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로에서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120 | 작성일 : 2004년 11월 26일

  학교에 호젓한 등산로가 나있다. 성취감과 자발성이 높지 않은 학생들에게는 멋진 등산로도 소용이 없다. 학교는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산책로를 내었지만 이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성취의 경험이 많지 않은 학생들이라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질 못하면서, 늘 할 일이 없다며 우두커니 서성이며 할 일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무엇이든 적극성을 가지고 움직이다 보면 건강한 몸에 마음까지 풍요로울 텐데 말이다. 무관심한 모습 덕분에(?) 잘 닦여진 산책로는 몇 해 지나지 않아 무성하게 뒤엉킨 잡초들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절기상으로 小雪이 지나고 있어 오는 겨울 앞에 아쉬운 듯 서있는 가을이 더 보고 싶어서 학생들 몇과 함께, 사람들을 기다리다 지친 등산로를 찾았다. 수북이 쌓인 낙엽이 발에 채일 때마다 소리를 내며 우리를 반긴다. 뚜벅뚜벅, 선머슴 발자국 소리에 새들도 놀라 푸득거리고 가랑잎이 바삭거리며 날을 세우다가 바람에 날려 높이 하늘 위로 날아간다. 푸르던 날에 무게 중심을 갖고 청정하게 살았던 나뭇잎이 무게를 잃은 채 바람 따라 높이 날았다 곤두박질친다. 무게 없이 날아가는 나뭇잎을 보고 학생들의 마음이 살아있는 의미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데 여전히 일차적 욕구 타령이니, 내 마음도 따라 허허롭다. 파고드는 산 공기가 제법 차게 느껴질 때이지만 아직 남아있는 낮 더위에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숨을 몰아쉬며 휴식을 취한 곳이 고마워 언저리를 쓰다듬자니 뭔가 다가오는 느낌이 신선하다. 가볍게 나는 나뭇잎을 보다가 든직하게 놓여있는 바위를 만나서 그런가. 우리 학생들도 지금은 나뭇잎처럼 흔들리지만, 이 자연에서 묻어나는 영감을 느끼고 어느 날, 바위처럼 든든한 희망의 모습을 보여주겠지.
 
  연중 제34주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이다. 추수를 다 끝낸 농부가 하늘을 우러러 감사제를 드리는 것처럼, 우리들도 성령에 힘입고 참 임금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생명을 키워주신 일 년을 감사하며 감사제를 드렸다. 오늘 만난 복음말씀이 가슴에 와 닿는다. 우도(右盜)가 “예수님, 예수님께서 왕이 되어 오실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라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오늘 네가 정녕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루가23,42-43).” 추수 때가 되자 한 알의 낱알이 주인이신 농부에게 간청했다. “농부님, 추수 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 그러자 농부는 “오늘 너는 정녕 창고에 쌓일 것이다.” 일 년 농사 속에서 만고풍상을 다 겪으며 내실 있는 무게를 담은 낱알은 분명 창고에 못 들어갈 일이 없다. 가벼운 인생을 산, 무책임한 좌도(左盜)가 말한다. “당신은 그리스도가 아니오. 당신도 살리고 우리도 살려보시오” 꺼져가는 생명을 탓하며 예수님을 빈정대고 모욕한다. 이는 바람에 쉽게 날려 어디론가 곤두박질해버리는 낙엽처럼 스러지는 도둑이다. 그러나 한 도둑은 마음 속 가장자리에 성령이 임하시고 예수님을 모신 덕분에, 어느 순간 생명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임금이신 예수님이 통치하기 시작하신 것이다. 우도 안에는 하늘을 향해 바람처럼 가볍게 날았다 곤두박질치는 모습은 더 이상 찾을 수가 없다. 든든한 생명의 뿌리가 생겨난 우도의 고백은 바위처럼 든든하다 그 결과 “참 임금이신 예수님은 그를 꼭 기억해주신다.” 그리고 “오늘 그 자리에서 주님과 함께 낙원을 이루어주신다.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학생들과 등산로 따라 산 정상에 서서 기도하며 축복을 빌어주었다. “몸을 일으켜 머리를 들어라. 너희가 구원받을 때가 가까이 온 것이다.(루가21,28)” 우리 모두 바위 같은 삶의 무게를 지니도록 대림절(待臨節)을 살고, 기쁜 성탄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