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편지-고요함에 머물러라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832 | 작성일 : 2022년 10월 21일
가을 편지-고요함에 머물러라.
천고마비의 가을이다. 하늘의 파란 바다 아래, 붉게 타는 단풍과 주렁주렁한 빨간 꽃사과 송이는 그리운 임을 향해 다홍으로 불타는 사랑을 노래하는 듯하다.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는 좋은 소식이 있다.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위대해질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 수 있는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룰 수 있는지, 얼마나 잠재력이 큰지 모를 만큼, 좋은 소리에는 한계가 없다.” 독일의 작가 안네 프랑크의 말이다. 그렇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 있다. 좋은 소식은 성별이나 나이, 국적을 가려서 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이런 마음이 이미 존재하고 있다. 문제는 쉽게 듣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자신의 내면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내면의 소리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자신과 고요히 마주할 때만 들리게 된다.
한 교실에서 ‘세계 7대 불가사의’를 선정하는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아이들이 만든 목록은 그랜드 캐니언, 만리장성, 파나마 운하, 타지마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이집트 피라미드, 로마의 성베드로 성당이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여태 의견을 말하지 못한 여학생을 발견한다. 선생님이 그 아이에게 다가가 말한다. “선정이 힘들면 좀 도와줄까?” 빨개진 얼굴의 아이가 대답한다. “불가사의가 하도 많아서 다 적을 수가 없어요.” 선생님이 말한다. “괜찮아, 지금까지 적은 걸 그냥 읽어보렴.” 아이는 쑥스러워하며 읽기 시작한다. “제가 생각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는 ‘느끼는 것’, ‘만지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맛보는 것’, ‘웃는 것’, ‘사랑하는 것’”입니다. 발표 후 교실은 숙연해진다. 이 유튜브 영상의 마지막 자막은 이러하다. “우리가 매일 당연시하는 것들, 그게 바로 진정한 불가사의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이 경이로운 선물들을 마음껏 즐기십시오.”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것,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풍요로운 삶이 아니던가. 이것이 빠져있는 오늘날의 우리는 영혼이 없는 삶, 사색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시끄럽게 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삶의 가치와 의미의 논의에서 영성이란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영성은 인간의 깊은 내면으로 직접 관통하는 영역이다. 시끄러운 우리의 세상에서 내적 평온을 되찾기 위해서는 영성이 필수인데 고요함이 그 영성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타고르Tagore)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의 영혼을 고요한 침묵에 흠뻑 젖게 하시오”
‘고요’라는 말은 라틴어로 ‘실렌시움(Silentium)’으로 ‘그치게 하다’, ‘진정시키다’, ‘조용하게 하다’에서 유래한다. 어머니는 배고픈 아이에게 젖을 먹여 울음을 그치게 한다. 고요는 우리의 시끄러운 생각들과 요란스런 욕구를 침묵시킨다. 고요의 공간 안에서 나는 진정한 자아와 접촉하게 된다. 고요함이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예컨대 잔소리 좋아하는 어머니가 어느 순간 조용해졌다. 조용하게 되자 기뻐하게 되었으며, 기뻐하게 되자 착한 어머니가 되었다.
장바구니 물가가 심상치 않고, 금리와 환율이 오르는 가운데 경기가 좋지 않아 어려운 가을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진행 중이며, 희망적인 이야기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면의 공간에 고요하고 온전하게 머무는 가을이면 좋겠다. 바로 거기 고요의 공간에서 비로소 편히 쉴 수 있다. 고요는 세상의 소음으로 꽉 메워져 더는 숨을 쉴 수 없는 우리 영혼을 위한 약이다. 고요함에 머물 때 우리는 더욱 건강하고 더욱 완전한 존재로 나아간다. 고요는 우리 내면의 맑은 샘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