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2월 9일자 중앙일보 게재
작성자 : 김경숙 | 조회수 : 4,375 | 작성일 : 2013년 2월 9일
문제 행동만 있지 문제아는 없어…
대안학교 양업고 교장 16년, 윤병훈 신부
윤병훈 신부는 1세대 대안학교 교육가에 속한다. 16년 교장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1월 정년 퇴임한 그는 인터뷰 “교육은 생명을 다루는 일과 같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전국에서 문제학생만 모인 학교라고? 1998년 3월 문을 연 대안학교 양업고등학교의 출발은 그랬다. 그런데 올해 입학 경쟁률만 7대 1. 입시에 신물이 난 학부모와 아이들이 몰려드는 인기 대안학교로 떠올랐다. 담배에 찌든 사고뭉치들의 천국에 그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인 윤병훈(63) 베드로 신부가 그 답이다. 그는 이 학교를 세우고 키운 공로로 최근 포스코청암재단에서 포스코 청암교육상을 수상했다. 수상 금액만 2억원. 그는 전액을 학교에 기부했다.
8일 충북 청원군 옥산면 환희리 양업고에서 졸업식이 열렸다. 13기 40명이 교정을 떠나는 날. 교장부터 교사 모두가 졸업생 모두를, 졸업생 모두가 다시 재학생 모두를 꼭 껴안았다. “대견하구나.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축하해주는 졸업식이었다. 일반 고교라면 주변엔 경찰이 배치됐을 텐데 이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엔 밀가루를 뿌리고 교복을 찢는 일도 없었다.
졸업생들 사이엔 윤 신부가 있었다. 학생들은 “신부님, 감사해요”라며 윤 신부의 품에 안겼다. 지난해만 해도 윤 신부는 윤 교장이었다. 16년째 교장이었으나 지난 1월 정년 퇴임한 뒤 청주시 교구 산남동 본당 주임사제가 됐다.
그는 ‘학생들이 눈물 흘리는 졸업식은 오랜만에 봤다’는 기자의 질문에 “일반 학교 졸업식이 ‘3년간 억압과 구속에서의 해방’이라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졸업생 권태현(18·숭실대 글로벌 미디어학과 합격)군은 “학교와 신부님은 우리를 구속하지 않았다. 우리가 철들 때까지 늘 기다려주셨다”고 했다. 권군은 중학교 때만 해도 결석을 밥 먹듯 하고 PC방에서 매일 10시간씩 게임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그는 “3년 동안 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학교”라고 말했다.
윤 신부 역시 기다림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교육이란 미성숙 상태에서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활동과 노력이다. 그런데 급조한다고, 조바심을 낸다고 성숙해지는 게 아니다. 기다려줘야 한다. 기다리는 학교가 바로 우리 학교”라고 설명했다.
-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나 인서울(서울에 있는 대학) 합격처럼 뭔가 성과를 내야 하는 게 요즘의 학교인데요.
“한 달간 학교 밖으로 나가 게임방에서 살다 돌아온 아이가 있었어요(이 학교는 기숙학교다). 내가 ‘그동안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교실보다 더 재미있었죠. 그런데 좀 허전하네요’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순간의 재미를 좇다 보면 그렇게 허전한 거란다’라고 말해줬어요. 그러자 아이는 속으로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일반고 같으면 맞아 죽었을 텐데 교장이 ‘재미있었냐, 느낌은 어땠느냐, 기뻤냐, 너를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물어보니까요.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알게 됩니다. ‘나를 존중해 주는구나, 배려해 주는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 그 학생은 어떻게 됐나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도 진학했어요.”(올해 졸업생 40명 중 21명이 4년제 대학, 4명은 전문대에 각각 입학했다.)
- 아이를 맡겨놓은 부모 입장에선 속 터질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부모들은 불안해합니다. 주말에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 만에 보게 된 아이가 집에서 계속 잠을 잔다든지, 오락을 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면 ‘학교가 아이를 아예 망쳐놓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2학년이 되면 아이가 더 엉망진창으로 바뀌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3학년이 되면 또 달라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성장하도록 기다려줍니다.”
- 무엇을 기다리는 건가요.
“아이들이 자발적 동기에 의해 스스로 내적 추동 에너지를 얻도록 하는 겁니다. 그 힘으로 세상에 나가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려는 거죠.”
