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학교와의 협약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407 | 작성일 : 2012년 12월 29일

대림 제 1주일(12.12.2)                                                      제756호
                          네팔 학교와의 협약

  네팔 사람 중 많은 이들의 생활 근거지는 산악지이다. 보통 산이 아니라 2,3천 고지에 위치한 산자락에 촌락을 이루며 정겹게 살아간다. 이들은 산비탈을 개간하고, 계단식 논밭을 만들고는 대대손손 살아간다.  마을 중심은 언제나 크고 작은 학교가 있다. 학교는 지역 자치회에서 운영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내가 그들 학교를 처음 본 때는 5년 전의 일로, 카트만두에서 60키로 떨어진 배시마을에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그들과 3일을 지내면서 가가호호를 방문하며 인사도 나누고 마을지도가 그려진 입간판을 마을 입구에 설치해 주었었다. 작은 학교규모에 비해 학생의 밀도는 대단했다. 아마 하루 4부제 수업을 해야 할 듯했다. 교실환경이 열악해 비품은 칠판이 전부였고, 흙바닥에 책걸상이 빼곡히 들어 선 좁은 교실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을 향한 학생들의 눈망울이 유난히 빛나 보였다. 성인의 하루 평균 임금이 1달러 정도라니 얼마나 경제상황이 어려운가를 집작케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NGO 활동가들이 그들 학교를 돕고 있었다. 특별히 산행 중에 엄홍길 산악인이 나야플에 학교를 지어준다는 입간판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 돈, 일백만원이면 교실 한 칸이 거뜬하게 증축된다며 안내자가 귀띔한다. 나도 벌써 네팔 방문 네 번째이다. 그 횟수를 더해가면서 우리도 그들을 구체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었고, 선생님들과 함께 논의 했다. 그 결실로 2012의 11월 하순 1학년 학생들과 이천오백고지인 촘롱의 한 학교에서 학교간 협약식을 가졌다.
 1학년 기쁨 반, 20명과 안나푸르나 정상등반의 관문 격인 촘롱 마을을 찾았다. Shree Dhaulashree Secondary School을 만났다. 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의 기부로 증축했다는 도서실을 보게 되었다. 도서실이라지만 그 안에는 책 한권 없이 창고로 쓰여지고 있었다. 주민 자치회 대표들은 우리에게 책과 기자재를 마련해 줄 것을 요청했다. 포터를 통한 등짐으로의 운반이 기자재 비용에 더해져서 대략 일천오백만원 정도가 소요 된다며  지원요청을 해왔다. 선생님들과 나는 그들과 상의하여 3년 동안만 500만원을 지원하기로 약속했다. 양 학교의 장은 내용을 작성하고 서명했다. 금년에는 촘롱의 이 학교에 이백만원을 지원했는데, 이 성금은 김봉호 선생님(영어과)의 지인(제자)이 보내준 성금으로, 우리는 지인의 뜻에 따라 이 학교에 전달한 것이다.  그 날은 밤늦도록 축제였다. 그들 학생들은 우리에게 감사의 뜻으로 민속춤과 노래를 선사했고, 그 답례로  우리 학생들은 ‘강남스타일’ 말 춤을 선보이며 우의를 다졌다. 1학년 평화반, 20명도 작년에 방문했던 간두륵의 Shree Meshram Baraha Secondary School를 찾아 위문했다. 포터가 짊어지고 간 옷가지며 학용품, 책, 초콜릿과 학교장이 마련한 일백만원을 기부했다. 서로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지 우리 학생들은 네팔어로 ‘페리 베따올라’(또 다시 만나요)를 외치며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그 외에 일 년 동안 우리 학생들과 수녀님들이 작품 활동으로 모은 성금 일백만원도 카트만두의 배시마을에 인편으로 전달한바 있다. 작은 사랑의 나눔은 우리 마음 안에서 살아나 점점 커져갈 것이고, 양업고의 이름도 그들 마음에 사랑으로 새겨질 것이다.  천주님께 감사, 함께했던 선생님들과 학생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