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아이들이 웃음과 노랫소리가 사라진 빈 교정에 하얀 눈송이가 내린다. 이렇게 하염없다가는 이내 눈 속에 폭 파묻힐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때로는 가장 훌륭한 어떤 것에로 이끌어 준다.”는 러끌레르크 신부의 말도 눈처럼 쌓인다. 지금까지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을 꼽으라면 단연 분도 출판사에서 출판했던 "게으름의 찬양"이다. 신선한 충격은 오래도록 뇌리에서 떠나지도 않는다.
책의 내용은 대충 이렇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게들 살아가고 있다. 여행의 의미도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나라를 돌아다녔는가로 평가한다. 간혹 쉬기라도 할라치면 남의 눈이 무서워, 그간의 과로로 휴식이 필요하다고 병원에서 한마디 들었다고 해야 떳떳해진다. 여행도 사업차 또는 회의 때문에 간다고 해야 나름 있어 보인다. 휴식이나 쉼이 삶의 중요한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어느 사이엔가 부끄러운 변명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그러나 휴식이나 쉼 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멋진 것인가? 세상의 위대한 법칙들도 복잡하고 부산한 연구소에서가 아니라 한가로이 쉬는 동안에 발견된 것들이 많다. 뉴톤은 사과나무 아래 누워 망중한을 즐기다가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고,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너나 할 것 없이 바쁘게들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위해서? 돈을 벌기 위해서? 성공하기 위해서? 그것이 과연 우리 삶의 궁극 목표인가? 얼마나 더 많이 가져야, 얼마나 더 높은 지위에 올라가야 우리는 쉬게 될까. 잠시 쉬며 인간다워지자고 할 때 "가끔 하늘을 보자"고 한다. 서양에서는 "Smell the roses"(장미향을 맡자)"라고 한다. 인간이 비로소 인간답게 되는 것은 오히려 휴식과 쉼에서 발견하게 되는 사소한 의미와 작은 기쁨들일 것이다.
아침부터 눈이 오는 창밖을 내다보며 이런 생각에 몰두해 있을 때, 세상은 어느새 눈 천지가 되었다. 하늘에서 소리도 없이 온통 장악한 새하얀 눈 세상이 자못 반갑고 그지없이 고맙다. 이렇게 쉴 새 없이 내리는 눈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고, “가진 자와 못 가진 자”가 없이 공평하게 뒤덮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눈은 언덕 위와 성당 종탑 위에도 내리고, 묘지 위에도, 늪 속의 갈대밭과 얼어붙은 강물 위에도 내리고, 파도치는 겨울 바다 위에도 내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달동네 판잣집 지붕 위에도 내리고, 그리움처럼 북녘땅에도 내린다.
하늘에서 내린 눈이 그 많은 아픔과 슬픔을 승화하기 위해 어떻게 자기 통제를 했는가는 빗물이 얼어 눈이 된 하얀 스펙트럼 속에 얼마나 많은 색채를 담고 있는가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또 그것이 만든 결정체의 구조가 얼마나 단단한가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겨울나무에 핀 눈꽃이야말로 그토록 절제된 눈의 결정체와 나목이 지닌 겨울의 의미가 완전히 조화를 이루어 빚어낸 미의 극치이다. 많은 사람이 눈은 ‘죽음에 대한 상징적 이미지’라고 노래하지만, 이 또한 인간의 성숙한 지성미를 드러낸다고 말해도 되는 지점 역시, 우선 저토록 아름답지를 않은가? 그래서 먼 하늘에서 내리는 눈은 인간이 험난한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위엄과 인간적 아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가져야만 하는 견인력이,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가를 말없이 대변한다. 바로 여기에서 교육의 참 목적을 찾아본다. ‘눈 속의 사색’처럼 교육은 원래 진리 자체를 사랑하고 실재를 탐구하는, 무욕의 관조적 삶을 사는 데 있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