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용 가방을 멘 학생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5,081 | 작성일 : 2012년 11월 8일

                      등산용 가방을 멘 학생들

 요즘 등산용 가방을 메고 등하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발랄해 보인다. 어린 시절, 내 책가방은 보자기였다. 보자기를 펼치고는 책과 도시락을 함께 담아 허리춤에 질끈 매달고는 학교로 달렸었다. 물론 부유한 친구들은 멜빵이 달린 가죽가방을 메고 다녔지만 대부분 아이들은 보자기가 고작이었다. 등굣길엔 도시락에서 새어 나온 반찬 국물로 옷이며 책에 얼룩져, 교실에 도착하면 얼룩으로 성한 책들이 한 권도 없을 지경이었다. 귀갓길에 캄캄한 신작로를 달릴 때면, 빈 도시락 반찬통 소리가 무서운 치한이라도 따라올 것 같다는 무서운 느낌에 식은땀도 흘려야 했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학생들의 모든 손에는 책가방이 들려져 있었다. 손가방은 책과 도시락을 분리하여 넣었기에 도시락 반찬국물로 책이 얼룩지는 일이 드물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진급하면서 책가방의 무게는 증가했으며 가방끈도 더 길게 늘어졌다. 학생들 사이에 ‘가방끈 길면 공부 잘하냐?’ 라는 우스갯소리도 생겨났다. 손가방은 학생들의 몸 균형에 부조화를 초래했고, 그 대안으로 등 가방이 등장했다. 등 가방은 유명 브랜드가 아니면 멜 수가 없는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자나자 오늘처럼 일반적인 등산용 가방으로 정착되었다. 
  나는 학생을 향해 “등산가냐?”며 불러 세우고는 “왜 학생들의 가방은 등산용 가방 모습일까?” 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학생들은 “요즘 스타일이 이렇습니다.” 라고 간단히 답해주었다. 나는 학생에게 일상의 답이 아니라 좀 더 진지한 답을 듣고 싶었다. 우리 학생들이 3년간 자주 등산을 경험했기에 그와 관련지어 신선한 답이 나올 거라는 기대를 했었다. 나는 내심 그 학생과 이 물음에 대해 관계성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다. 
 학생들의 책가방이 등산용 가방인 것은 단지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 외에 무엇인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보였다. 유치원부터 시작한 교육과정은 승급을 하며 때로는 편편한, 때로는 가파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 과정을 교육과정이라 한다. 이는 처음 시도하는 등산인이 계곡 바닥에서 시작하여 편편한 길과 가파른 길을 반복하며 정상에 오르는 등산을 닮았다. 학생들이 시작하는 교육과정도, 등산도 처음엔 무슨 의미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하며 시작하다가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묻는다. 왜 이런 과정을 해야만 하는지 제법 철학적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기 시작한다. 그런 과정을 겪다보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게 되는데 이쯤 되면 제법 철이 들은 것이다. 내가 수많은 너와 관계성을 지니며 그 관계성 안에서 삶의 주인으로 문제를 풀어갈 때 희열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이 성숙해 갈 것이다. 유치원에서 초등학교로 그리고 6부 능선을 통과하고, 7부 능선에서 시작하여  올라 12부 능선을 통과하면 성인으로서 제법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 있음을 발견한다. 산행도 그런 과정을 거쳐 맛을 알게 되고, 하나의 성숙에 이르게 된다. 정상에 올라 아름다운 경치에 빠져 기뻐하는 모습처럼, 교육과정을 다 마치고 자기완성을 보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책가방이 등산용 가방인 이유를 좀 더 친밀하게 결속하면 우리들 모습도 훨씬 달라질 것이다. 등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바라보며 과연 학생들이 등산의 중요성만큼이나 교육과정의 중요성을 간파했으면 한다. 늘 계곡바닥에서 고지만을 꿈꾸며 노는 꼴처럼 교육과정도 제대로 이루지 않으면서 요행수를 바란다면 큰 일이 아닐 수 없다. 책가방을 등에 메고 시작하는 모든 학생들이 등산과 관계성을 가지고 출발한다면 훨씬 더 학교생활이 능동적이고 적극적이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