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본고향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1,715 | 작성일 : 2020년 11월 20일
돈의 본향
깊어가는 가을, 우수수 낙엽이 진다. 이맘때면 ‘사람은 주먹을 쥐고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는다.’,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않았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라는 만고진리가 절로 생각난다.
사람에게 하늘이 보내주신 두 친구가 있다고 치자. 하나는 ‘삶’이란 친구요. 다른 하나는 ‘죽음’이라고 치자. 그러나 사람은 늘 함께 하는 이 두 친구, ‘삶이 누구이며 죽음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살 때가 허다하다. 일하지 않으면 돈을 벌 수 없고, 돈이 없으면 먹고살 길 없으니, 두 친구를 생각할 겨를이 없으리라.
학부모 교육이 있는 날, 이런 물음을 그들께 물어보았다. 1)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분, 2) 지금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지 못하는 분, 3) 지금 내가 싫은 일을 하면서 돈을 많이 버는 분, 4) 지금 내가 싫은 일을 하면서 돈을 전혀 못 버는 분. 당연히 1번과 4번에 해당하는 양극단은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1번에 해당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 하였더니, 어머니 한 분이 손을 드셨다. 함께 했던 부모들이 ‘와! 우~’하고 놀라면서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술술 넘어가서 ‘술’이고, 살고 살아서 ‘삶’이며, 돌고 돌아서 ‘돈’이라 했던가. 오늘날 ‘돈이 세상을 지배한다.’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안다. 원하는 걸 할 수 있는 돈의 위력을 안다. “부가 가장 큰 우상이다. 대중 전체가 부를 본능적으로 섬긴다. 사람들은 재산으로 행복을 재고 재산으로 명예를 저울질한다. 재물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니, 재물이야말로 우상이다. 돈과 함께 또 다른 우상이 이 있다면 명성이다. 명성, 곧 세상에 알려지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것, 그 자체가 최상의 선인 양, 참된 숭배의 대상인 양 여긴다. 실로 우상에 이르는 명성이라 할 수 있다.”(존 헨리 뉴먼)
생각해 보면, 돈이란 교환 수단으로 사용하자는 공동체 내의 약속이기도 하다. 약속에 의한 것이니 공동체 밖에서는 아무 가치가 없다.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힘이 없다. 종잇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돈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사람에게 달렸다. 돈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것이리라. 돈은 교환 수단이므로 언제나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 관계를 맺은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교환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자기 재산 둘레에 높은 담을 쌓는 부자들처럼, 돈이 고립되어서는 안 된다. 돈은 나뉘어야 한다. 참으로 행복한 세상이란 영적·창조적으로 돈을 다루고, 내적으로 자유롭게 준비된 상태에서 돈을 통해 사람들에게 봉사하고, 그들의 삶을 깨워내는 것이다.
살아 보니, 삶도 내 것이니까 살아야 하고, 또 내 것이 아니니 죽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내 것이니 소중하게 아끼다가, 내 것이 아니니 임자께 돌려드려야 함을.
깊어가는 가을, 낙엽이 우수수 떨어진 그 자리에서,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가 “본래의 고향鄕을 생각思”하자고 지은, 사향가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어화우리 벗님네야 우리본향 찾아가세 /
동서남북 사해팔방 어느곳이 본향인고 /
우주간에 빗겨서서 조화묘리 살펴보니 /
이렇듯한 풍진세계 안거할곳 아니로다 /
인간영복 다얻어도 죽어지면 헛것이오 /
세상고난 다받아도 죽어지면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