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경험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8 | 작성일 : 2024년 11월 24일
낙엽이 한 잎 두 잎 떨어지고 있다. 아무런 바람도 없었는데 스스로 시간대에 도달해 마무리되는 낙엽들. 그것들을 물끄미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삶도 한 조각 한 조각 단절되는 듯하다. 우수에 젖어가는 나에게 낙엽들은 한층 몰아붙이며 또렷하게 속삭인다. 바로 구약 성경의 코헬렛의 한 구절이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죽일 때가 있고 고칠 때가 있으며, 부술 때가 있고 지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코헬 3,1-4)
살아 있는 것들의 유한함을 일깨워 주는 낙엽 앞에서 오히려 지난날들의 기억이 소중해지는 것은 또 무슨 연고인가? 과거가 고통이 아닌 아름다운 추억으로 쌓인다는 것을 낙엽은 온몸으로 보여주려는 것인가? 단순한 소멸 낙하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희망하는 생명의 연속성을 깨우치려 함인가?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시간에 관해 묻고 답한다. “대체 시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막연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대답하려고 보니 비로소 답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시간은 “세 가지가 있는데, 과거의 현재, 현재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현재이다. 오직 영혼에만 이 세 가지 시간이 존재하는바. 과거의 현재는 기억이고, 현재의 현재는 관조이고, 미래의 현재는 기대이다.”
그리스인들은 `때'와 `시간'을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로 구분한다. 크로노스는 측량할 수 있는 시간, 즉 물리적 세월이다. 크로노스의 명령을 따르는 사람은 시간을, 기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와 달리 카이로스는 좋은 순간, 환영받는 때를 말한다. 크로노스가 양적 시간을 의미한다면 카이로스는 시간의 질을 가리킨다. 이 카이로스는 내가 나에게 몰입하는 순간, 완전히 나로 존재하는 순간이다.
아브라함 매슬로는 시간과 영원이 하나인 그 `임팩트 순간'에 대한 경험을 `정상경험'이라 한다. 예컨대 봄날 혼자서 들판에 나갔을 때, 친구와 함께 산봉우리에 섰을 때, 음악회의 무대 한가운데 서 있을 때, 아이를 낳았을 때,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볼 때 …. 이러한 정상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묻는다면 우리는 그저 더듬거릴 수밖에 없다. 왜냐면 `그냥 압도당했다. 완전히 그곳에 있었다. 경악할 신비이다.'라는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봄이 오면 낙엽도 새싹을 위한 양분이 되듯, 우리의 기억과 경험 또한 다음 세대를 위한 자양분이 되리라. 가을의 나뭇잎은 단순히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순환 속에서 우리가 만났던 `정상경험'의 깊이를 송두리째 담고 있다. 그러하기에 비로소 삶은 아련하면서도 동시에 아름다우며 이런 소멸의 시간에서조차 싹틔울 희망을 재촉한다. 낙엽처럼 묵묵히 나아가는 의연함이 필요하리라.
낙엽이 지는 이 가을, 특히 삶이 고단하신 분, 온몸이 쑤시는 분, 인간관계에 지치신 분, 열심히 살고 싶으신 분, 시험이 코앞이신 분, 아니, 그냥 두루두루 모든 분을 정상 경험으로 초대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