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恩寵) - 수능대박?
새벽 아침 약간의 눈이 내렸다. 수능한파로 날씨가 쌀쌀하다. 해마다 이 맘 때면 우리네 어버이들은 자녀의 ‘수능대박 인생 역전’을 위해 애끓는 기도를 바친다.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등급을 매겨 학벌의 노예화를 시켜왔다. 학교에서 수능에 출제되지 않는 내용을 공부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고,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상식이 되어왔다. 아이들의 의식과 몸은 오래전부터 그런 제도에 익숙해져 왔고, 남들과 다른 꿈을 꾸는 아이는 ‘문제아’나 ‘학교 부적응아’로 낙인을 찍는 경우가 많다. 지금 대한민국의 학생들이 살아가는 이유가 수능 때문이라는 사실이 서글프다.
양업고등학교는 사제 최양업의 크신 교육의 정신을 이어 받은 좋은 학교(Quality School)로써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 풍토와 입시 경쟁 중심의 불모지에서 싹트고 자라 아름답게 피어난 기적의 한 송이 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비켜 나갈 수 없다. 수능기원미사를 보면서 우리 학생들을 위해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대입 수능제도가 개선이 되어 한번 수능시험에 모든 것이 좌지우지 되는 상황이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기도했다. 대학입학이 끝이 아니라 진정한 공부의 시작이 될 수 있도록 이 나라 대학입시 문화가 건강해질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러면서 우리 양업의 수험생들에게는 ‘은총(恩寵)’에 대해 강론했다.
‘은총’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태도의 극단적인 두 모습이 있다.
하나는 지나치게 은총에만 매달리는 태도이다. 자신의 꿈을 위해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오직 하느님의 은총만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늘만 바라보고 땅은 쳐다보지도 않는 태도를 말한다. 무조건 하느님께 은총과 복을 청한 나머지, 먼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반대로 다른 하나의 태도는 은총에 무관심한 것이다. 인간 자신이 주모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따르면서 너무 계산적이다 싶을 정도로 삶을 살아가는 경우이다. 땅만 쳐다보고 하늘을 보지 않는 사람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이 중요하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의 신비로운 손길이 존재함을 잊어버린 태도이다. 수능 때문에 하느님은 저 편에 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하느님의 은총과 노력, 이 양자가 결합될 필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하느님의 은총에 의탁할 때는 마치 인간의 노력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처럼 생각하여 온전히 하느님께 의지하십시오. 또 인간의 노력에 의지 할 때에는 마치 하느님의 은총이란 아예 없는 것처럼 생각하여 최선을 힘을 기울이십시오.” 이 말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느님의 은총에 온전히 의지할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노력을 최대로 기울이라는 뜻이다. 만일 어떤 농부가 1백석의 밀을 거두어 들였다면 인간 외부의 요인(은총)- 태양의 열기, 비와 바람, 토양, 양분-과 인간 자신의 노력에 그 열매를 얼마만큼 돌려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자세이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 하지 않았던가? 우리 인간이 아무리 뜻을 세워도 하늘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헛되다 하지 않았던가?
‘수능대박 인생역전’을 위해 기도하며, 자녀나 본인의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것도 좋지만, 어떤 결과에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청했으면 좋겠다. 자신의 꿈과 삶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온전히 의지 할 뿐만 아니라 누구나 자신의 노력을 최대로 기울인 것으로 만족하면 좋겠다.
[이 게시물은 양업고님에 의해 2015-03-10 17:42:12 환희길 이야기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