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

작성자 : 김선희 | 조회수 : 3,570 | 작성일 : 2005년 3월 8일

늦은 퇴근을 하고나서 장을 보러 갔습니다.

큰 애를 학교에 남겨두고 와서는 모든 일이 손에 잡히지를 않아

그냥 집에 있는 반찬들로 줄기차게 일주일을 때웠습니다.

그런데, 그 남아있는 김과 마른 반찬들도 다 떨어져 묵은 김치밖에 없

어서

어쩔 수 없이 장을 보러 갔는 데, 먹음직스러운 빨간 딸기가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마침 딸기 마감세일도 하고 있더군요.

다른 때 같았으면 아무 생각없이 운이 좋았음을 랄라룰루하며

3팩을 카트에 담았을텐데 이번에는 선뜻 손이 가지를 않았습니다.

딸기를 좋아하는 큰 애도 없이 남은 식구들만 먹는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가끔씩 친구 핸폰을 빌려서 '나야. 오늘도 울었어.'하면서

짧게 소식을 전하는 딸애한테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고

무척 힘들어하는 딸애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은 식구들도 큰 애의 빈 방을 보면서,

큰 애가 다니던 학교 앞을 지나치면서,

큰 애가 없다는 것에 적응하느라고 다들 힘들어하고 있는 데

부모 떨어져서 지내는 아이는 더 힘들게 적응하고 있으리라고

생각이 됩니다.

작은 애가 딸기 사달라고 몇 번이나 졸라댔지만 모르는 척하고

그냥 반찬 몇 개만 사들고 왔습니다.

남들이 가지않는 어려운 길을 택했고

그 선택이 아이의 장래에 도움이 되리라고 믿고 있기에

지금도 선택에 후회는 없습니다.

다만, 딸 아이가 이 순간의 힘듬에 좌절되지 않기를,

이 어려움이 아이에게 거름이 되어서

더 큰 고난이 있을 때 여유있게 헤쳐나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