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한 딸

작성자 : 김경숙 | 조회수 : 4,693 | 작성일 : 2010년 2월 16일

공부 못한 딸

                                                   
                              - 최영희 (월간독자 Reader) 편집위원-

어머니 말에 의하면 나는 어릴때 공부만 했단다. 학교갔다 오면 책가방을 멘 채 엎드려 책을 읽었다고 한다. 자식 기특한 마음에서 과장도 했겠지만 아무튼 나는 공부밖에 몰랐다.

 집에 오면 책을 다 꺼내놓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다 다시 보고, 또 다음날 시간표대로 미리 공부를 하고 책가방을 쌌다.  시험이 다가오면 한 달 전부터 공부를 해서 시험 전날은 공부할것이 없어 일찍 잤다. 오죽하면 시험과목을 잘못 알고 갔는데도 백점을 맞았을까....

 그런 나에게 첫아이가 생겼고 그 아이가 학교에 들어갔다. 아빠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니 아이의 공부습관도 으례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아이는 나와 너무 달랐다.

 초등학교에 가더니 공부는 커녕 숙제도 안하기 일쑤였다. 동네 아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놀기만 좋아했다. 그러니 내가 삼 년 동안 틀린 문제의 숫자를 아이는 시험 한 번에 다 채웠다. 시험성적은 늘 엉망이었다.  어느 시험 전날 아이가 두 손 모아 하는 기도를 들어보니 "하느님, 이번 시험에는 스무 개만 틀리게 해주세요!"하지 않는가? 나는 기가 막혔다. 난 학교 다닐 때 하나도 안 틀리게 해달라고 늘 기도했는데...

 좀 나아지려니 지켜보았지만 날이 갈수록 더해갔다. 아이에게 성적에 대해 겉으로는 내색하지는 않았으나 내 속은 타들어갔다.  저렇게 공부를 안하니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태산이었다.

중학교 들어가서도 나아지지 않았다. 세과목 시험을 보는 날이면 한 과목을 겨우 반만 공부하고 갔다.  좀 나아지겠지 하며 기다리던 내 인내는 아이가 중3이 되자 무너져 내렸다. 급기야는 아이가 미워졌다. 게으로고, 계획도 목표도 없는...

 근심이 극에 달하자 아들 사도세자을 죽인 영조가 떠올랐다. 그가 왜 자식을 죽였겠는가. 자식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이해심까지 생겼다.

 나는 급기야 몸져누웠다. 아이가 대학은 커녕 전문대도 가기 힘들었으니...그렇게 아이를 마음으로 꾸짖으며 나날을 가슴 졸이며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예전에는 내게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던가 하는 생각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세상에 처음 나와 마주친 눈짓, 웃음짓, 몸짓...깔깔 웃는 웃음소리, 기어가다 일어서다 처음 떼어놓은 발자국, 그 대견함, 조그만 손으로 벽에 그려놓은 줄 하나, 삐뚤삐뚤 써놓은 첫 글씨...모두 빛나는 보석들이 아니었던가.  그 귀하고 사랑스런 아이를 공부 하나 안한다고 실망해 이렇게 미워하다니...

 친구 하나 없이 외톨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과 달리 아이는 친구가 많지 않는가. 공부에 매달려 책읽기에 인색한 나와 달리 아이는 책을 많이 읽지 않는가.    한곳에 정신 쓰다 뭔가를 빠뜨리기 일쑤인 나와 달리 아이는 내가 놓친 것을 꼼꼼히 책겨주지 않는가.  어릴 적 넘어져 사이다를 깨뜨리자 울며 빈손으로 돌아온 나와 달리, 그런 경우 씩씩하게 일어나 다시 사오는 융통성을 지닌 아이다.

 따돌림받는 반 아이를 혼자 친구해 주고, 폭행과 일탈로 친구들이 다 싫어하는 아이를 "불쌍한 아이예요"하던 마음 넓은 아이다.  하루하루를 초조하게 쫓기듯 살던 나와 달리 아이는 자신에게 만족하고 행복하다.  이렇게 좋은 아이를 나는 공부하나 못한다고, 인생의 낙오자대하듯 마음속으로 접어좋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내 가슴을 가득채우자 아이의 뒷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둥근 머리, 어느새 의젓이 자란 몸, 느긋하고 편한 성품..." 아 아 사랑스럽고 귀한 내 아이, 행복하면 됐지..더 무엇이 필요하단 말인가"

 초등학교 입학부터 실로 9년만의 일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 대한 걱정도 근심도 바람도 없어졌다. 적어도 학교나 성적에 대한...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날 이후 우리 아이에게 변화가 생겼다. 거짓말처럼 아이는 공부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시간을 쪼개쓰고 독서실도 가고 시험공부도 미리하고, 가고 싶은 대학도 생기더니 무엇이 되고 싶어하기도 하고... 

그것은 예기치 못한 선물이었다. 나는 이미 그때 내 아이 그 자체로 족했으니 선물은 황송했다.  변한 아이가 그것으로 행복해하니 그것이 좋은 뿐, 내게는 과한 선물이었다.

 (월간독자 Reader 2010년 2월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