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시니 참 좋았다.
“요즘 아버지하고 대화하며 잘 지내고 있니?”
“아니오, 아버지 싫어요”
“어머니는?”
“어머니 생각만하면 화가 나요?”
한국 교원대학교로 교장 연수를 가려고 막 나서는데 만난 ‘혁’ 학생을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던진 질문이었다.
“야! 너 마음이 째째하게 살고 싶냐?”
“마음을 넓게 가져라. 이제 네 나이면 아버지, 어머니를 넓은 너의 품에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누구니?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란다. 내가 보기에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너는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어. 너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도 있고,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도 있고, 너의 예리하고 감수성 있는 비판능력으로 신문 기자가 될 수 있다. 나는 네가 너무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부터라도 너의 삶의 과정과 네가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잘 기록하고 그것을 넘어서 살아야지. 언제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미움의 노예로 살아야한다는 말이니. 이제 마음의 평화를 찾고 너도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겠니”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집에만 가면.. 어머니 얼굴만 보면 갑자기 다 흩어져 버려요”
“그래도 넌 할 수 있어, 네가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나 너와 같은 처지의 다른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않겠니. 나는 믿는다.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나는 네가 정말 잘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 안경 너머 ‘혁’이의 눈으로부터 아주진한 큰 눈물이 한 방울 주룩 흘러내렸고 그 복스러운 두툼한 손으로 그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았다. ‘아! 얼마나 큰 치유의 눈물인가?’, 나는 ‘혁‘이의 그 눈물 안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며 연수 기간 내내 그를 위해 기도했다.
창세기에 첫 장에 보면 하느님은 일곱 날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날마다 하느님이 ‘보시니 좋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 모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 뒤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하신다. 하느님이 만든 세상에 부정적이고 나쁜 것 하나 없다. 당신 모습으로 만든 사람들이야 두 말할 나위 하나 없다. 사람 그 자체가 하느님의 생명으로 들 숨 날 숨을 쉬며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성 이레네오는 “살아 있는 인간은 하느님 영광이다(Gloria Dei vivens Homo)”하지 않았던가? 그 자체가 요즘 말하는 ‘긍정 심리학’의 최고 근거임이 틀림없다. 하느님만큼 어떤 인간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기다려주시고 진실과 자애로 보살펴 주시는 분이 어디 있는가? 오늘도 나는 하느님의 그 큰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을 가져본다. ‘혁’이의 그 큰 눈물방울 안에서 나는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참 사람다운 모습을 보았다. ’혁아, 너는 젊다는 하나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하나만으로 사랑받기 충분하다. 너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귀한 존재야,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너를 볼 때마다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하느님의 최고봉의 긍정적 마음이 ‘혁‘이 마음이 되기를 기도한다. Hi-Five!!! 나는 너를 믿는다.
[이 게시물은 양업고님에 의해 2015-03-10 17:36:59 환희길 이야기에서 이동 됨]
“요즘 아버지하고 대화하며 잘 지내고 있니?”
“아니오, 아버지 싫어요”
“어머니는?”
“어머니 생각만하면 화가 나요?”
한국 교원대학교로 교장 연수를 가려고 막 나서는데 만난 ‘혁’ 학생을 그냥 지나 칠 수 없어 던진 질문이었다.
“야! 너 마음이 째째하게 살고 싶냐?”
“마음을 넓게 가져라. 이제 네 나이면 아버지, 어머니를 넓은 너의 품에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해,”
“내가 왜 세상에 태어났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너를 사랑해 주는 사람이 누구니? 너의 어머니와 아버지란다. 내가 보기에 너는 참 좋은 사람이야, 너는 좋은 것을 많이 가지고 있어. 너는 훌륭한 작가가 될 수도 있고, 훌륭한 정치가가 될 수도 있고, 너의 예리하고 감수성 있는 비판능력으로 신문 기자가 될 수 있다. 나는 네가 너무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부터라도 너의 삶의 과정과 네가 겪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잘 기록하고 그것을 넘어서 살아야지. 언제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미워하는 마음에 사로잡혀 미움의 노예로 살아야한다는 말이니. 이제 마음의 평화를 찾고 너도 자유로워져야 하지 않겠니”
“저도 그렇게 하려고 하는데, 집에만 가면.. 어머니 얼굴만 보면 갑자기 다 흩어져 버려요”
“그래도 넌 할 수 있어, 네가 그 상처를 딛고 일어나 너와 같은 처지의 다른 아이들에게 힘이 되어 주지 않겠니. 나는 믿는다. 너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나는 네가 정말 잘 될 것이라 믿는다.”
이런 말을 주고받는 사이 안경 너머 ‘혁’이의 눈으로부터 아주진한 큰 눈물이 한 방울 주룩 흘러내렸고 그 복스러운 두툼한 손으로 그 눈물을 닦는 모습을 보았다. ‘아! 얼마나 큰 치유의 눈물인가?’, 나는 ‘혁‘이의 그 눈물 안에 숨겨진 의미를 생각하며 연수 기간 내내 그를 위해 기도했다.
창세기에 첫 장에 보면 하느님은 일곱 날을 통해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 날마다 하느님이 ‘보시니 좋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하느님은 당신 모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난 뒤 ‘보시니 참 좋았다’라고 하신다. 하느님이 만든 세상에 부정적이고 나쁜 것 하나 없다. 당신 모습으로 만든 사람들이야 두 말할 나위 하나 없다. 사람 그 자체가 하느님의 생명으로 들 숨 날 숨을 쉬며 하느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성 이레네오는 “살아 있는 인간은 하느님 영광이다(Gloria Dei vivens Homo)”하지 않았던가? 그 자체가 요즘 말하는 ‘긍정 심리학’의 최고 근거임이 틀림없다. 하느님만큼 어떤 인간도 포기하지 않고 인내로 기다려주시고 진실과 자애로 보살펴 주시는 분이 어디 있는가? 오늘도 나는 하느님의 그 큰 대자대비(大慈大悲)의 마음을 가져본다. ‘혁’이의 그 큰 눈물방울 안에서 나는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참 사람다운 모습을 보았다. ’혁아, 너는 젊다는 하나만으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하나만으로 사랑받기 충분하다. 너는 하느님의 사랑받는 귀한 존재야, 너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어, 너를 볼 때마다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하느님의 최고봉의 긍정적 마음이 ‘혁‘이 마음이 되기를 기도한다. Hi-Five!!! 나는 너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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