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를 다녔기에 행복했다" (문화일보에 실린 글
작성자 : 김준환 | 조회수 : 6,425 | 작성일 : 2003년 12월 9일
[사회]"대안학교를 다녔기에 행복했다"
[문화일보 2003-12-09 10:12:00]
(25·끝)폐교위기 한빛고 살리기 나선 진유경씨::) 인터뷰를 마칠 무
렵 그녀는 졸업 앨범을 꺼내 보여주었다. 한빛 고등학교 제2회 졸업
2002년. 전교생 250여명에 교사 40여명이 있는 전남 담양군 소재의
대안 고등학교.
87명의 2기 졸업생 명단에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지금은 대학을 휴학
한 채 자기 길 찾기와 모교 살리기가 일이 된 21세의 진유 경
(natsun@naver.com) 양.
학교 축제인 한빛예술제에 참가하고 어제 늦게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유경의 눈은 엷게 충혈되어 있었다. “1학년 후배들을 봤 는데 얼마
나 예쁘던지요” 라며 눈빛을 반짝이는 유경과 “이젠 로또 당첨밖에
희망이 없어요”라고 한숨쉬는 유경이 동일인이라 니 씁쓸했다.
“나에겐 신앙이나 다름없다”는 한빛고 생활은 유경에겐 추억을 넘
어 현재 진행형이었다.
전국에서 온 학생들이 다양한 방언을 쓰며 소통하는 멀티컬처 환경,
전교생이 기숙하며 빨래부터 수업까지 대소사를 함께 해결하 는 생활
공동체, 제주 4·3 항쟁부터 4·19와 5·18과 6월 민주 항쟁 등을 기
념일과 커리큘럼및 테마 여행으로 체험하는 당대 역 사의 학습장,
학생과 교사및 식당 아줌마까지 1인1표로 학교 현 안을 결정하는 민주
주의 전당. 유경이 전해준 한빛고다.
98년 개교 이래 6년을 맞은 한빛고는 폐교를 신청한 재단측과 공 동대
책위로 모인 재학생, 교사, 학부모, 졸업생 사이의 오랜 대립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교사들의 단식과 교육청 앞 시위, 학생들의 등교 거부로 점철된 한빛
고 사태는 유경에 따르면 “사립학교법이라는 악법을 근거로 자본적
인 마인드의 교육을 강요하는 재단에 맞서 대안적 인간교육을
추구하는 한빛고 모든 사람들”의 싸움이다.
“대학다니는 위 기수 선배들이 많이 휴학하고 학교 살리기에 나 섰
다”면서 유경 자신은 ‘외국어와 문화와 여행’에 걸친 자원
봉사활동을 겸하면서 틈틈이 공대위 활동에 참여했다고 했다.
“17세 때 난 정말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학교를 가져본 사람이
지금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유경에게 한빛고 살리기는 모교
의 차원을 넘어 한국 공교육의 구조적 문제로 확대되어 있었다.
중 2때 자신이 왕따를 당해보았고 중 3땐 왕따를 한 아이들이 다른 반
에서 왕따 당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그 아이나 나의 잘못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유경은 “아빠가 재미있는 학
교 같다며 권해준 한빛고”에 진학했고 다른 세계를 알게 됐다.
“10대 때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 나와 생각이 다른 친구들과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학교가 제공해야 할 핵심 교육이라는 신념을
유경은 한빛고 때문에 갖게 되었다.
“생태주의 배우면서 샴푸 쓰고, 마초 같은 남학생들이 있고, 학생끼
리 더러 폭력 문제도 생기지만” 유경의 한빛고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관계를 만들 줄 아는 태도”의 마르지 않는 원 천이다.
그 학교가 병들어 숨을 헐떡이며 죽어 가고 있는데 돈과 권력을 가진
재단과 교육청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자신을 확인할 때마 다 결국
은 이렇게 끝나는가 하는 허망한 마음에 로또를 떠올리고 쓴 웃음을
짓는다고 했다.
재단측이 정한 교가는 ‘하나님 사랑’을 제일로 삼는 교훈과 함 께
‘여호와의 말씀처럼 창창하라’라는 기독교적 이상향을 가르 치지
만, 아이들과 교사들이 진짜 교가처럼 수시로 합창하는 노래 는 “우
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 가 며… 바위처
럼 살자꾸나”라는 ‘바위처럼’이다.
사회 분위기나 교육부 발표만 보면 대안교육을 수용하는 듯 보이 지
만 구체적인 정책과 시스템에선 정반대의 현실로 치닫는 상황 에서 한
빛고 사람들은 ‘바위처럼’을 6년째 불러온 셈이다.
한빛고 제2회 졸업 앨범 첫 페이지에는 졸업생과 교사들이 뒤엉 킨
채 함박 웃음으로 다같이 손을 흔드는 단체 사진이 실려 있다 . 언뜻
교사와 학생이 구별되지 않는 사진의 매력 때문에 나는 졸업 앨범을
빌려왔다.
초등학교 폐교 건물로 문을 연 한빛고에서 “마치 사회로 파견나 온
것 같다”는 졸업생 유경은 언제까지 눈물의 ‘바위처럼’을 부르게
될지, 로또 말고는 정말 희망은 없는 것인지, 나는 같은 사진만 보고
또 보면서 되묻고 있었다.
