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반-조재연신부님의 청소년사목이야기

작성자 : 허미옥 | 조회수 : 5,623 | 작성일 : 2007년 9월 4일

<조재연 신부님의 청소년 사목이야기>
1997년 봄, 청소년 국제기구 YCS(Young Christian Student) 안에서도 활성화된 청소년 조직인 오스트레일리아의 전국회의(National Conference)에 아시아 대표로 초대받아 퍼쓰(Perth)를 방문했다. 그들의 조직은 우리나라와는 다른 면모를 갖추고 있었다. 주교회의에서 전국 청소년 자체 조직을 만드는 것을 허용할 뿐 아니라 격려하고 있었고, 그 스탭들은 고등학교 휴학생들로 구성돼 있었다. 그들은 주교회의에서 나오는 예산으로 기본 생활비와 활동비를 쓴다. 전담제(Full-Timer)로 3년간 일하는 스탭들 나이는 18~19살이다.

 나는 그들의 이런 헌신을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본당에서 활동하다 지역 대표로, 그리고 호주 전국 대표로 선출되는 것이었다. 학교 교육에 있어서도 휴학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뿐만 아니라 부모나 청소년 자신들도 그러한 체험을 앞으로 펼쳐질 삶에서 하나의 중요한 기회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은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했다. 대표자들은 사춘기 청소년들이었지만, 나름대로 교회와 청소년 운동에 헌신한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들 뒤에는 교구 평신도 청소년 사목자들과 주교님, 사제와 수도자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것을 주도하는 사람은 청소년들 자신이었다.
 
 그 모임은 오스트레일리아 각 지역 대표들이 매년 방학 중 2주간을 이용해서 전국 청소년 대표자 모임을 하는 것이었다. 처음 참여했던 2~3일은 좀 이해하기 어려웠다. 이것이 가톨릭 모임인지 일반인 모임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미사도 기도도 없었고, 회의 중에 졸거나 드러누워서 자는 친구들도 많았으며, 심지어 모임에 참여하지 않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 친구들은 지역 대표라기보다는 그냥 한국의 한 본당 청소년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 같이 보였다.

 그 자리에는 호주의 청소년담당 주교님도 계셨지만,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처럼 반바지를 입고서 아이들과 함께 그 시간을 보내고 계셨다. 또한 사제, 수도자들도 있었지만 아무도 관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 이것이 이 나라의 현실이구나. 아이들에게 끌려가는 교회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4일째 되는 날 밤 세션이 끝나갈 무렵, 공지사항 시간에 "내일 지금까지의 회의를 평가하는 시간을 가지니까 모두가 빠짐없이 아침에 모여달라"는 얘기가 나왔다. 옵서버로 간 우리는 지금까지의 실망 때문에 별 관심 없이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관찰하고 있었다. 평가 시간은 놀라운 이야기들로 가득찼다. 청소년들 중 일부는 매우 심각하고 비판적 시각으로 의견을 개진했다. "우리는 가톨릭 청소년인데 기도도 드리지 않았다", "왜 우리는 매일 미사를 드리지 않는가?", "우리는 전국 대표들인데 모임 방식이 너무 소극적이었고, 몇몇 사람만 참여한다". 그리고 많은 제안이 나왔다.

 여하튼 그날을 기점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다. 청소년들은 자체 평가를 통해서 스스로 자신들의 태도를 바꿨으며 미사 시간과 기도 시간을 만들었고, 매일 저녁 정말 창의적 기도 모임을 이끌었다. 너무도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바뀐 그들의 모습에 나는 놀라고만 있었다. 청소년들이 주체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그동안 방관자처럼 지켜보고 있던 사제들과 주교님도 그들의 제안에 따라 움직여주고 계셨다. 청소년들이 미사를 드리자고 요청하자 그제서야 미사를 함께 드리는 주교님과 사목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난 그때 "아하!"하는 체험을 하게 됐다. "이것이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청소년 중심의 교육이다."

 청소년 스스로가 깨달아 올바른 방향을 찾아갈 때까지, 그들이 느낄 수 없게 은근하게 자극하고, 기다려 주는 주교님과 사목자의 모습을 통해서 진정한 동반자, 활성가의 역할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 이후 나는 어떻게 청소년들 안에서 그들이 스스로를 바라보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하는지를 배웠다.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이제야 무엇이 진정한 동반인지를 조금 알 것 같다.
 
 "청소년들에게 스스로 깨달을 수 있는 실패의 경험을 제공하자. 그리고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자. 그러면 그들은 삶의 가장 중요한 것을 갖게 될 것이다."

<조재연 신부 홈페이지: http://www.frch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