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에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220 | 작성일 : 2013년 2월 26일

                            설 명절에

 16년 만에 학교에서 본당으로 자리를 옮겨 맞이하는 설 명절이다. 방학이면 늘 학교수녀님들과 적막강산 같은 침묵의 학교에서 미사를 봉헌하고는 고양을 찾아 가족들과 미사를 봉헌했었다. 그런데 2013, 설은 달랐다. 명절 연휴가 짧은 이유도 있겠지만 성당가득 신자들로 넘쳐났고, 조상들과 부모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신자들로 붐볐다. 원로 은퇴 사제이신 경덕수 레오 신부님의 주례로 미사를 봉헌했다.
  짧은 설 연휴인데도 고속도로는 차량행렬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모두가 힘들여 고향을 찾는 이유가 있다. 고향은 내 생명의 산실이고, 태어난 곳이고 자라난 곳이며, 조상님과 부모의 정성이 담긴 곳이다. 고향은 어머니의 품처럼 피로에 지친 우리들을 따듯하게 품어주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고향은 어머니처럼 그립다. 부모님과 조상님들을 떠나셨지만 자녀들은 지친 삶에 위로를 받으려고 고향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깊어진다.
 또 나이가 들면 실향민들을 생각하게 한다. 고향이 없는, 고향을 빼앗긴 실향민들의 고충이 내 마음에 들어와 그들의 고충을 헤아려 본다. 2년 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가 제일 그립다. 실향민처럼 늘 고향이 허전했다. 그처럼 부모님의 사랑이 컷슴도 깨닫는다. 어려운 일 있을 때도 더욱 어머니의 품이 그립고, 기쁜 일 있어 소식을 들려주고 싶은데 안 계실 때 실향민의 고충을 헤아린다. 학교를 정년하고 국가로부터 받은 옥조근정훈장, 대통령 표창,청암상을 받는다며 그 수상소식이 알리고 싶은데 계시지 않을 때 실향민 같았다. 현충원을 방문하여 조문하듯 나도 부모님이 계신 고향 어머니의 품으로 달려간다. 결국 이 그리움이 극에 달하면 우리도 진짜 고향인 하느님 품을 떠 올리게 되고 달려간다. 우리의 그리움이 위로 , 급기야 하느님 품으로 달려간다. 인간은 흙에서 왔지만 하느님의 숨을 담은 존재로 영원을 그리워하고 그래서 신자들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고 구체적으로 사랑하며 만난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버립니다. (시편 90장 10절, 최민순 역) ‘나는 듯 가버리는’인생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의 공통된 체험입니다. 야고보서에서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한줄기 연기란다. 
 한줄 연기 같은 생명, 하느님 앞에 내 자신을 맡기며 겸손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설 첫날을 시작하자. 인생이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년, 요즘 수명이 노령화로 길어져서 더 장수를 누리는 세상이 되었지만, 그나마 고통과 슬픔 속에 덧없이 지나간다는 말은 맞는 말이 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따라 허세를 부리며 거짓 삶을 살지 말고, 사랑하며 겸손하게 살아가라는 야고보서의 말씀을 오늘의 덕담으로 여기자. 초, 중등학교 학생들의 인생목표를 ‘돈’이라고 여겼고, 어른들은 ‘건강’이라 했다. 돈과 건강은 잘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다. 우리 인생의 의 목적은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을 기복의 수단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신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설 명절에 하느님을 사랑하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그리움으로 성실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