/객원기자 김종휘 문화평론가·하자작업장학교 교사
mishow@ha nmail.net
[문화일보 2003-12-09 10:12:00]
(25·끝)폐교위기 한빛고 살리기 나선 진유경씨::) 인터뷰를 마칠 무
렵 그녀는 졸업 앨범을 꺼내 보여주었다. 한빛 고등학교 제2회 졸업
2002년. 전교생 250여명에 교사 40여명이 있는 전남 담양군 소재의
대안 고등학교.
87명의 2기 졸업생 명단에 그녀의 이름이 있었다. 지금은 대학을 휴학
한 채 자기 길 찾기와 모교 살리기가 일이 된 21세의 진유 경
(natsun@naver.com) 양.
학교 축제인 한빛예술제에 참가하고 어제 늦게 광주에서 올라왔다는
유경의 눈은 엷게 충혈되어 있었다. “1학년 후배들을 봤 는데 얼마
나 예쁘던지요” 라며 눈빛을 반짝이는 유경과 “이젠 로또 당첨밖에
희망이 없어요”라고 한숨쉬는 유경이 동일인이라 니 씁쓸했다.
“나에겐 신앙이나 다름없다”는 한빛고 생활은 유경에겐 추억을 넘
어 현재 진행형이었다.
전국에서 온 학생들이 다양한 방언을 쓰며 소통하는 멀티컬처 환경,
전교생이 기숙하며 빨래부터 수업까지 대소사를 함께 해결하 는 생활
공동체, 제주 4·3 항쟁부터 4·19와 5·18과 6월 민주 항쟁 등을 기
념일과 커리큘럼및 테마 여행으로 체험하는 당대 역 사의 학습장,
학생과 교사및 식당 아줌마까지 1인1표로 학교 현 안을 결정하는 민주
주의 전당. 유경이 전해준 한빛고다.
98년 개교 이래 6년을 맞은 한빛고는 폐교를 신청한 재단측과 공 동대
책위로 모인 재학생, 교사, 학부모, 졸업생 사이의 오랜 대립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교사들의 단식과 교육청 앞 시위, 학생들의 등교 거부로 점철된 한빛
고 사태는 유경에 따르면 “사립학교법이라는 악법을 근거로 자본적
인 마인드의 교육을 강요하는 재단에 맞서 대안적 인간교육을
추구하는 한빛고 모든 사람들”의 싸움이다.
“대학다니는 위 기수 선배들이 많이 휴학하고 학교 살리기에 나 섰
다”면서 유경 자신은 ‘외국어와 문화와 여행’에 걸친 자원
봉사활동을 겸하면서 틈틈이 공대위 활동에 참여했다고 했다.
“17세 때 난 정말 행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학교를 가져본 사람이
지금 몇 명이나 되겠느냐고 반문하는 유경에게 한빛고 살리기는 모교
의 차원을 넘어 한국 공교육의 구조적 문제로 확대되어 있었다.
중 2때 자신이 왕따를 당해보았고 중 3땐 왕따를 한 아이들이 다른 반
에서 왕따 당하는 것을 보면서 “이건 그 아이나 나의 잘못이 아니라
교육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는 유경은 “아빠가 재미있는 학
교 같다며 권해준 한빛고”에 진학했고 다른 세계를 알게 됐다.
“10대 때 존경하는 선생님을 만나는 것, 나와 생각이 다른 친구들과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학교가 제공해야 할 핵심 교육이라는 신념을
유경은 한빛고 때문에 갖게 되었다.
“생태주의 배우면서 샴푸 쓰고, 마초 같은 남학생들이 있고, 학생끼
리 더러 폭력 문제도 생기지만” 유경의 한빛고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관계를 만들 줄 아는 태도”의 마르지 않는 원 천이다.
그 학교가 병들어 숨을 헐떡이며 죽어 가고 있는데 돈과 권력을 가진
재단과 교육청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한 자신을 확인할 때마 다 결국
은 이렇게 끝나는가 하는 허망한 마음에 로또를 떠올리고 쓴 웃음을
짓는다고 했다.
재단측이 정한 교가는 ‘하나님 사랑’을 제일로 삼는 교훈과 함 께
‘여호와의 말씀처럼 창창하라’라는 기독교적 이상향을 가르 치지
만, 아이들과 교사들이 진짜 교가처럼 수시로 합창하는 노래 는 “우
리 모두 절망에 굴하지 않고 시련 속에 자신을 깨우쳐 가 며… 바위처
럼 살자꾸나”라는 ‘바위처럼’이다.
사회 분위기나 교육부 발표만 보면 대안교육을 수용하는 듯 보이 지
만 구체적인 정책과 시스템에선 정반대의 현실로 치닫는 상황 에서 한
빛고 사람들은 ‘바위처럼’을 6년째 불러온 셈이다.
한빛고 제2회 졸업 앨범 첫 페이지에는 졸업생과 교사들이 뒤엉 킨
채 함박 웃음으로 다같이 손을 흔드는 단체 사진이 실려 있다 . 언뜻
교사와 학생이 구별되지 않는 사진의 매력 때문에 나는 졸업 앨범을
빌려왔다.
초등학교 폐교 건물로 문을 연 한빛고에서 “마치 사회로 파견나 온
것 같다”는 졸업생 유경은 언제까지 눈물의 ‘바위처럼’을 부르게
될지, 로또 말고는 정말 희망은 없는 것인지, 나는 같은 사진만 보고
또 보면서 되묻고 있었다.
/객원기자 김종휘 문화평론가·하자작업장학교 교사
mishow@ha 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