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모의 밤을 보내고...

작성자 : 2학년 학부모회총무 | 조회수 : 4,061 | 작성일 : 2003년 5월 28일

46년전 강원도 시골 마을에는 유치원이라는 곳이 달리없이 교회나 성
당에서 유치부를 운영하고 있어서 나는 그나마도 유치원 교육의 혜택
을 2년간 누리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날 이후 양업고에
입학한 아들 덕분(?)에 처음으로 성모의 밤 행사를 지켜보면서 그 까
마득한 어린 시절에 교리공부를 마치고 세례를 받고 이런저런 가톨릭
행사에 하~얀 원피스를 차려입고 수녀님 손에 이끌려 화동으로 따라다
녔던 기억이 아스라히 떠오르며 새삼스럽게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뜨신
친정엄마를 생각하였다. 나는 친정아버지가 대한민국 개화의 시발지
인 평안도 출신인 탓에 일찌기 할아버지대 때부터 장로교회 신자였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말하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당시에 부
모님이 어떤 연유로 성당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다니게 했는지 기억
이 없다.
...아마도 나를 안고 다니신 수녀님이 성모님처럼 아름다운 분이셔서
내가 때를 썼던가 아니면 초등학교 교사출신이었던 친정엄마가 세심하
게 판단하신 결과였으리라...
어찌되었건 장로교 모태신앙인 우리 형제들은 성장하여 각자의 신앙
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여동생과 남동생이 독실한 카톨릭 신자가 되어
내아들 준우를 양업고에 연결시켜 주었다.

이렇듯 어린 날의 회상과 성모의 밤이 주는 감동에 푸~욱 빠져있는 사
이에 학생들이 성모님께 드리는 글을 낭송하는 차례가 되었다.
1학년 박고은 학생에 이어 전복선 학생과 2학년 이준규 학생이 글을
드렸는데 어쩜 그리도 마음들이 예쁜지 성모님의 손길이 낭송하는 그
들의 머리를 한 사람 한 사람 쓰다듬고 계시는 듯한 착각을 느꼈고 평
소 그리도 철없어 보이던 준규학생이 `우리 양업의 학생들은 성모님
의 정원에 자라고 있는 꽃들이므로 아름답게 돌보아 주세요`라는 고백
을 할 때는 아들의 친구라고 만날 때마다 아들 대하듯이 잔소리를 했
던 내자신이 성모님께 몹시도 부끄러웠다.

그런데...그 중에서도 가장 나로 하여금 성모님 앞에 고개를 숙이도
록 한 건 박고은 학생이 드리는 글이었다.
프로문필가 버금가는 문장력과 과감한 자기고백, 담담하게 자신의 글
을 낭송하고 있는 고은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면서 내 자신이
끝없는 나락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자신은 그다지 훌륭하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에게는 제 멋대로 식의 이
중잣대를 적용하며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해 왔던가, 고은이처럼 엄
마보다는 할머니와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던 내 아들 준우는 지금
도 침대보다 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 걸 좋아하는데 아이를 야단칠 일
이 생길 때마다 나의 감정을 억누르는 하나의 방법으로 아들이 침대보
다 요를 좋아하게 된 원인이 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 엄마
로서 진실로 미안함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고은이의 거침없는 자기 고백을 들으며 너무도 애처럽고 미안하
고...진정한 모성의 가치에 무책임한 엄마에게 분노하는 가운데에서
도 자신의 방향을 바로잡으려 부단히 노력하며 고통의 순간을 극복해
온 수 많은  고은이, 준우가 이 양업의 교정에서, 사랑의 성모님이 가
꾸시는 정원에서 각양각색의 꽃들이 되어 피어나고 있었다.
하나 하나 주위의 축복을 받으며 커다란 기쁨 속에서 태어난 우리의
아이들, 지금 우리 아이들의 모습이 과거 우리의 모습이고 지금 우리
들의 모습이 과거 우리 부모님들의 모습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순환
의 고리를 다시금 되새기고 받아들이는 진실로 경건하고 겸손한 성모
의 밤이었다.
 
양업의 모든 고은이 파이팅!! 준우 파이팅!!           

* 행사에 참여해 주신 3학년 남동헌 어머님,
  첼로 협주, 꾀꼬리 합창단으로 대단한 활약을 해주신 1학년 학부
  모님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참여가 부족했던 2학년 학부모를 대표하여 다시금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