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쨌든 누구의 인생인가?
“혁이니! ”
“누구세요?”
“교장 신부(神父)다. 빨리 학교로 돌아와라”
“싫어요. 안 갈래요.”
“왜?” “몰라요. 문제가 풀리면 갈래요”
“그래 난 네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네. 감사합니다.”
아침 8시 교사모임에서 혁이가 귀교하지 않았다고 숙직담당 선생님의 보고가 있었다. 고 3인 혁이는 몸무게가 장난이 아니고 키도 큰 편이라 덩치가 큰 씨름 선수 같다. 그 덩치에 검도를 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학교를 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말하기를 가정문제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께 지시를 했다. “선생님, 혁이 친한 반 친구들과 함께 한 번 찾아가 보세요.” 혁이를 만나고 돌아온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말했다. 같이 만나 놀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현장학습 전까지는 학교에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혁이는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제주도 올레 길을 떠났다는 것이다. 몇 일후 현장학습이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주일 밤에 혁이가 귀교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예상 밖으로 일찍 학교에 돌아왔다.
“ 다시 돌아와서 기쁘고 반갑다. 학교에 돌아오니 좋으니?”
“몰라요”.
“너 이제 몇 살이니?”
“열 아홉이예요”
“그래 이제 너도 다 컸으니... 아버지, 어머니, 학교, 그 누구도 탓하지 말고... 우선 먼저 마음의 평화를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했으면 좋겠다. 네 인생의 책임은 자신 스스로가 지어야 한다. 네가 선택한 모든 것에 대하여 네 스스로 책임을 져야해. 지금부터라도 너 자신을 먼저 잘 다스리고 너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하나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 알겠니?”
“모르겠는데요”.
“아이구 이 녀석, 너는 대답이 그게 뭐니, 매번 ‘몰라요’니..”
혁이는 속에 무엇인가 몹시 꼬여있는지 늘 거부조로 부정적인 응답을 줄 뿐이다. 그야말로 부모도 믿지 못하고, 학교 선생님도 믿지 못하고, 학교 그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마음이 뒤틀러 있다. 수업을 쉬는 시간 계단에서 마주쳤다. 어깨동무하며 학교 현관 밖으로 데려나와 물었다.
“요번 휴일 동안 잘 지냈니?”
“몰라요”, “이 녀석은 ‘몰라요’가 뭐니, 집에서 지냈니?”
“규라는 친구 집에서 하루 밤 잤어요. 그리고 계속 찜질방에서 지냈어요.”
“이런 너의 삶의 목적과 꿈이 뭐니?”
“몰라요. 아직 모르겠어요”
“빨리 너의 꿈과 삶의 목적을 찾았으면 좋겠어. 신부님은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말고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해보렴, 잘 지내”
사실 혁이는 마음이 착한 학생임을 나는 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반항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생각을 깊이하고 있는 학생이고 감수성이 민감한 학생이기 때문임을 안다.
잠시 수업 하는 교실들을 둘러보다가 혁이 음악실에 홀로 앉아 무엇인가 작업하는 것을 보았다.
“이 큰 방이 너의 방이네, 혼자 무엇하고 있니?”
“문학 공모전에 보내려고 소설 쓰고 있어요.”
“서릿골!, 어디 실제로 있는 장소냐?”.
“아니요. 제가 만든 가상의 세계이고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쓰는데. 좀 사회비판 풍자 소설이예요.”
“재미있게 쓰는 거냐?.”
“재미없어요.”
“재미있게 쓰면서도 날카롭게 비판해야지.
야! 너의 꿈은 소설가가 되면 되겠네. 열심히 해라
...”
나는 교실을 돌아 나오면서 속으로 말했다.
“혁아, 너의 꼬인 마음을 풀어라.
그리고 누구의 탓도 하지 말아라.
너의 인생에 지금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아니.
누가 너의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단다.
어쨌든 너의 인생은 네가 만들어 가는 거야.
너에게 주어진 인생의 책임은 너한테 있는 거란다.
나는 네가 본래의 따뜻하고 착한 마음을 되찾고 너의 꿈을 찾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이 게시물은 양업고님에 의해 2015-03-10 17:36:29 환희길 이야기에서 이동 됨]
“혁이니! ”
“누구세요?”
“교장 신부(神父)다. 빨리 학교로 돌아와라”
“싫어요. 안 갈래요.”
