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성교육을 뛰어넘는 교육, 영성교육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832 | 작성일 : 2012년 6월 26일
인성교육을 뛰어넘는 교육, “영성교육”
한국의 교육은 입시위주의 과도한 경쟁교육으로 오르지 ‘지식교육’에 편중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해 오고, 그 결과 교육의 본질과 목적에서 멀어지는 교육을 실시해 왔다. 교육은 불꽃 튀는 경쟁만이 아니다. 교육을 통해 더불어 상생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자기를 세우며, 나아가 공동의 선을 위해 살아갈 줄도 배우며, 그래서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가? 교장 15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최근까지 학교장의 머릿속에는 ‘인성교육’의 의미와 중요성이 제대로 각인되어 있지 않았었다. 인성 교육은 문제 청소년을 지도하는 대안학교에서나 하는 교육으로 이해될 정도였다. ‘인성교육’은 ‘나’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교육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정립해내는 교육이기에, ‘지식교육’에 앞서 더욱 중요한 교육이다. 기름진 토양을 만든 연후에 생명의 씨앗을 심어야 하듯이, 사람도 ‘인성교육’의 토양이 마련한 뒤, 지식교육을 해야 각 사람을 미래의 훌륭한 인재로 키워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에서 ‘인성교육’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정도로 여겨 소홀이 취급되기도 하고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2009 개정교육과정’의 도입은 ‘인성교육’을 불모지에서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 지식교육은 교사의 전문성을 요구하나, 인성교육은 교사 간의 협력, 교사와 학생 간의 협력, 교사와 학부모 간의 협력이 사랑의 관계로 발전해야만 가능하다. 이 교육은 교사의 사랑이 학생들에게 녹아듦이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가르치기 이전에 교사 간, 학생 간 긴밀히 유대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과연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관계성이 얼마나 친밀하고 책임감이 있는가? 행복은 관계의 친밀함과 책임성에 비례하는 가치이다. 구성원끼리 관계의 단절이 가속화되는 한, 인성은 결코 행복으로 피어나지 못할 것이다. 문제아들이 가는 학교라는 ‘소극적 대안학교’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대한민국 좋은 학교’로 인정을 받고, 연속 2년을 ‘건강한 학교문화선도학교’로 탄생되기까지, “그 학교 가려면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가?” 할 정도로 ‘적극적 대안학교’로 인정받기까지, 우리 구성원 간에 얼마나 많은 협력과 사랑이 필요했는지….
나는 학교를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진정한 자유의 교육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그리고 인성교육 교육과정을 통하여 ‘자율성’과 ‘자기 주도성’을 신장시켜 갔다. 개교 후 15년이 지난 지금, 학생들은 ‘나’를 뛰어넘어 ‘공동선’을 걱정하는 “좋은 학교”(Quality School)의 건강한 문화라는 결실을 맺었다. ‘인성’이 바로 서면 학생들은 자기 내면의 성숙으로 지식교육에 열심히 참여하고 학업 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 15년 전 학교의 초라한 탄생은 오늘의 위대한 탄생으로 바뀌었다. 밖에서 학교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들 학교의 설립목적이 변질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프고 수습이 되질 않는다. 우리 교육가족은 죽음과도 같은 삶을 구성원 간 사랑의 협력관계로 교육부활을 이루어 냈다. 학교폭력이란 부정적 단어는 이제 우리의 학교현장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런 우리들의 교육부활 체험은, 학교 밖으로 비상할 채비를 차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해 가고자 한다. 여기서 떠오른 교육이 ‘영성교육’이다. ‘영성교육’의 의미는 가톨릭 학교이기에 종교적인 차원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영성교육은 ‘인성’을 제대로 정립한 ‘교사’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교직관을 생생하게 내면화시켜, 이를 교육현장에 구체화함으로써, ‘건강한 나’ 아닌 ‘건강한 학교 공동체’를 만드는 교육을 말한다. 학교 구성원이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서로 만나지 않고, 사안을 놓고 협력하지 않으며, 머리를 맞대지 않고는 공동체를 향한 교육은 불가능하다. 부활을 체험한 교사는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가능성을 먼저 보고, 이러한 가능성의 꽃피우기 위해 서로가 합심하여 교육에 투신하는 것, 그것이 영성교육이다. 15년간 인성교육의 노하우를 토대로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학교 공동체를 만들었기에 자신 있게 또 다른 교육의 대안으로 ‘영성교육’을 교육현장에 제시해 본다.
