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가톨릭적 대안교육 연수를 마치며

작성자 : 후원회 | 조회수 : 3,324 | 작성일 : 2005년 8월 23일

인가된 대안학교가 98년 초중등교육볍 시행령 제91조(특성화 고등학교)에 포함되어 대안학교라는 공식명칭 없이 8년을 지내왔다. 그런데 금년 3월에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제60조(대안학교)에 독립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내년 3월 시행을 앞두고 시행령을 손질하고 있다. 1997년 11월, 양업고는 특성화 교육법에 따라 한국 교육사에 최초의 특성화 고등학교로 인가 받았다. 당시에 양업고를 포함하여 6개의 인가된 고등학교로 출발 했는데, 지금은 인가된 고등학교 19개교, 중학교 5개교를 포함 25개교로 성장하였으며 비안가 대안학교를 합하면 무려 100여개의 대안학교에 이른다. 입법된 대안교육이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비인가 대안학교가 학력인정 학교 형태로 전환하여 100여개가 문을 열 예정이다. 그동안 경기도에 도시형 대안학교, 공립 대안학교도 생겨났으며. 앞으로 더욱 다양한 형태의 대안교육의 장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그동안 대안교육의 내실을 점검하고, 한국교육에 새 교육의 장으로 발 돋음하며 나아가기 위하여 대안학교 관계자들이 연대모임을 결성하고 연수를 하고 있으며 양업고도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가톨릭적 대안교육연수(8.18-17)를 실시하였다. 대안학교법이 제정되자 설립의 부산함이 감지되고 있는데 많은 이들이 미동도 않는 가톨릭교회를 의아해한다. “왜 가톨릭교회는 대안교육에 관심이 없냐는 것이다.” 나는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가톨릭의 기존학교들은 일반학교와 달라 생명을 이루는 본질적 교육에 충실하며, 지식과 진리, 신앙과 이성, 지성과 사랑을 통한 도덕성교육을 잘 시키고 있기에 대안학교의 설립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을 했다. 물론 기존의 학교에 비하여 가톨릭학교가 교육의 본질에서 출발한 교육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가톨릭학교가 과연 가톨릭적이냐 하는 문제다. 왕성했던 기독교 시대를 거치면서 역사적으로 교육에 관하여 지대한 역할을 해 왔던 가톨릭이 지금은 전혀 아니라는 점이다. 많은 경우 가톨릭 학교가 가톨릭의 장체성과 패러다임을 모르거나 간과하고 있다는 지적이다.(최준규 신부, 서울 가톨릭대 문화 영성 대학원) 유치원은 전체의 2%, 중고등학교는 전체 학교의 1%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작지만 크다,’ 라는 말처럼 교육분야에서도 큰 모습으로 과연 당당히 서 있는 것인지?  가톨릭의 정체성은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도시대와 초대교회의 교부들, 학자들, 역사 속에 면면히 간직한 소중한 보물들이 가톨릭의 정체성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톨릭의 정체성 안에서 건강했던 패러다임이 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세상을 위해 살아가는 모습들, 진리, 신앙, 그리고 우러나오는 정의와 사랑, 그 안에 가톨릭 학교의 교육의 정의와 목적이 있기에 이를 위해 살아가고자 한다. 교육을 하다 보니 가톨릭 내의 학교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보게 된다. 가톨릭의 정체성과 그를 통한 패러다임을 갖고 적극적으로 살아가도록 이끄는 것이 오늘 우리의 과제이다. 묵은 것과 새 것이 무한히 담겨져 잇는 가톨릭의 보고에서 대안을 찾아 나서고 방법을 모색하여 모든 이에게 복음이 되어 주는 것이 가톨릭의 대안이다. 역사 안에 전통들, 묶은 것과 새것을 동시에 갖고 있는 보고(寶庫)에서 가톨릭의 정체성을 확고히 해가며 우리들만의 패러다임을 계승 반전시키고 발견하여 우리가 가야할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다가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공동체가 향하는 목적과 방향이 비전이 없어 보일 때이다. 사실 교회를 포함하여 모든 상황이 매너리즘의 상황이다.  교육의 전환은 건전한 사고의 틀에서 복음적인 방향으로 끊임없이 진보하는 것이다. 교회에 새롭게 요구되는 일은 새바람이 일어나는 대안교육을 관심 있게 보는 일이다. 그리고 그 대안교육을 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가톨릭의 寶庫에서 교육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주고, 노웨어를 세상에 분명하게 제시할 줄 아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