“왜?” “몰라요. 문제가 풀리면 갈래요”
“그래 난 네가 빨리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네. 감사합니다.”
아침 8시 교사모임에서 혁이가 귀교하지 않았다고 숙직담당 선생님의 보고가 있었다. 고 3인 혁이는 몸무게가 장난이 아니고 키도 큰 편이라 덩치가 큰 씨름 선수 같다. 그 덩치에 검도를 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학교를 오지 않겠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이 말하기를 가정문제로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이다. 담임선생님께 지시를 했다. “선생님, 혁이 친한 반 친구들과 함께 한 번 찾아가 보세요.” 혁이를 만나고 돌아온 반 친구들과 선생님이 말했다. 같이 만나 놀아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는데 현장학습 전까지는 학교에 돌아오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혁이는 체험학습의 일환으로 제주도 올레 길을 떠났다는 것이다. 몇 일후 현장학습이 일주일도 더 남았는데 주일 밤에 혁이가 귀교했다는 보고를 받았다. 예상 밖으로 일찍 학교에 돌아왔다.
“ 다시 돌아와서 기쁘고 반갑다. 학교에 돌아오니 좋으니?”
“몰라요”.
“너 이제 몇 살이니?”
“열 아홉이예요”
“그래 이제 너도 다 컸으니... 아버지, 어머니, 학교, 그 누구도 탓하지 말고... 우선 먼저 마음의 평화를 찾기를 바란다. 그리고 너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사용했으면 좋겠다. 네 인생의 책임은 자신 스스로가 지어야 한다. 네가 선택한 모든 것에 대하여 네 스스로 책임을 져야해. 지금부터라도 너 자신을 먼저 잘 다스리고 너에게 주어진 일을 하나하나 잘 해나갔으면 좋겠다. 알겠니?”
“모르겠는데요”.
“아이구 이 녀석, 너는 대답이 그게 뭐니, 매번 ‘몰라요’니..”
혁이는 속에 무엇인가 몹시 꼬여있는지 늘 거부조로 부정적인 응답을 줄 뿐이다. 그야말로 부모도 믿지 못하고, 학교 선생님도 믿지 못하고, 학교 그 자체를 거부할 정도로 마음이 뒤틀러 있다. 수업을 쉬는 시간 계단에서 마주쳤다. 어깨동무하며 학교 현관 밖으로 데려나와 물었다.
“요번 휴일 동안 잘 지냈니?”
“몰라요”, “이 녀석은 ‘몰라요’가 뭐니, 집에서 지냈니?”
“규라는 친구 집에서 하루 밤 잤어요. 그리고 계속 찜질방에서 지냈어요.”
“이런 너의 삶의 목적과 꿈이 뭐니?”
“몰라요. 아직 모르겠어요”
“빨리 너의 꿈과 삶의 목적을 찾았으면 좋겠어. 신부님은 네가 잘 되기를 바란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말고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해보렴, 잘 지내”
사실 혁이는 마음이 착한 학생임을 나는 안다. 무엇인지 모르지만 반항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그가 생각을 깊이하고 있는 학생이고 감수성이 민감한 학생이기 때문임을 안다.
잠시 수업 하는 교실들을 둘러보다가 혁이 음악실에 홀로 앉아 무엇인가 작업하는 것을 보았다.
“이 큰 방이 너의 방이네, 혼자 무엇하고 있니?”
“문학 공모전에 보내려고 소설 쓰고 있어요.”
“서릿골!, 어디 실제로 있는 장소냐?”.
“아니요. 제가 만든 가상의 세계이고 그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쓰는데. 좀 사회비판 풍자 소설이예요.”
“재미있게 쓰는 거냐?.”
“재미없어요.”
“재미있게 쓰면서도 날카롭게 비판해야지.
야! 너의 꿈은 소설가가 되면 되겠네. 열심히 해라
...”
나는 교실을 돌아 나오면서 속으로 말했다.
“혁아, 너의 꼬인 마음을 풀어라.
그리고 누구의 탓도 하지 말아라.
너의 인생에 지금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인지 아니.
누가 너의 인생을 대신 살아 주지 않는단다.
어쨌든 너의 인생은 네가 만들어 가는 거야.
너에게 주어진 인생의 책임은 너한테 있는 거란다.
나는 네가 본래의 따뜻하고 착한 마음을 되찾고 너의 꿈을 찾아 행복하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이 게시물은 양업고님에 의해 2015-03-10 17:36:29 환희길 이야기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