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진한 어린이처럼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157 | 작성일 : 2022년 5월 6일

천진한 어린이처럼

                                           

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 보고서에 따르면 옛 어린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첫 번째가 동물, 두 번째는 캄캄한 방에 있는 것, 세 번째는 높은 장소에 있는 것, 네 번째는 낯선 사람들이었고, 다섯 번째가 큰 소리이었다. 하지만 현대 조사 결과에 의하면 첫 번째가 부모의 이혼, 두 번째는 핵전쟁, 세 번째는 암, 네 번째는 환경 오염이고 다섯 번째가 노상강도라 한다. 병들어 가는 지구, 끊이지 않는 전쟁, 붕괴한 가정, 그 여파로 건강마저도 장담할 수 없게 된 현대 사회의 병폐를 아이들도 이미 감지한 것이다. 한창 꿈에 부풀고 순수해야 할 어린이들에게는 당치않은 두려움이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마르 10,14-15)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신다.

예수님의 주장은 분명하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고 하신다. 어른인 우리가 어떻게 어린이가 될 수 있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지만 영국의 서정시인 윌리엄 워즈워드(William Wordsworth)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라고 하면서 그 까닭을 자연에 대한 천성의 때 묻지 않은 경건함에 있다고 했다. 천성, 즉 타고났다는 건 뭔가? 그거야말로 하느님이 인간에게 공평하게 주어서 내보낸 하느님의 선물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하기에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될 수 있다. 두 가지 어린아이 영성을 지니면 된다.

첫째는 어린아이는 순수함, 순결함이 핵심이다. 오늘날 어린아이가 결코 순수하지 못하다는 판단도 있고 또 모든 어린아이가 다 순수하지도 않지만 어린아이는 순수함이 상징이다. 순결함에 어린아이는 거짓 없는 마음, 본연의 것, 우리 안에 생성되는 새로운 것을 상징한다, 질투와 경쟁이 없고, 미움과 시기가 없는 순수한 마음의 상징이다. 이런 어린이처럼 살기 위해서는 단순해야 한다. 현실의 삶은 너무 바쁘고 복잡하다. 예전에는 단순했던 것조차 그렇게 바뀌고 있다. 잘 사는 것과 바쁘게 사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 줄 착각한다. 실로 노력 없이는 단순한 삶이 불가능하다. 핵심을 보는 훈련과 절제를 갖추어야 가능할 것이다.

둘째는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품에 안은 것처럼 우리도 우리 안에 있는 어린아이를 보살펴야 한다. 심리학자들은 어른들의 내면에 4살짜리 아이가 웅크리고 있다고 한다. 어린아이처럼 되라고 해서 그 내면의 아이가 툭하면 토라지고 응석 부리라는 게 아니다. 우리 안에 방치되고, 매 맞고, 기가 질려 마음의 상처를 입은 어린이와 동시에 공존하는 창조성과 생명력의 샘, 순수와 진실의 샘인 하느님 닮은 어린이. 이 둘 다를 끌어안으라는 것이다. 상처 입은 아이를 품에 안으면 그 아이는 슬픔을 거두고 더 이상 우리 삶을 방해하지 않는다. 상처 입은 아이는 그 모습 그대로, 상처 입고 의지할 데 없이 홀로 버려진 채 있어도 된다. 오히려 상처 입은 그 아이의 모습을 통해 온갖 위험에 처하고 상처받을 때마다 헤치고 나아갈 길을 알려 주는 하느님 닮은 어린이를 발견한다.

생명이 솟아오르는 가장 좋은 푸른 시절 오월, 성당 어린이 미사 시간에 부르던 노래를 불러 본다. “♪♬ 즐겁게 노는 어린이처럼/ 푸르른 하늘 우러러보며/ 이 세상 근심 잊어버리고/ 그 속에서 살리라/ 하느님 보소서 천진한 어린이처럼/ 티 없이 기쁘게 주님께 왔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