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봄 편지
“아이들이 사라졌습니다.”
‘히말라야’ 트레킹 이튼 날, ‘로찌’라 부르는 곳에 이르러 쉬고 있는데, 인솔 교사가 와서 한 말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해가 진 이 시간, 이 산 높은 곳에서 어디로 사라졌다는 말인가?
“아이들이 돌아왔습니다.”
“어디들 갔다 왔데요?”
“술파는 데를 찾으러 갔다 왔다고 합니다.”
해외이동 수업으로 양고 1학년 40명을 데려 왔는데 그 중에 반 이상이 술을 마셨다. 그 중에는 술은 절대 마시지 않았다 하며 끝까지 버티며 선생님을 속이려 했던 여학생도 있었다. 고구마 줄기처럼 연이은 실토로 인해 그 날 밤 일망타진 되었다. 이런 보고를 받고 참 마음이 차갑고 심란했다. 더욱이 추운 ‘로찌’에서의 밤잠도 설쳤다. ‘이 녀석들을 어떻게 해야 하나?’ 밤새 고민하다 깨어 새벽 주일 아침 미사를 드리는데 분심이 얼마나 생겼는지 모른다. 파견 강복 주기 전 말했다.
“성경에 보면 ‘간음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붙들러 왔을 때 예수님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 죄를 짓지 마라.’ 새롭게 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어제 밤에 여러분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겠습니다. 새롭게 출발 합시다.”
그 이후 40명 중 한 명의 낙오자 없이 히말라야의 푸닐 전망대에 올라갔다 왔다. 벌써 3년 전에 일이다. 이미 그 학생들은 졸업을 했다.
“홍훈 신부님께
신부님 안녕하세요! ...신부님과 함께 입학한...저희가 졸업을 한지 어느 새 한 달 가까이 되어 갑니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기숙사 짐을 한 가득 싸서 학교로 돌아갈 것만 같은데, 이제 다시는 양업의 재학생으로 생활할 수 없다니 아직까지 실감이 잘 안나요.
3년 동안 저는 양업에서 참 행복했습니다. 절대 풀지 못할 것 같은 갈등을 만나기도 하고,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 상황에 혼자 끙끙 앓기도 했지만, 힘든 일을 발판으로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또 교실 안과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제 한계에 부딪혀도 보면서 세상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3년 동안 42명의 친구들, 선배들과 후배들,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을 만나면서 평생 이어갈 소중한 인연을 얻기도 했습니다. 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이런 이유들도 양업은 제 삶의 전환점이자, 참 고마운 학교입니다....“
마음을 찡하게 울리는 그 때 그 학년 한 학생의 편지 글을 읽으며, 이제는 그 때 그 시절 히말라야의 이야기를 해도 되겠지 하며, 글을 적어 보았다. 그래 더 이상 헤매고 아프지 말고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행복하고 즐겁게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새 봄에 새 시작을 알리는 그대들에게 김영랑 선생님의 시 한편을 띄어 보낸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의 가슴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