-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우리 학교가 처음엔 무단 결석, 폭력 난무에 학업 성취도는 바닥인 학교였어요. 교실 붕괴란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였죠. 요즘 학생들의 몸은 고교생이지만 지적 수준은 딱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학생이 줄담배 피우고 술 마시니 사회는 이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낙인찍은 겁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게 위험한 것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규율을 바탕으로 자유를 줬죠. 이 자유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3년 후 또는 5년 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추동력을 내게 됩니다. 우리에게 자유는 수단이지, 목표는 아니에요.”(윤 신부는 학교를 세운 뒤 7~8년간 난장판과 다름없는 학교를 경험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부정적인 행동을 꾸짖기보다 먼저 그 이유를 찾고 도움을 주는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들어간 이모군은 중학교 때 이미 폭주족이었다고 한다. 일반계 고교는 가기 어려운 아이였기에 이 학교로 왔다. 이 학생이 어느 날 수학책을 펴놓고 있자 윤 신부가 “진도 잘 나가느냐”고 물었다. 이군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인데 책 한 장 넘길 수 없네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윤 신부는 교사를 붙여 초등학교 수학부터 공부시켰다. 6개월 만에 고1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바로 내적 추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직접 세운 양업고 교정에 선 윤 신부. 그는 정년퇴임 후 사제의 길을 간다.
- 이 학교에서 공부는 무슨 의미인가요.
“공부는 높은 곳에 서보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지리산 꼭대기에 세워놓으면 산자락과 계곡을 보고 다들 놀랍니다. 멀리, 그리고 넓게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거든요. 이렇게 머리를 깨치는 게 공부입니다. 미성숙한 두뇌가 스스로에게서 발견되는 추동력을 바탕으로 성숙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과정입니다.”(이 학교는 산악 등반, 봉사활동, 현장 체험학습,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 흙을 가꾸는 노작, 가족관계 내 가족성 회복, 종교 활동 등 인성교육을 위한 7가지 특성화 교과를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윤 신부는 기자에게 학교 건물에서 운동장으로 향하는 계단길을 보여줬다. 원래 계단길은 없었고 화단이었는데 아이들이 밟고 다니다 길을 냈다고 한다. 처음엔 교사들이 “이 길로 다니지 말라”고 하다가 그런 잔소리를 포기했다. 결국 2년 전 기술·가정 시간에 아이들에게 길을 만들어 보라고 했고, 아이들이 설계하고 시공해 벽돌로 계단길을 만들었다.
- 요즘 아이들 다루기가 쉽지 않죠.
“우리 사회와 학교는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낙인찍죠. 하지만 문제 행동만 있을 뿐 문제아는 없습니다. 3년 내내 머리만 매만지던 학생이 있었어요. 머리 염색도 빨간색에서 출발해 나중엔 흰색까지 가더군요. 그런데 결국은 원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너 꼴통이니’라며 비하합니다. 이러한 외부 자극은 상처로 남죠. 내적 통제가 가능한 아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 문제아가 없다면 문제 부모는 있나요.
“출세한 부모일수록 아이가 정도에서 벗어나면 큰일 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식에게 ‘해라’ ‘하지 마라’는 식으로 규율을 가하고 통제를 하죠. 사실 이런 부모들은 외부적 통제가 두려워 사람들 앞에서는 잘하는 척하지만 누가 보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행동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마마보이처럼 키우면 그 마마보이는 결국 나중에 아파트까지 내놓으라고 할 겁니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쪼들리든 어쩌든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이처럼 문제는 결국 어른과 사회가 일으켜놓은 겁니다.”
- 부모의 역할이 쉽지 않네요.
“교육의 주체는 어른이고, 삶의 주체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삶의 운전대를 학생들이 아닌 교사와 학부모가 빼앗았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창의적이고 글로벌하게 살라고요? 밤 10시까지 붙잡아놓고 학원이다, 뭐다 시키면서요?”
- 그렇다면 어떤 부모가 돼야 할까요.
“부모 스스로가 아이를 품어줄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춘기를 맞아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갑니다. 삶의 운전대를 잡다 보면 박치기도 하고 사고도 칩니다. 그걸 기다려주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글=강홍준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윤병훈 신부=1950년 충북 청원생. 충남대 농대를 졸업하고 ROTC로 군 생활을 마친 뒤 광주가톨릭대에 편입해 78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후에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철학박사학위를 받음
대안학교 양업고 교장 16년, 윤병훈 신부
윤병훈 신부는 1세대 대안학교 교육가에 속한다. 16년 교장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1월 정년 퇴임한 그는 인터뷰 “교육은 생명을 다루는 일과 같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기자]
전국에서 문제학생만 모인 학교라고? 1998년 3월 문을 연 대안학교 양업고등학교의 출발은 그랬다. 그런데 올해 입학 경쟁률만 7대 1. 입시에 신물이 난 학부모와 아이들이 몰려드는 인기 대안학교로 떠올랐다. 담배에 찌든 사고뭉치들의 천국에 그간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이 학교의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인 윤병훈(63) 베드로 신부가 그 답이다. 그는 이 학교를 세우고 키운 공로로 최근 포스코청암재단에서 포스코 청암교육상을 수상했다. 수상 금액만 2억원. 그는 전액을 학교에 기부했다.
