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찬가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177 | 작성일 : 2024년 8월 9일
“늦게야 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렇듯 오랜, 이렇듯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부르시고 지르시는 소리로 절벽이던 내 귀를 트시고,
비추시고 밝히시어 눈멀음을 쫓아내시님 향내음 풍기실 제
나는 맡고 님 그리며,
님 한 번 맛본 뒤로 기갈 더욱 느끼옵고, 님이 한번 만지시니
더없는 기쁨에 마음이 불타나이다.”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 제10권 27장 -
내가 참으로 좋아하는 구절이다. 특히 하느님을 “님”이리고 부르는 까닭에 더욱 자주 애송하게 되었다.
우리 말은 대개 상대방을 높여 부를 때 접미사 ‘-님’을 붙인다. 아버님, 어머님, 선생님, 할아버님, 할 때의 ‘-님’이 그런 경우이다. 새삼 동방예의지국의 ‘인간 존중’ 관념을 생활화한 좋은 언어관습의 예로 보인다.
정호완 님의 「우리말의 상상력」에 따르면, ‘님’의 더 오래된 전 단계의 말은 ‘니마’라 한다. 지금도 얼굴의 한 부분으로 눈썹 위에서 머리털이 난 부위와 사이를 이마라고 하지 않는가. ‘니마’ 혹 님은 태양을 뜻하는 불의 신이며 방위로는 남쪽 앞이니 신체 부위 중 높으면서 앞쪽이 됨을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니마’의 상징 계절로는 여름이라 한다. 그러하기에 상대방을 ‘-님’이라고 부르는 우리말의 관습은 호칭 되는 사람을 태양신과 같은 존재로 본다는 의식이 그 밑바닥에 있다고 한다.
여름은 태양의 계절이다. 여름은 네 계절 중 제일 덥고, 낮은 길며 밤은 짧다. 태양의 본질은 따뜻한 빛을 주는 것이다. 태양은 언제나 빛나고 언제나 열기와 빛을 방출한다. 그리스어로 태양과 태양신을 ‘헬리오스’라 한다. ‘헬리오스’는 ‘시간의 표시자’, ‘방향의 표시자’, ‘태울 듯한 열기의 원천’이다. “정녕 빛은 달콤한 것, 태양을 봄은 눈에 즐겁다.”(코헬 11,7)고 한다. 그렇더라도 작열하는 태양만은 피하고 싶은 요즘이긴 하지만 말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태양이 없으면 죽음에 이를 것이다.’ 모든 생명은 빛이 필요하고, 전 생명체는 빛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태양이야말로 하늘에 빛나는 가장 위대한 이마요, 눈이요, 광명이니 에너지의 총본산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봄에 싹이 트고 꽃과 잎이 핀 것을 성숙하도록 하는 것도 태양이 아닌가. 꽃이 피었던 자리에 열매를 달고 그 속에 생명을 담아 넣는 것이 태양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태양은 새로운 ‘목숨살이’의 장을 열어 나아가는 것이다. 수수만년 매 가을마다 열매가 땅에 묻혔다가, 봄이면 새로운 생명으로 되 태어난다. 바로 태양의 작용이다. 그러하기에 예부터 태양을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지고의 우주적 예지와 생명 원리의 화신으로 여겼다. 옛날 사람들은 태양과 더 친밀성을 느꼈던 것 같다. 예컨대, 잉카인들은 스스로 “태양의 아들”이라 칭했고,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빛의 자녀”라 불렀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한창 기쁨에 넘쳐 있는 사람을 보면 무릇 이렇게 말한다. “막 해가 떠오르는구나.”
기실, 기쁨과 생기를 퍼뜨리는 태양의 사람들이 우리 도처에도 여전히 있다.
“그대도 다른 이들의 태양이 되기를.”
그리하여 언젠가 사람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하길 빕니다. “오늘 당신은 태양처럼 빛나네요. 당신이 들어서니까 여기가 더욱 밝고 따뜻해졌어요. 우리 가운데 태양이 상쾌한 빛살을 던지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