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림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473 | 작성일 : 2023년 8월 22일

헤아림


`한 사람이 있었다./ 자신의 신념이 이끄는 곳으로 향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많은 것을 상상하고 꿈꾸던 사람이 있었다./ 여러 가지 지식을 가지고 그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었다./ 선입견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모두를 사랑하고자 했던 사람이 있었다./ 모두의 슬픔을 공감하고 안아주려고 했던 사람이 있었다./ 대나무와 소나무와 같이 사시사철 색이 변하지 않으며 살고자 했던 사람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뒤에만 있으시면서 기다리시지만, 그 뒤에서 보조하고 계시며 항상 힘을 주시는 사람이 있었다.'



양업 학교 문학창작 동아리 `잉크 스팟 Ink Spots'의 3학년 단원 학생이 `교장실'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어느 날 한 학생이 교장실에 찾아와 고백했다. “이제까지 저는 자기만 알고 자기 생각대로만 살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내 중심적으로만 어리석게 살았습니다. 이제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양업고가 제게 깨우쳐 준 가장 큰 열매입니다.” 바로 그 학생이 교장 선생님이 어떤 분으로 다가오는지를 뜻깊게 헤아려 쓴 글이기에 당사자로서 쑥스럽고 동시에 감동적이다.

좋은 사람의 관계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데 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마음을 다치게 하거나 지치게 하여 멀리 쫓는 결과를 낳는다. 상대의 심정을 정확하게 읽는 것이 선행될 때 적당한 처신이 뒤따를 수 있을 것이다. 상대의 마음을 읽거나 짐작할 때 쓰는 말, 이런 때 아주 적당한 말이 `헤아림'이다.

신약성경 희랍어 원문을 보면 예수께서는 타자를 심판하지 말고 헤아리라고 하신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마태 7,2)라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이웃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하느님의 헤아림을 받는다는 것이다. 사랑은 상대의 마음을 부단히 살피고 헤아려 이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이다. 존재와 상황을 끊임없이 헤아리는 것이 바로 인생이요. 삶이라 할 수 있다.

네덜란드 태생의 동물행동학자이자 영장류학자 프란스 드 발은 저서 `공감의 시대'의 서문을 `탐욕의 시대는 가고 공감의 시대가 왔다.'라고 시작한다. 작금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감각 중 하나는 `헤아림'일 것이다.

독일인 심리학자 테오도어 립스는 사람이 줄타기하는 곡예사를 볼 때 똑같이 긴장하게 된다고 한다. 곡예사의 몸에 간접적으로 들어가 그의 경험을 헤아려 공유하기 때문이다.`헤아림'의 높은 수준을 가진 사람들은 나에게 어떤 이익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타인을 편안하고 즐겁게 하며 가진 것을 베풀며 행복을 줄줄 아는 사람들이다. 헤아림으로 공감을 드높일 때 타인을 더 높은 수준의 의식 세계로 더 큰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

최근 헤아림의 능력이 미비한 이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공감 능력 장애를 보이는 자폐스펙트럼장애, 사이코패스, 조현병 같은 정신 신경질환은 아닐지 몰라도 이와 비슷한 정치가, 언론인, 의원, 공무원이 적지 않음을 본다. 백성의 상황과 마음이 어떠할지를 헤아리는 것이 그리 어려운가?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좋아하는 윤동주 님의 시 `별 헤는 밤'을 읊어본다. 시골집 마당에서 시원한 수박 한 입 깨물며 여름 밤하늘 은하수를 바라보며 별을 헤던 어린 시절이 새롭게 다가온다. 동주 시인이 별을 센 것인지 헤아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듯 주위를 헤아리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