8일 충북 청원군 옥산면 환희리 양업고에서 졸업식이 열렸다. 13기 40명이 교정을 떠나는 날. 교장부터 교사 모두가 졸업생 모두를, 졸업생 모두가 다시 재학생 모두를 꼭 껴안았다. “대견하구나.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부둥켜 안고 축하해주는 졸업식이었다. 일반 고교라면 주변엔 경찰이 배치됐을 텐데 이 학교는 그렇지 않았다. 여기엔 밀가루를 뿌리고 교복을 찢는 일도 없었다.
졸업생들 사이엔 윤 신부가 있었다. 학생들은 “신부님, 감사해요”라며 윤 신부의 품에 안겼다. 지난해만 해도 윤 신부는 윤 교장이었다. 16년째 교장이었으나 지난 1월 정년 퇴임한 뒤 청주시 교구 산남동 본당 주임사제가 됐다.
그는 ‘학생들이 눈물 흘리는 졸업식은 오랜만에 봤다’는 기자의 질문에 “일반 학교 졸업식이 ‘3년간 억압과 구속에서의 해방’이라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 학교는 학생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졸업생 권태현(18·숭실대 글로벌 미디어학과 합격)군은 “학교와 신부님은 우리를 구속하지 않았다. 우리가 철들 때까지 늘 기다려주셨다”고 했다. 권군은 중학교 때만 해도 결석을 밥 먹듯 하고 PC방에서 매일 10시간씩 게임에 빠져 지냈다고 한다. 그는 “3년 동안 나 자신의 장점이 무엇인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 학교”라고 말했다.
윤 신부 역시 기다림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는 “교육이란 미성숙 상태에서 성숙으로 나아가도록 도와주는 활동과 노력이다. 그런데 급조한다고, 조바심을 낸다고 성숙해지는 게 아니다. 기다려줘야 한다. 기다리는 학교가 바로 우리 학교”라고 설명했다.
- SKY(서울대·연세대·고려대)나 인서울(서울에 있는 대학) 합격처럼 뭔가 성과를 내야 하는 게 요즘의 학교인데요.
“한 달간 학교 밖으로 나가 게임방에서 살다 돌아온 아이가 있었어요(이 학교는 기숙학교다). 내가 ‘그동안 재미있었냐’고 물었더니 ‘교실보다 더 재미있었죠. 그런데 좀 허전하네요’라고 답하더라고요. 그래서 ‘순간의 재미를 좇다 보면 그렇게 허전한 거란다’라고 말해줬어요. 그러자 아이는 속으로 놀랐다고 하더라고요. 일반고 같으면 맞아 죽었을 텐데 교장이 ‘재미있었냐, 느낌은 어땠느냐, 기뻤냐, 너를 어떻게 도와줄까’라고 물어보니까요. 이 학교에서 아이들은 알게 됩니다. ‘나를 존중해 주는구나, 배려해 주는구나’라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 그 학생은 어떻게 됐나요.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도 진학했어요.”(올해 졸업생 40명 중 21명이 4년제 대학, 4명은 전문대에 각각 입학했다.)
- 아이를 맡겨놓은 부모 입장에선 속 터질 수도 있겠네요.
“실제로 부모들은 불안해합니다. 주말에 집으로 돌아와 일주일 만에 보게 된 아이가 집에서 계속 잠을 잔다든지, 오락을 한다든지 하는 모습을 보면 ‘학교가 아이를 아예 망쳐놓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2학년이 되면 아이가 더 엉망진창으로 바뀌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하죠. 하지만 3학년이 되면 또 달라져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변화하고 성장합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성장하도록 기다려줍니다.”
- 무엇을 기다리는 건가요.
“아이들이 자발적 동기에 의해 스스로 내적 추동 에너지를 얻도록 하는 겁니다. 그 힘으로 세상에 나가 거침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주려는 거죠.”
- 그 과정이 쉽지는 않을 텐데요.
