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의 밤 ~ 민용이

작성자 : 김경숙 | 조회수 : 4,829 | 작성일 : 2009년 5월 30일

성모님, 모든 것이 풍성하게 피어난 5월. 이 저녁에 성모의 밤을 열게 되었습니다. 비가 올 때에도, 햇살이 비칠 때에도 학교에 가만히 서 계시는 성모상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성모님처럼 양업에도 보는 것만으로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 성모의 밤 행사를 빌어 그 분들에게 평소 표현하지 못했던 감사의 말을 전하려 합니다.


양업의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선생님들께

선생님, 너무나 빨리 지나가는 시간에 때때로 놀라곤 합니다. 어느 덧 제가 양업에 들어온 지 3년이 되었고, 양업에서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제 욕심에 더 많이, 더 오래 머물고 싶어 시간을 잡아두려 하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저를 당황스럽게 만듭니다. 이것저것 부족한 것 많았던 저를 이렇게 듬직한 3학년으로 키우셨던 신부님과 수녀님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손길이 아직도 느껴져 이 따듯함이 영원할 거라는 염치없는 생각을 합니다.


선생님, 다른 어느 학교의 선생님보다도 땀을 많이 흘리시고, 그래서 냄새도 좀 나시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양업의 어린 철부지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이 멋있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베풀어도 갚을 줄 모르고 오히려 외면해버리는 어린양들에게 상처도 받고 배신감도 느끼셨을 텐데, 그래도 가슴으로 용서하시는 선생님이 정말로 멋있습니다.
 

양업에 첫 면접을 보러 온 날 “왜 이 학교에 왔니?”라는 질문에 “좋은 학교라고 느껴져서요.”하고 대답했더니 “우리 학교 하나도 안 좋은데.”하셨던 신부님. 쉬는 시간마다 학사실에 와서 먹을 것을 찾고 잡다한 수다를 떨다 가는 학생들을 반겨주시는 수녀님들. 1학년 첫 테마여행 때, 저녁식사로 삼겹살을 준비하는데 팔을 걷어 학생들이 먹을 김치를 손수 잘라주셨던 선생님. 늦은 밤, 볼일이 생겨 교과실에 가보면 홀로 공부하시다 그대로 책상에 엎어져 주무셨던 선생님. 큰 고민덩어리를 가지고 찾아가면 웃음과 함께 진지한 상담으로 마음속의 걱정을 없애주셨던 수녀님.

교육지원실에 있는 맛난 간식거리를 보며 문 앞을 기웃거리는 학생들을 안으로 불러 큰 손으로 하나씩 먹을거리를 쥐어주셨던 선생님. 사모님과 함께 보냈어야 할 결혼기념일까지 기꺼이 포기하며 학교 일에 매달리셨던 선생님. “내가 니들 때문에 미쳐.” 라고 입에 달고 사시지만 학생들을 보면 항상 웃음으로 대해주셨던 선생님. 조회, 종례 시간 때 반 학생들이 어디 아픈 곳은 없는지 다 보아야 마음이 편해지신다는 선생님.
 

단 한순간도 변치 않았던 선생님들의 사랑이 오늘의 행복한 양업을, 오늘의 행복한 학생들을 만들어냈습니다. 학생들에 대한 믿음이,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우리들의 못난 점을 그 넓은 마음으로 덮어주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며칠 전 친구들과 함께 봤던 ‘고쿠센’이라는 일본 드라마가 생각납니다. 거기서 양쿠미라는 이름의 여선생님은 야쿠자의 손녀로 어느 고등학교의 문제아 반을 맡게 됩니다. 양쿠미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마음의 문을 열고 헌신을 다하지만, 학생들은 배신에 배신을 거듭하고 오히려 문제만 일으키며 쉽게 선생님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주변 선생님들은 그 녀석들은 원래 문제아다, 괜히 힘 빼지 말고 그냥 대충 수업이나 해라, 뭣하러 그 녀석들을 위해 시간낭비를 하냐 하며 비꼽니다. 그러나 양쿠미 선생님은 ‘학생을 지킬 수 없다면 선생님이 아니다’라며 밤거리를 돌아다니는 아이들, 웃음을 잃은 아이들, 스스로 폭력 문제에 뛰어들어 경찰서를 왔다갔다 하는 아이들을 구해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행복’을 알려줍니다.


 아마 양업의 선생님들은 이 양쿠미 선생님처럼 스스로도 벌써 힘들고 지치지만 학생들을 포기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학생들의 손을 더 꽉 잡고 놔주지 않는 듯합니다.


양업에 행복한 웃음소리를 만들어주신 신부님, 수녀님 그리고 선생님. 3학년들에게 있어서는 마지막 성모의 밤이 될 이날, 용기를 내어 진심어린 감사를 전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