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 한 알, 밤 한 톨
작성자 : 장홍훈 | 조회수 : 100 | 작성일 : 2024년 9월 19일
대추 한 알, 밤 한 톨.
추석인데도 여전히 한낮에는 무덥다. 연휴의 끝자락에서 이 명절의 의미를 생각해본다. 우리의 풍습에서 볼 때 추석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조상을 기억하면서, 한 해의 풍요로운 수확에 감사하는 날이다. 그 감사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는 상징물이 추석 차례상이 아닐까 한다. 차례상에 빠질 수 없는 과실이 `홍동백서'라고 대추와 밤이다. 한가위가 제철이고, 다산과 풍요, 행운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저게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저 안에 천둥 몇 개/ 저 안에 벼락 몇 개/ 저 안에 번개 몇 개가 들어 있어서/ 붉게 익히는 것일 게다.//저게 저 혼자 둥글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무서리 내리는 몇 밤/ 저 안에 땡볕 두어 달/ 저 안에 초승달 몇 날이 들어서서 / 둥글게 만드는 것일 게다.'
장석주 시인의 시 `대추 한 알'에 담긴 그 진수는 우리 수고의 한 해 수확이고, 조상에게 드리는 추석 감사 선물이지 않은가.
정약용은 어느 날 저녁 무렵 숲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우연히 한 어린아이가 다급한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참새처럼 팔팔 뛰는 것을 보았다. 마치 수많은 송곳으로 창자를 찌르고, 절굿공이로 마구 가슴을 짓찧은 모습이었다. 하도 참혹하고 절박해서 곧 죽을 것만 같았다. 왜 그러느냐고 물어봤더니, 나무 밑에서 밤 한 톨을 주웠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빼앗아 갔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두고 `청산어록'에서 다산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 이런 훈계를 남겼다. “아아! 천하에 이 아이 같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벼슬을 잃고 세력이 꺾인 자나, 재물을 손해 본 자, 그리고 자식을 잃고 실성할 지경이 된 사람도 결국 달관자의 눈으로 본다면 밤 한 톨이나 매한가지일 뿐이다.“
작금, 도시 문화 속에서 차례상의 대추 한 알과 밤 한 톨은 점점 낯선 풍경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로 소환하고 싶은 것이 밤 한 톨로 비유한 정약용의 달관자적 태도이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을 때의 마음가짐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소중한 것을 잃고 비통하게 울지만, 크게 보면 그것이 `밤 한 톨을 잃고 우는 어린아이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기왕 일이 그렇게 된 이상 훌훌 털어버리는 데에 더 수월하지 않을까. 소위 필자의 `추석 단상(斷想)'을 나누고자 함이다. 잃어버린 것에 얽매이지 말고 더 크고 더 넓게 세상을 보아야 하지 않을까.
대추 한 알! 밤 한 톨! 추석 차례상을 생각하다가 가톨릭 성녀 아빌라의 성녀 대 데레사의 기도가 연상되는 것은 또한 무슨 연고인고?
`아무것도 너를 놀라게 하지 말고 아무것도 너를 혼란케 하지 말라.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하느님은 변치 않으신다. 인내함으로 모든 것을 이긴다. 하느님을 가진 자 그에게는 모자라는 것이 없다. 하느님만으로 넉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