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집 자녀들..동양일보 칼럼

작성자 : 신안나 | 조회수 : 4,976 | 작성일 : 2009년 9월 10일

윤 병 훈     
<양업고 교장>

-동양일보, 종교칼럼


‘수(秀)는 빼어나다, 우(優)는 우수하다, 미(美)는 보기 좋다, 양(良)은 양호하다, 가(可)는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학생들 각자에게 주어지는 성적은 모든 학생을 교육의 대상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만 성적이 우수(優秀)한 학생들만을 가능태로 보고, 양가(良可)집 자녀들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글로벌 시대에 자원이 부족하고 세계를 향하여 살려니 어쩔 수 없다고 말들 하지만….

축산 농가에서 생산을 목적으로 소나 돼지를 방목시키지 않고 먹이만 주며 사육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학생들도 교실이라는 한 공간에서 대학진학을 위해 지식을 먹여주는 것은 아닐까. 성적 탓에 학부모는 자녀를 강제하고 학생들은 쌓여가는 스트레스에 시달려야만 한다.
 
특히 양가(良可)집 자녀들은 어딜 가나 천덕꾸러기다. 설, 추석 명절에 일가친척이 모이면 집안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자식 자랑을 늘어놓기 바쁘다. 그런데 양가집 자녀를 둔 가족들은 주눅이 들고 몸 둘 바를 모른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부모들은 자녀를 불러 세우고는 닦달한다.
“뭐가 모자라서 공부를 못하니, 학원을 안 보내 줬니! 용돈을 안줬니!”라며 언어적 폭력에 가까운 비난을 쏟아 붙기 일쑤다.

학교는 꼴찌의 천재부터 일등의 바보들까지 있는 장소이다. 서울의 한 장학관이 학교를 방문하여 이런 우문(愚問)을 했다. “대안학교는 인성교육만 시킨다고 들었는데 지식교과수업은 왜 하며, 대학 진학은 왜 시키나요? 거긴 문제아들이 가는 학교가 아닌가요?" 하고 묻는다. 이는 학생을 성적으로 구분하여 꼴찌를 가능태로 보지 않고는 학교를 수용소 정도로 취급하는 모양인데, 교육현장의 슬픈 단면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대안학교를 복지시설, 수용소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장학관을 만날 때면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관리가 학생을 이런 식으로 구분하는 시각에서 과연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는지, 심히 걱정되고 유감이다. 

교육의 위기는 한 인간에 대한 성장과 성숙을 급조하는 조급성과 성과위주에서 비롯된다. 교육현장은 먼 미래에 대한 안목의 여유를 가질 필요가 있다. 명문대학에 학생 한 명 보내면 그 학교가 명문이 되고 학교위기에서 탈출할 것이라 보는데,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학생의 희생이 요구되는가도 세심하게 살펴야 할 것이다.   

학자를 포함하여 어느 누구든 힘든 공부를 좋아할 사람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다. 내적통제능력이 없는 양가집 도련님과 규수들은 아직 자발성이 없어 공부를 놓치고 힘든 교육현장을 피하여 즐거움의 기호성 수단을 더 선호한다. 이런 학생들을 바라보는 어른들은 그들을 다루기 힘들다고 괄시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현실태가 좋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을 가능태가 되도록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방법적으로 대안을 찾아주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교육이다.
Education이라는 교육의 의미는 educare라는 라틴어 동사에서 비롯된다. 교육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교육대상의 현실태를 놓고 무한한 가능태를 끊임없이 그들로부터 꺼내 주는 것, 그것이 교육인 것이다.

성적 구분 없이 많은 학생들이 몰려오는 학교가 있다. 그 이유는 모든 학생들을 가능태로 보고 기초부터 인성교육으로 착실히 쌓아올려 장차 그들 스스로 건강한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학교가 학생들을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여 주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은 양가집 도련님과 규수들이라도 모든 면에서 빼어날 수(秀)를 받고 모든 과정을 마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인간 된 모습을 졸업식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모든 학교의 졸업식장 만큼은 대학 진학생이건 재수생이건 학교생활이 행복했기 때문에 사제지간의 감사의 정이 넘쳐나는 축제 분위기를 볼 수 있는 교육현장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조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