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제발 잡히지마』이란주의 이주 노동자 이야기
작성자 : 조민경 | 조회수 : 3,838 | 작성일 : 2018년 3월 8일
이란주 지음
<아빠 제발 잡히지마>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몇 십만 명이다.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그들을 데려 왔지만, 이주 노동자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거나 돈을 벌게 하는 대신 값싼 노동력만을 이용하고 사실상 그들을 노예와 같이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독일이나, 미국에서 이주 노동자로 일했을 터,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말고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다시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우리 주변에서 일하고 있는 이주 노동자 분들이 자꾸 떠오른다.
그만큼 생생하게 잘 썼고, 상황이나 처지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그들은 항상 퇴출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안고 살고 있다.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학생은 필수적으로 읽으면 좋겠다. 국제관계학 공부하는 친구들도
책 본문 중에서-
“친구들은요, 방글라데시에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진짜 마음이 아파요. 내가 친구들에게 우리나라에는 한국에 있는 거 다 있다고 말했어요. 오늘 우리 학교 친구 생일인데요. 그 애 엄마가 학교에 케이크 사 왔잖아요. 반 친구들 다같이 나눠 먹으라구요. 그런데 친구가 나한테 물어봤어요. 우리나라에 케이크 있냐구요. 그리고 자동차도 있냐구요. 그래서 말했어요. 다 있다구요. 우리나라에도 한국에 있는 거 다 있다구요. 나는 한국 좋아하는데 친구들은 방글라데시 안 좋아하나 봐요. 씨이.”
-1부, 「어린친구, 샤프라」에서
이젠 마리가 문제였다. 요즘 마리는 눈물공주가 되었다. 간신히 눈물을 감췄다가 또 울고, 또 울고 했다. 텔레비전을 봐도, 책을 읽어도, 피아노를 쳐도 온통 머릿속에는 그 생각밖에 없다. 방글라데시로 돌아가면 말도 제대로 못하는데 학교에는 다닐 수 있으려나, 공부를 못 따라가면 어쩌나, 한국 친구들과 헤어지면 다시는 못 만날 텐데 어떡하나, 나는 왜 한국에서 계속 살 수 없나, 다른 사람들은 불법으로도 잘만 사는데 왜 우리 부모님은 방글라데시로 가려는 걸까…….
-1부, 「마리네 가족」에서
봉투에 적힌 내역을 보니 그가 얼마나 피가 마를 정도로 일을 해댔는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 기본급 95만 원에 저녁 6시 30분부터 다음날 아침 7시 30분까지 13시간 일하고, 1시간에 4,000원씩 쳐주는 잔업을 적게는 80시간에서 많게는 117시간까지 했다. 어찌나 죽자 사자 일했는지 월평균 수령액이 130만 원이나 됐다. 말이 열 몇 시간 노동이지, 매일같이 밤을 꼬박 새워가며 그렇게 일하는 것은 거의 자살행위와 다름없었다. 그의 몸이 기계였더라면 벌써 바스라져 버렸을 것이다. 그런 노동을 견뎌 내는 그의 비쩍 마른 몸뚱이가 경이로울 지경이다. 정말 피 같은 돈이요, 애절한 임금봉투였다. 가슴 아파 못 버렸다는 말이 마구 이해되는 임금봉투였다.
-2부,「퇴직금 소동」에서
급기야 나는 이미 무거운 마음일 그이들을 향해 또 한 번 찬물을 퍼부었다. 한국 날씨는 그 옷이 견뎌내지 못할 만큼 춥고, 또 여러분이 견뎌내야 할 노동은 여러분이 한 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고될 것이며, 한국인들의 차별과 냉대는 얼음보다도 더 차가울 것이라고. 부디 많이 기대하지도 말고, 많이 실망하거나 지치지도 말자고.
-3부,「흰옷」에서
우리가 긴 세월을 바쳐 결국 얻어내야 하는 세상은 다른 뭣도 아닌 ‘함께 사는 세상’이다. 그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한겨울 추위 속에서 농성도 하고, 스무날 넘게 단식도 하는 게 아닌가. 그런데 지금 함께 싸우고 있는 친구들은 한국에서 그 희망을 찾기 힘들다고 여기는 것이다. 홍세화 선생님은 20년을 프랑스에서 이주노동자로 살았다고 했다. ‘종이 없는’ 미등록 노동자가 아니라 ‘어엿한 종이가 있는’ 등록노동자로 말이다. 그 삶이 선생님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했을 터였다. 선생님이 살았던 그 나라는 그래도 살 만한 나라였던가 보다. 그러나 여기 한국에서 살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 모양이다. 두 친구 모두 이곳을 계속 살기엔 끔찍한 곳이라 여기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두 친구와 함께 만리동 고개를 넘어오며 자꾸 마음이 무거웠다.
-4부,「두 이주자」에서
라주 아버지는 또 다른 생각도 해 보았다. 그것은 라주가 얼른 자라 자기 대신 외국으로 일하러 나갔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라주가 네팔에서 돈벌이하여 잘 살게 되기란 아무래도 힘들 것이고, 걸프 지역보다는 그래도 한국으로 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그래서 자기는 아무리 힘들어도 라주가 영어전문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뒤를 봐주고 싶다고 했다. 네팔 소시민의 소박하고도 거창한 꿈이었다.
-5부,「라주네 가족」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