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이유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5,163 | 작성일 : 2016년 1월 30일
세 가지 이유
– 양업 16기 졸업미사 강론- 장홍훈 세르지오 교장 신부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이자!!!
한송이 꽃이 저절로 피는 것이 아닙니다. 매서운 추위와 비바람을 맞고 핀 꽃일수록 오래가고 향이 짙습니다. 오늘 졸업미사에 서른아홉(39)송이의 꽃이 피었습니다. 바로 양업고 16기 졸업생 여러분들입니다.
“한 송이 꽃을 보더라도 환한 미소로 끌어안고 싶다. 한 개의 돌을 보더라도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글처럼, 지금 이 순간 저는 졸업미사에 참여 하고 있기 16기 졸업생 한명 한명을 환한 미소로 끌어안아주고 싶습니다. 여러분 각자를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습니다.
지난 3년 양업고에서의 기억들은 여러분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입니다. 처음에 양업고에 들어 왔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양업고를 선택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유롭고 싶어서요. 둘째는 꿈을 찾기 위해서요. 셋째는 특성화 교과, 특별히 해외이동수업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난 3년 동안 양업고에서 자유로웠나요? 꿈을 찾았나요? 신나고 행복한 해외이동 수업이었나요?
돈과 쾌락을 우선하는 물질주의 시대, 소비를 통해 자기 존재 가치를 확인하는 소비주의 시대, 바른 가치관과 신앙을 위협하는 세속주의 미명아래 출세 성공지향주의에 매몰된 시대, 특별히 ‘학벌 위주의 한국 사회 풍토와 입시경쟁 중심의 불모지의 시대에 싹트고 자라나서 아름답게 피어난 기적의 한 송이 꽃이 양업고등학교 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에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럴 만한 특별한 이유 세 가지가 여기 있습니다.
그 첫째로 양업고는 만국 공통어를 가르쳐주는 학교입니다. 언젠가 여러분들에게 몇 년 전 암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서강대 영문과 장영희 교수의 <내 생애 단 한 번>이라는 책에서 읽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장영희 교수는 선생으로서 겪는 어려움 중 하나가 학생들 성적을 매기는 일이라고 고백합니다. “학기 말이 다가올 때마다 고민 중 하나가 학생들에게 학점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차피 학생들 실력이라는 게 도토리 키 재기인 데다 문학적, 언어적 소양을 몇 등급의 우열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특히 그녀는 A나 B, B나 C의 경계선에 있는 학생들을 두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하루는 병진이라는 학생의 성적을 매기며, B+와 A-중 무엇을 줄지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결국 포기하고 성적표를 책상 위에 둔 채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가는데 지하철역 입구에 앉아 부채와 스카프를 팔고 어떤 한 할머니를 보게 됩니다. 어림잡아도 여든은 되어 보였습니다. 많은 이가 지하철역을 오갔지만, 할머니에게 눈길 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한 겨울에 부채라니, 할머니는 무거운 물건은 운반할 수 없어 비교적 가벼운 부채와 스카프를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팔겠다는 의지를 잃은 듯 웅크리고 앉은 할머니는 추위에 떨며 지나가는 이들의 발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젊은이가 할머니 앞에 멈춰 섰습니다. 바로 병진 이었습니다. 병진이는 물건을 잠깐 살피다가 부채 두 개를 집어 들었습니다. 병진이를 보는 할머니의 얼굴에 따뜻한 미소가 흘러넘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학교에 도착한 장영희 교수는 책상 앞에 앉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병진이의 성적란에 ‘A“라고 선명하게 썼습니다. 그녀는 그때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영어는 기껏해야 지구상의 3분의 1정도 인구가 알아듣는 말이지만, 불쌍한 노인을 측은히 여겨 도와주는 마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A+ 마음이 아닌가, 그 마음은 지구상 모든 인간이 알아듣는 만국공통어다. 누가 학문적 자질 외의 다른 근거로 병진이게게 좋은 점수를 주었다고 비난한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내가 가르친 적 없는, 아니 가르칠 자격이 없는 만국 공통어를 그렇게 능숙하게 구사하는 병진이게게 A보다 더 좋은 학점이 있다면 그거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다.”
