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밀알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292 | 작성일 : 2024년 4월 6일
하나의 밀알
봄 사월,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부활의 때다. 겨우내 인고의 세월을 보낸 만물이 소생하는 보람된 모습을 보노라니 언제부터인가 마음에 담아 두었던 `삶을 보람되게 하는 세 가지 일'이 떠오른다.
그 하나는 나무를 심는 일이다. 나무를 심어놓고 가꾸다 보면 날이 갈수록 자라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새싹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도 맺고 무더운 여름에는 마음마저 시원하게 하는 푸르름도 가져다준다.
또 하나는 글을 써서 책을 만드는 일이다. 마음의 양식인 책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며 기쁨을 가져다준다. 글을 써서 책을 만든다는 것은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책을 만든 보람과 기쁨은 얼마나 대단한가.
마지막으로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일이다. 애써 낳고 정성으로 기르고 잘 교육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지만 자식만큼 부모에게 소중하고 기쁨을 주는 존재는 없다.
세상에 태어나 살면서 이 세 가지 보람된 일을 다 이루었다면 얼마나 복되고 아름다운 인생인가. 윤병훈 베드로 신부가 바로 그러한 사람이다. 특히 학교 밖 아이들에 관심을 가지시어 1998년 1세대 대안교육 특성화 학교인 좋은 학교(Quality School) 양업고등학교를 설립하고 15년간 초대 교장으로 일하면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그분은 양업고에 35가지 400그루가 넘는 수목을 심으셨다. 양업고는 온갖 나무와 꽃들, 새들이 지저귀는 숲속의 수목원이다. 아이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정화하며 평화를 찾는다.
`나는 그리스도 예수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을 위하여 일하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로마 15,17)라는 자신의 사제 서품 성구에 걸맞게 양업고 교훈을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이자'로 정했다. 자녀 같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랑하면서 변화할 시간을 기다려 주었고, 아이들의 작은 발자국에 귀 기울이면서 긍정의 힘과 칭찬을 통해 교육하였다. 또한 `눈높이로 다가가자. 함께하자. 대화하자. 기다려 주자.'라는 생활 지표를 세우셨다.
그분께서는 생전에 아이들과 함께한 삶을 기록한 6권의 저서, `뭐 이런 자식들이 다 있어', `너 맛 좀 볼래!', `발소리가 큰 아이들', `그분의 별이 되어 나를 이끌어 준 아이들', `내가 어디로 튈지 나도 궁금해', `멀리 보고 높이 날고 싶었던 거야'를 집필하였고, 이를 홈페이지와 SNS를 올려 매일 소통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유고집 `멀리 보고 높이 날고 싶었던 거야' 서문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그동안 우리가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십자가는 교육의 부활을 이끌어 내주었다. 이는 하느님이 주신 `기쁨'이라는 크나큰 상급이다. 그 누구보다 나와 함께 지냈던 학생 제자들이 고마웠다. 아름다움은 고통을 넘어 부활을 경험할 때 절로 얻어지는 상급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내가 현장에서 실천해 온 그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교육학이다. 고개 숙여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사랑이 끝나는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정호승 시인의 `봄 길'이라는 시다.
바로 그 사람이란 한 생을 가톨릭 사제요 교육자로 사셨던 윤병훈 베드로 신부이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그분은 우리 시대 교육의 부활을 위해 하나의 밀알이 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