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홍준- 추사 김정희
작성자 : 조민경 | 조회수 : 3,975 | 작성일 : 2018년 8월 28일
추사 김정희
유홍준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러 갔었다. 청주에서의 강연이니 당연히 직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셨고, 직지는 인쇄술이니 인쇄술의 발전 과정에 대하여 적지 않은 말씀을 하셨다.
루터가 종교개혁해서 개신교가 확산된 것도 쿠텐베르크의 인쇄술과 맞물려 급속도로 퍼졌다고 한다. 그만큼 인쇄술은 대중들에게 많은 파급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깊이 있는 유홍준 선생님 자체가 문화재가 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학생들도 이런 품격 있는 강의를 직접 들을 날이 오겠지?
유홍준 지음
오늘은 학생들에게 유홍준 선생님이 쓰신 추사 김정희에 대해서 알려드려야겠다.
추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아는 사람도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글과 문장의 대가였는데 글씨를 잘 쓰는 바람에 글이 묻혔다고 한다.
채제공 선생이 어릴 적 추사가 쓴 현판을 보고 선친한테 추사는 필히 명필로 남을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북학파의 대가인 박제가의 제자이기도 한 추사는 양아버지가 홍대용, 박지원과 교류했었고 청에도 다녀왔기에 실학자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그는 금석학과 고증학의 최고의 인물이었고. 경학, 불교학, 제자백가, 천문 지리의 학자였고,
시와 문장에 통달한 예술가였다.
이 책에 추사가 쓴 현판과 글씨 그림은 가히 예술의 경지 이상이다.
아들을 위해 쓴 동몽선습 글씨, 해란 서옥 2집 글씨는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직성수구 행서 대련은 글씨 자체로 멋지다. 허천기적 시권 발문은 간송미술관에 보관되어 있고, 이 책에 추사의 난초도 많이 구경할 수 있다. 한 사람이 여러 글씨체를 멋지게 섭렵했다는 것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추사에 대해서 경이롭다.
추사는 출세 가도를 달리다 유배지에서 학의 경지에 올랐다고 한다.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추사체가 완성되었고, 그 유명한 세한도도 그려졌다. 이 책은 세한도가 실물도가 아님을 절절히 강조하셨다. 유홍준 선생의 관찰력이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봉은사 현판을 마지막으로 철종 7년 추사의 학문과 예술 인생은 끝이 났지만
고통은 예술을 낳고 예술은 영원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다산 정약용만 당시의 대단한 학자라 생각하는데 우리에게 이런 대 학자가 있었다는 것은 엄청난 자긍심을 갖게 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추사의 일대기를 쫓아가지만 그 당시의 고증학 금석학 글씨, 그림 많은 것 들이 실려 있어 조선시대 말기의 예술의 장을 보는 듯하다.
가을이 다가오기 전에 추사 김정희로 먼저 우리 학교를 물들이고 싶은 소박한 꿈을 꾸어 본다. 유홍준 선생이 추사 김정희 선생을 쫓아 연구 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걸 글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역사, 고증학, 미학.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라면 이 책은 살아있는 교과서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