여러분에게 그 만국 공통어를 가르쳐 준 학교가 양업고였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를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라는 교육목표를 두고 지난 3년간 여러분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양업고를 졸업하며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가져달라는 그 둘째 이유는 지난 3년간 여러분 곁에는 진정한 선생님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졸업생의 편지글에서처럼 말입니다. “양업고등학교의 가장 큰 특성화 교과는 해외이동수업도 아니고, 현장학습도 아닌 바로 '선생님'입니다. 다른 일반학교와 저희학교의 가장 큰 차이점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노력 끝에 발견해낸 것이 바로 선생님이었습니다. 일반학교는 선생님들이 학생모두에게 관심을 가지지 못하고 대학, 성적으로 한 아이의 가치를 판단합니다. 따라서 친해질 기회도 없고 같이 여행을 가거나 가치관을 나눌 시간도 없습니다. 하지만 양업고등학교는 선생님들에게서 진심을 느낄 수 있으며 이 진심을 나누고 가치관을 공유하며 성장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과 여행을 다니고, 행복을 느끼고, 교과 외의 인생을 배울 수 있는 '양업고등학교 선생님'이야 말로 양업고등학교만의 특성화교과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선생님들께 인성, 사람, 경험, 진심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이는 제가 살아가는 정말 큰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양업고 졸업생이라는 자존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 그 셋째 이유는 양업 친구와 가족들에게 있습니다. 여기 있는 졸업생 모두는 앞으로 멋진 일들을 성취해 나갈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양업의 여러분 선배가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이고, 여러분도 그렇게 할 것이고, 여러분의 후배들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런 삶의 중심에 늘 함께 할 가장 중요한 이들이 가족과 친구들입니다.
지난 3년 동안 동고동락한 친구들은 여러분의 평생 동지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업은 해병대처럼 몇 회 졸업생이라 하지 않고, 몇 기 졸업생이라고 합니다. 앞으로의 양업 친구들과 가족들이 여러분의 인생길에 영원한 동행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시집 장가 갈 때, 아이를 낳고 기를 때, 직장을 구할 때 도와주기도 하고, 같은 동업을 하고, 속상하고 힘들 때, 부모님의 장례식 등 여러분의 삶의 모든 순간 즉, 여러분의 생노병사에 함께 있어줄 귀한 사람들이 양업의 친구들이고 양업의 가족들입니다. 그러기에 양업인으로써 당신 주위에 있는 사람들과 손을 꽉 잡으시기 바랍니다. 놓치지 마세요. 지난 3학년 양업 학교가 준 가장 큰 자산은 친구와 가족입니다. 그들은 당신의 인생에 있어 평생 옆에 두고 배울 수 있는 사람이자, 함께 해줄 도반들입니다.
양업고는 참으로 행복하고 참 좋은 학교입니다. 그렇다고 이상적인 유토피아의 세계는 아닙니다. 그러나 지난 3년을 돌아보면 하느님의 은총이었습니다. 기쁨과 희망, 고통과 슬픔 모두가 아름다운 꽃이 되었습니다.
“나에게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그대로 실천하십시오.”(필리 4,9) 성경의 말씀처럼 양업에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을 잊지 마시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버지이자 어머니, 여러분의 스승이자 벗으로써 양업은 항상 그대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졸업을 하는 16기 여러분은 각자의 원하는 대로 꿈을 찾아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2명은 해외 유학, 역대 최고율로 국립대학을 진학했습니다. 그 중에 2명이 사제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금년에 14기 학생회장 출신도 서울가톨릭대학교 신학과에 합격했습니다. 너무 감사하고 기쁜 일입니다. 모두에게 축하를 드립니다.
새로운 길로 향해 나아가는 양업 16기 모두에게 하느님의 축복이 충만히 내리시기를 기도합니다. 특별히 양업학교의 주보이신 하느님의 종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에 힘입어 양업 16기 졸업생 모두가 주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행복한 양업인이 되기를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