를/ 불화가 있는 곳에 화목을/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자기를 주면 받을 수 있고, 자기를 잊으면 찾을 수 있고/ 용서하면 용서받을 수 있고/ 목숨을 잃으면 영생으로 부활하겠사오니/ 주님!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