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졸업, 33세 무직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655 | 작성일 : 2009년 2월 3일

                                서울대 졸업, 33세 무직

 두 아들이 서울대 상대, 서울대 공대를 나란히 합격했었다. 두 아들의 부모는 주변으로부터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나도 힘든데 두 아들이 서울대에 진학했으니 세상에 부러움을 살 만도 했다. 그로부터 십 수 년이 지났다. 큰 아들은 내로라하는 은행계통에 취직을 했지만, 둘째는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여 건설현장에 파견되었는데 대인관계가 부족하여 1년 근무를 힘들게 마치고는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을 아주 쉽게 버렸다고 했다. 퇴사하면 서울대 간판으로 또 다른 직장을 마음대로 고를 것이라는 생각은 하나의 이상(理想)일 뿐, 현실은 그 어떤 직장도 그를 맞이해 주지 않았다.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33살의 무직인 그는 고시원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직장이 싫다고 직장을 그만두는 사람이 있으면 저는 도시락 싸가지고 돌아다니며 그를 말릴 것입니다.” 라는 그의 말 속에서 그 청년의 심정을 헤아릴 만큼 현재의 심경을 읽고 보는 듯 했다. 청년의 아버지는 “신부님, ‘머리 좋은 것이 행복이다,’라는 등식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놈이 아직도 직장도 없이 의기소침하고, 외부와 거리감을 두고 공부만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말을 받아 나는, “학교가 진학지도는 잘했는지 몰라도 진로지도는 영 잘 못했군요.”라고 말해주었다. 단위학교에서 서울대학교에 한 명을 보내면 온통 경사가 났다고 야단법석이고, 동네방네 현수막을 걸고는 “어느 마을 누구는 서울대학교 갔네.” 하며 온통 세상이 떠들썩하다. 그런 세상은 지나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공부 잘 한다고 칭찬만 듣고 자란 그는, 머리만 좋았지 사회성이 없는데다가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과 맞설만한 자신감을 키우지는 못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의 건설현장 직원으로 파견되었지만, 그의 얌전한 성격이 거친 노동자들을 압도할만한 수완이 없었던 것이다. 아마 인문과학 쪽으로 진로를 선택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에 후회가 담겨 있었다. 이제 궤도 수정을 하기엔 너무 나이가 많다. “직원선발이 나이 제한이 없다고 하지만 나이 제한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라는 것이 그의 답답함을 드러내는 말이다.
 참 안타까운 인재다. 진로를 잘 선택했다면 지금쯤 과장자리, 박사자리, 등을 누리고 행복해 있을 터인데, 나도 그의 진로를 위해 도와줄 방법을 찾고 있는 중이다. 교회도 인재를 필요로 하는데 그 어린시절 그가 지녔던 사제의 꿈이 아마도 다시 살아나려나 보다. 교회의 인재양성도 나이제한이 있지만 훌륭한 인재는 그만큼 나이가 문제는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얘야. 너 사제될 꿈 없냐?” 하고 묻자, “그 길도 다 알아보았습니다. 나이 제한이 있다고 합니다.”하여 나는 그에게 “희망을 가져보고 우리 자주 연락하자.”는 말로 대화를 마쳤다.
 우리 학교 인재들이 대학 입학을 위해 재수한다고 한다. 그럴 때면 나는 잘했다고 답한다. 대학은 진학하는 곳이 아니다. 진로를 선택하는 곳이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복을 캐는 곳이다. 그래서 양업고는 진로지도를 잘하는 명문학교라 하지 않는가. 애들아, 진학하지만 말고 진로를 올바로 선택하길 바란다. 꼭 너희의 적성과 소질에 맞는, 네가 가장 좋아하는 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