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생 정우군의 답사~

작성자 : 김경숙 | 조회수 : 4,405 | 작성일 : 2009년 2월 24일

안녕하세요!
재수생 이정우입니다.
먼저 재수하는 주제에 놓여있는 저를 이렇게 의미가 큰 졸업식 앞에 세워 몇 마디 던질 수 있게 해주셔서 정말이지 감사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원에 있으면서 졸업식 가기 싫다고 안가도 된다면서 차라리 여기 있는게 낫다는 망언을 해대는 친구들을 수도 없이 보았습니다. 승리의 예비 대학생들 불러내어 학교 자랑하는 게 전부인지라 예의상 참여하는 졸업식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양업고등학교는 감명깊은 졸업식, 멋드러진 졸업식을 만들어내려고 노력하고 심지어는 이런 입시 패배자에게건 또 어떤 누구에게건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시지 않았습니까.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사람이든, 낙오자든 끝까지 일으켜 세워주고 높여주고 함께 이끌어가는 학교가 바로 이 양업고등학교 아니겠습니까. 저는 이런 양업고등학교를 사랑했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 역시 양업고등학교를 사랑하고 있다고 믿고! 양고생활 3년에 제대로 건진 이 입으로 오늘 졸업식 답사를 시작하겠습니다.
이제는 정말 떠나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3학년 되던 날부터 밤마다
“벌써 3학년이야, 이제 끝났어”라고 장난처럼 또 입버릇처럼 말하곤 하던 저였는데 막상 퇴출 30분 앞으로 다가오니 이제 기쁜 건지 아니면 슬픈 건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시간이라는 게 참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나 지금 pc방 가야겠는데 왜 내 선택을 아빠가 막아요, 지금 뭔 소리하시는 거예요?”
아빠와 격렬하게 다투던 중에 ‘당신이 양업을 선택하였듯이 양업도 당신을 선택하였습니다.’

바로 이곳, 양업고등학교 합격 통지를 받았던 정말 기억에 남는 순간, YQMT 다목적실 테이블에 둘러앉아 성격을 유형별로 나누던 중에 “나 강아지 형인데 그럼 우리 엄만 개냐고..”근심하던 일도.
그리고  처음으로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첫 중간고사 성적표 받은 날도. 반강제 마빡이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던 일도....

미루나무 홈에서 교감쌤과 첫 마무리 하던 날, 쌤을 포함해 모두가 거실에 둘러앉아 있던 중에 귀가하던 건희가 문앞에 붙어있던 미루나무 방인원 명단표를 보며 “야, 진짜 전학생 왔어? 지백이가 누구야?” 배꼽 빠지게 웃었던 일도..
지금은 아니겠지만 유난히 나에게 적대감을 가지고 있던 시우와 도서관 앞에서 크게 한바탕 붙을뻔 했던 일도.(그렇게 전쟁이 선포되었었고)

3학년때는 느끼기 힘들었지만 현장학습, 그리고 지리산 등반코스 정하던 날, 가밀라 수녀님의 가늘고 여린 목소리만 기다리며 이리저리 방황하던 차에 "학사실이다~ 학사실이다~“
먼 길 뒤도 안돌아보고 냅다 달려가며 낚시를 시도하는 진솔이의 안타까운 뒷모습을 우두커니 서서 모두가 함께 지켜봤던 일도...

술 마신 사람들, 일방적으로 벌 주지 않고 올바른 길을 향하는 토의를 통해 동기들과, 또 학년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라고 여기 제 뒤에 계신 병훈쌤과 뽕쌤이 우리들 끼리만의 자리를 마련해 주셨던 일, 그래서 문제 해결보다도 이 분위기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내 20평생 뇌주름 펴질 정도로 고민하던 일도..

봉사활동 한답시고 잡초 몇 개 뽑고 범준이와 진흙날리기로 하루 일당보다도 비싼 비닐하우스 다 찢어먹고, 그 부분까지는 미처 캐치하지 못한 아저씨께 “너희들 일 잘하는구나~” 칭찬을 받고, 빵까지 얻어먹었던 일도...

민재, 건희와 톱 한 자루씩 들고 근처 야산에서 허리띠 졸라매고 한 달 동안 나무를 베어제껴 놓았지만, 병천천 백사장으로 가지고 내려오기가 100개는 더 힘들었고, 열심히 묶어 최진용 선배와 유형진 선배 격려아래 “와~”한달의 노력 양업호 진수식을 시작하고 나서 순식간에 각자 제갈길 멀어져가는 통나무들 바라보며 ‘인생이라는게 쉬운것만은 아니구나’ 깨달았던 일도...

지금 생각해보면 민망하기 그지없지만 예술의 전당에서 우리 양업고등학교가 하나 되던 날도...
마지막으로는 양업 3년 살았음에도 어색한 1명가량을 빼면 우리 3학년 동기들과 작지만, 정말이지 너무나 재미있었고 그리고 너무나 소중한 추억들까지...

이렇게 눈 앞에 생생히 펼쳐지고 내가 지었던 표정 하나하나까지도 모두 기억이 나는데, 그게 2년전이었고 3년전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그저 믿겨지지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떠나는 것이 허무해 학교 벽면에 불이라도 질러서 나의 흔적을 남겨야겠다 잠시 생각했지만.. 그냥! 이 아름다웠던 추억들과 멋졌던 우리들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게 양업 동산에 묻고, 여러분 가슴속에 고이 간직하려고 합니다.

이제는 우리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하고 싶습니다. 제가 양업고에서 잠시 밖으로 나와 지금 이렇게 학원도 들어가고 인문계 아이들도 많이 만나보면서 느낀 것입니다. 가끔 사람들이 묻습니다. “너 어느 학교 다녀?” “아, 양업고등학교라고 대안학교야”라는 대답에 반응이 두 가지로 엇갈리더군요. “대안하교? 거기 마약하는 애들 다니는 데 아냐?” 이틀 전에는 “대안학교? 와~ 그럼 영어 막 free talking하고 공부도 잘하겠다~” 분명한 건 첫 번째 사람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또 두 번째 사람의 생각을 바꿔놓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실력이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후배님들, 귀를 틀어막고 자연의 소리를 거부하며 공부하는 것이 분명히 전부는 아니지만, 훌륭한 인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뛰어난 실력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의 후배들아! 비록 이 형님이 회색분자 재수생이지만, 끝내는 그 2가지 모두를 가진 사람이 더 크게 더 활짝 웃을 수 있게 될거야. 그야말로 엄마친구아들 엄마친구딸이 돼보는 것도 나쁜지 않을 것 같다. 다들 이해하지?
좋아, 하지만 그깟 공부따위. 더 중요한 건 우리 졸업생 같이 멋진 추억 만들고, 무엇보다도 그런 멋진 추억들을 장식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양업고등학교를 만들어 주길 바랄게. 할 수 있지?(그래, 고마워 너희들에게도 행운이 가득하기를 두손 모아 기도할게.)

마지막으로 3년간, 저희를 정성스레 키워주신 선생님들과 알게 모르게 우리 뒷바라지를 해주셨던 모든 학부모님들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과 또 진심어린 이 마음 전하고, 그 마음과 함께 자신이 선택했던 길이었지만... 우리의 영원한 동기 태희를 가슴속에 깊이 묻으며, 이제는 우리 양업인다운 힘찬 발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가슴 떳떳이 펴고 열심히 노력하여 양업고의 명성을 사회 곳곳에서 드높이겠습니다.

우리 후배들, oh! my captain!, 또 우리 동기들... 양업가족 모두를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2009년 2월 12일
제법 화끈한 졸업식을 맞이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