“우리 학교가 처음엔 무단 결석, 폭력 난무에 학업 성취도는 바닥인 학교였어요. 교실 붕괴란 말이 자연스러울 정도였죠. 요즘 학생들의 몸은 고교생이지만 지적 수준은 딱 초등학교 4학년입니다. 학생이 줄담배 피우고 술 마시니 사회는 이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낙인찍은 겁니다. 이런 학생들에게 자유를 주는 게 위험한 것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공동체 규율을 바탕으로 자유를 줬죠. 이 자유는 당장은 아니더라도 3년 후 또는 5년 후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추동력을 내게 됩니다. 우리에게 자유는 수단이지, 목표는 아니에요.”(윤 신부는 학교를 세운 뒤 7~8년간 난장판과 다름없는 학교를 경험했다고 한다. 하지만 학생들의 부정적인 행동을 꾸짖기보다 먼저 그 이유를 찾고 도움을 주는 일관성을 유지했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에 들어간 이모군은 중학교 때 이미 폭주족이었다고 한다. 일반계 고교는 가기 어려운 아이였기에 이 학교로 왔다. 이 학생이 어느 날 수학책을 펴놓고 있자 윤 신부가 “진도 잘 나가느냐”고 물었다. 이군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인데 책 한 장 넘길 수 없네요”라고 답했다. 그러자 윤 신부는 교사를 붙여 초등학교 수학부터 공부시켰다. 6개월 만에 고1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는 “이것이 바로 내적 추동력”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이 직접 세운 양업고 교정에 선 윤 신부. 그는 정년퇴임 후 사제의 길을 간다.
- 이 학교에서 공부는 무슨 의미인가요.
“공부는 높은 곳에 서보게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지리산 꼭대기에 세워놓으면 산자락과 계곡을 보고 다들 놀랍니다. 멀리, 그리고 넓게 볼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거든요. 이렇게 머리를 깨치는 게 공부입니다. 미성숙한 두뇌가 스스로에게서 발견되는 추동력을 바탕으로 성숙한 존재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과정입니다.”(이 학교는 산악 등반, 봉사활동, 현장 체험학습, 청소년 상담 프로그램, 흙을 가꾸는 노작, 가족관계 내 가족성 회복, 종교 활동 등 인성교육을 위한 7가지 특성화 교과를 편성해 운영하고 있다.)
윤 신부는 기자에게 학교 건물에서 운동장으로 향하는 계단길을 보여줬다. 원래 계단길은 없었고 화단이었는데 아이들이 밟고 다니다 길을 냈다고 한다. 처음엔 교사들이 “이 길로 다니지 말라”고 하다가 그런 잔소리를 포기했다. 결국 2년 전 기술·가정 시간에 아이들에게 길을 만들어 보라고 했고, 아이들이 설계하고 시공해 벽돌로 계단길을 만들었다.
- 요즘 아이들 다루기가 쉽지 않죠.
“우리 사회와 학교는 아이들을 ‘문제아’라고 낙인찍죠. 하지만 문제 행동만 있을 뿐 문제아는 없습니다. 3년 내내 머리만 매만지던 학생이 있었어요. 머리 염색도 빨간색에서 출발해 나중엔 흰색까지 가더군요. 그런데 결국은 원상태로 돌아왔습니다. 부모들은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 ‘너 꼴통이니’라며 비하합니다. 이러한 외부 자극은 상처로 남죠. 내적 통제가 가능한 아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 문제아가 없다면 문제 부모는 있나요.
“출세한 부모일수록 아이가 정도에서 벗어나면 큰일 난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자식에게 ‘해라’ ‘하지 마라’는 식으로 규율을 가하고 통제를 하죠. 사실 이런 부모들은 외부적 통제가 두려워 사람들 앞에서는 잘하는 척하지만 누가 보지 않으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행동합니다. 부모가 아이를 마마보이처럼 키우면 그 마마보이는 결국 나중에 아파트까지 내놓으라고 할 겁니다. 부모가 경제적으로 쪼들리든 어쩌든 생각을 안 하는 거죠. 이처럼 문제는 결국 어른과 사회가 일으켜놓은 겁니다.”
- 부모의 역할이 쉽지 않네요.
“교육의 주체는 어른이고, 삶의 주체는 아이입니다. 그런데 삶의 운전대를 학생들이 아닌 교사와 학부모가 빼앗았어요. 그러면서 아이들에게 창의적이고 글로벌하게 살라고요? 밤 10시까지 붙잡아놓고 학원이다, 뭐다 시키면서요?”
- 그렇다면 어떤 부모가 돼야 할까요.
“부모 스스로가 아이를 품어줄 수 있는 그릇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은 사춘기를 맞아 질풍노도의 시기에 들어갑니다. 삶의 운전대를 잡다 보면 박치기도 하고 사고도 칩니다. 그걸 기다려주고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글=강홍준 기자
사진=장진영 기자
◆윤병훈 신부=1950년 충북 청원생. 충남대 농대를 졸업하고 ROTC로 군 생활을 마친 뒤 광주가톨릭대에 편입해 78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후에 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철학박사학위를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