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1월29일자 종교칼럼~

작성자 : 김경숙 | 조회수 : 4,194 | 작성일 : 2009년 1월 29일

종교칼럼】‘중용의 덕’을 통한 행복한 삶 

윤 병 훈<청원 양업고 교장>
 
 2009년 01월 29일 (목) 08:38:40 윤병훈  dynews1991@dynews.co.kr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가장 바라는 것은 ‘행복한 삶’이다”라는 명제에서 출발하여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는 명제를 꺼내고, 그의 정치철학에서 정부의 진정한 역할은 시민들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개인이 사회의 한 구성원이기에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은 결코 홀로 성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지적한 것이다.


다시 말해 개인의 행복과 자아실현을 위해 국가 지도자의 정치철학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드러내고 있다.
시민들이 바라는 행복을 달성하게 하려면 국가 지도자들이 솔선하여 덕을 실천해야 하는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선과 악의 가운데라는 ‘중용의 덕’ 이론을 내어 놓았다.


‘중용’이란 관용이 방탕과 비열함의, 용기가 무모함과 비겁의, 자기존중이 공허와 자기 비하의, 예의가 뻔뻔스러움과 두려움의 가운데로 보는 것이다.
‘중용’은 늘 균형 잡힌 인성을 유지하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행복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가르치고 있다.


인간 성장과정에서 젊은이들에게는 이러한 ‘중용’의 의미가 호소력이 가지지 못하지만, 좀 더 그들이 연륜이 쌓인 다음에는 ‘중용’이라는 의미의 성숙함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진리를 아는 그때를 마냥 기다린다면 진정한 행복은 그만큼 그들 사이에 늦어진다.
따라서 젊은이들이 ‘중용’에 대한 이해와 설득력을 일찍 지니도록 국가관, 즉 정부의 역할을 제대로 하여, 젊은이들이 물질을 소유하기 이전에 상위의 정신적인 가치와 목적을 갖고 생활화 할 수 있어야겠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철학은 아직도 조화롭게 성숙하지 못한 채 흑백논리식의 편향적 논리로 허덕인다. 한 쪽을 수용하면 철저히 한 쪽은 단죄 받는 분위기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정치철학은 편협해서는 안 되며 국민정신과 물질적 요소를 고루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잘 산다는 것은, 정신적인 요소와 물질적인 면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행복의 질적 향상을 꾀하는 것이다.
정신적 기초 없이 물질 추구를 재촉하면 인간은 질적 행복을 이룰 수가 없다. 
진정한 목적과 그에 필요한 수단이 잘 부합하여 국가가 진정한 행복을 살리는 정치철학이 요구된다.


예를 들어 국가는 국민교육에서 국민공통으로 유치원 시절부터 ‘정직’을 내 생명처럼 가르칠 책임을 지녀야 한다.
물질의 부를 바라다가 정직을 놓치는 우를 범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직을 가르치면 ‘자녀가 바보가 된다.’는 걱정들이 일반적인 생각이다. 이런 교육이 되어짐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상황이 깊이 있게 사회화 되어간다면, 시민들은 결코 진정으로 행복해 질 수가 없다.
정부는 시민들이 ‘중용’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훈련시켜 습관화하게 하여 인간 삶의 목적인 ‘행복’을 향유하도록 지도하고, 정부 스스로 그러한 모습을 솔선하여 보여주어야 한다.


이러한 국가관은 국민 모두를 행복한 국민으로 가꿔줄 것이다.
이러한 건강한 정부를 통하여 건전한 사회를 만들어가고, 그 사회의 시민들이 질적인 행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큰 기쁨의 한 해를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