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 한번 해 주세요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1,712 | 작성일 : 2020년 12월 16일
조율 한번 해 주세요.
“아니! 네가 벌써 3학년 졸업반이야? 양업고에 입학한 게 어제인 것 같은데”
“아~아~ 그러게요. ‘시간이 야속’하네요”.
“행복하게 잘 지내냐?”,
“글쎄요. 답답하네요. 이렇게 가슴을 치면 좀 나으려나?”.
“너, 코로나 블루(Corona blue)에 걸렸구나!”
“예, 야속한 ‘코로나 19’가 저를 우울하게, 무기력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가슴을 주먹으로 치니. 빨리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나왔으면 좋겠다.”
2020년도 마지막 달이고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순간,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는 친구를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을까 고민에 빠져본다.
혹자는 말한다. 이 코로나 정국에 하느님이 어디에 있냐고, 잠자고 있는 하느님은 믿지 않겠노라고. 그렇다. 후안 아리아스도 말했다. 잠자는 하느님을 결코 믿지 않는고. “나약이라는 죄악 안에 인간을 '붙들어 매 놓는' 하느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고 울먹이며 말하는 정직하고 신실한 한 인간이 시달리고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해답을 주지 못하는 하느님. 물질을 죄악시하는 하느님. 고통을 사랑하는 하느님. 인간의 기쁨을 시기하여 중단시키는 하느님. 인간의 이성을 빈약하게 만드는 하느님. 카인의 새 후예를 계속 축복하는 하느님. 마술사와 요술쟁이인 하느님. 온갖 절망 속에서 내가 희망할 수 없는 하느님을 나는 믿지 않는다.”
천주교에서는 ‘미사’ 때마다 ‘고백의 기도’를 바친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라고 한다. 이 「탓」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가슴을 친다.
가슴을 치는 의미는 무엇일까? 사람이 주먹을 쥐고 제 가슴을 친다는 것은 내면세계의 대문을 두드려 열어젖히는 동작이다. 내면은 마땅히 ‘생명과 빛과 활력이 가득한 터’이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가슴속은 어떤 상태인가? 온갖 의무·고충·결단 등 절박한 요구들로 가득 차 있다. 또 삶의 한 가운데에서 죄와 죽음에 둘러싸여 있지만 별로 실감이 안 난다. 이런 상황에서 ‘깨어나라’, ‘네 사정을 살펴라’, ‘정신 차려라’, ‘마음을 돌려라’. ‘참회하라.’라고 가슴을 치는 것이다. 자신을 쳐서, 하느님 편에 서서 자신을 벌한다. 한마디로 성찰과 회개에의 촉구이다. 회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메타노이아”는 “(새롭게) 생각을(행위까지) 바꾸다.”라는 어원을 지니고 있다. 개선과 전환은 새로운 생각에서 시작된다. 생각을 바꾸어야 자신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 진정한 삶을 향한 새로운 길을 갈 수 있게 된다.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이 한 해의 끝자락에서 박노해 시인의 '길'을 읽어보며 삶의 위안을 삼아본다. "먼 길을 걸어온 사람아/ 아무것도 두려워 마라/ 그대는 충분히 고통받아 왔고/ 그래도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자신을 잃지 마라/믿음을 잃지 마라/ 걸어라/ 너만의 길로 걸어 가라/ 길을 잃으면 길이 찾아온다/ 길을 걸으면 길이 시작된다/길은 걷는 자의 것이니”
그랬더니 또 평소 좋아하는 ‘조율’(작사· 작곡: 한돌, 노래: 한영애)이란 노래의 후렴이 흥얼거려진다. “잠자는 하늘님이여 이제 그만 일어나요/ 그 옛날 하늘빛처럼 조율 한번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