한국의 교육은 입시위주의 과도한 경쟁교육으로 오르지 ‘지식교육’에 편중하여 교육과정을 운영해 오고, 그 결과 교육의 본질과 목적에서 멀어지는 교육을 실시해 왔다. 교육은 불꽃 튀는 경쟁만이 아니다. 교육을 통해 더불어 상생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자기를 세우며, 나아가 공동의 선을 위해 살아갈 줄도 배우며, 그래서 훌륭한 인재를 길러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 가? 교장 15년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최근까지 학교장의 머릿속에는 ‘인성교육’의 의미와 중요성이 제대로 각인되어 있지 않았었다. 인성 교육은 문제 청소년을 지도하는 대안학교에서나 하는 교육으로 이해될 정도였다. ‘인성교육’은 ‘나’를 올바르게 정립하는 교육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정립해내는 교육이기에, ‘지식교육’에 앞서 더욱 중요한 교육이다. 기름진 토양을 만든 연후에 생명의 씨앗을 심어야 하듯이, 사람도 ‘인성교육’의 토양이 마련한 뒤, 지식교육을 해야 각 사람을 미래의 훌륭한 인재로 키워 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에서 ‘인성교육’은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는 정도로 여겨 소홀이 취급되기도 하고 사경을 헤매기도 한다.
‘2009 개정교육과정’의 도입은 ‘인성교육’을 불모지에서 자리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 지식교육은 교사의 전문성을 요구하나, 인성교육은 교사 간의 협력, 교사와 학생 간의 협력, 교사와 학부모 간의 협력이 사랑의 관계로 발전해야만 가능하다. 이 교육은 교사의 사랑이 학생들에게 녹아듦이 절실히 요구되는 부분이다. 교육의 주체인 교사가 가르치기 이전에 교사 간, 학생 간 긴밀히 유대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과연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관계성이 얼마나 친밀하고 책임감이 있는가? 행복은 관계의 친밀함과 책임성에 비례하는 가치이다. 구성원끼리 관계의 단절이 가속화되는 한, 인성은 결코 행복으로 피어나지 못할 것이다. 문제아들이 가는 학교라는 ‘소극적 대안학교’가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대한민국 좋은 학교’로 인정을 받고, 연속 2년을 ‘건강한 학교문화선도학교’로 탄생되기까지, “그 학교 가려면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는가?” 할 정도로 ‘적극적 대안학교’로 인정받기까지, 우리 구성원 간에 얼마나 많은 협력과 사랑이 필요했는지….
나는 학교를 시작하며 학생들에게 ‘자유’를 부여하고 ‘진정한 자유의 교육적 의미’가 무엇인가를 가르쳤다. 그리고 인성교육 교육과정을 통하여 ‘자율성’과 ‘자기 주도성’을 신장시켜 갔다. 개교 후 15년이 지난 지금, 학생들은 ‘나’를 뛰어넘어 ‘공동선’을 걱정하는 “좋은 학교”(Quality School)의 건강한 문화라는 결실을 맺었다. ‘인성’이 바로 서면 학생들은 자기 내면의 성숙으로 지식교육에 열심히 참여하고 학업 성취도를 향상시킬 수 있음을 확인했다. 15년 전 학교의 초라한 탄생은 오늘의 위대한 탄생으로 바뀌었다. 밖에서 학교의 속을 들여다보지 않고 쉽게들 학교의 설립목적이 변질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면, 마음이 아프고 수습이 되질 않는다. 우리 교육가족은 죽음과도 같은 삶을 구성원 간 사랑의 협력관계로 교육부활을 이루어 냈다. 학교폭력이란 부정적 단어는 이제 우리의 학교현장에서 찾아 볼 수가 없다.
이런 우리들의 교육부활 체험은, 학교 밖으로 비상할 채비를 차리고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해 가고자 한다. 여기서 떠오른 교육이 ‘영성교육’이다. ‘영성교육’의 의미는 가톨릭 학교이기에 종교적인 차원을 이야기 하고자 함이 아니다. 영성교육은 ‘인성’을 제대로 정립한 ‘교사’가 사랑을 바탕으로 한 교직관을 생생하게 내면화시켜, 이를 교육현장에 구체화함으로써, ‘건강한 나’ 아닌 ‘건강한 학교 공동체’를 만드는 교육을 말한다. 학교 구성원이 하루 종일, 일주일 내내 서로 만나지 않고, 사안을 놓고 협력하지 않으며, 머리를 맞대지 않고는 공동체를 향한 교육은 불가능하다. 부활을 체험한 교사는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가능성을 먼저 보고, 이러한 가능성의 꽃피우기 위해 서로가 합심하여 교육에 투신하는 것, 그것이 영성교육이다. 15년간 인성교육의 노하우를 토대로 사랑이 넘치는 아름다운 학교 공동체를 만들었기에 자신 있게 또 다른 교육의 대안으로 ‘영성교육’을 교육현장에 제시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