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완벽하면 반대성향의 자녀가 힘들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008 | 작성일 : 2012년 8월 1일
부모가 완벽하면 반대성향의 자녀는 힘들다
부모 중에는 자녀의 운전대를 철저히 빼앗고 밀도 있게 간섭을 하기도 한다. 마치 전자 칩이 정확히 작동해야 하는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게 자녀를 간섭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런 부모 밑에 있는 자녀는 자유롭지 못하다. 성장하면서 자녀는 부모의 눈치만 보며 아무 것도 자기 나름대로 하는 것이 없다. ‘일어나라, 밥 먹어라, 학교 가라, 휴대폰 꺼라, 학원 가라, 불 끄고 그만 자라.’ 이런 부모는 자녀에게 질리도록 지시하고 명령한다. 그러다 이러한 명령을 잘 따라주지 않으면, “너는 누굴 닮았니?” 하며 설교하고 훈화하다가,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자녀에게 폭력적 언사와 물리적으로 폭력도 불사한다. 그러나 자녀의 마음은 부모의 전통적인 틀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하고, 늘 새롭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특히나 부모와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자녀라면 더할 것이다.
이런 부모로부터 자라나는 아이들 대부분이 문제가 많다. 유치원에서 초등 3학년까지는 부모 말을 그런대로 듣는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진행될수록 가정과 학교의 적응이 어려워진다. 성적은 하향 곡선을 그리며, 가정은 지옥이라 여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등교거부와 가출에 시동을 건다. 이런 자녀 문제의 원인을 부모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고 돌변한 것을 놓고 또 닦달을 하기 시작한다. 자녀는 부모의 눈을 피해가며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부정적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 엄마에게 덤벼들고, 심하면 발로 차며 무시한다. 이런 일을 겪는 엄마의 마음은 자녀가 한 없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이런 부모는 자녀 문제로 자녀에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분별력을 잃어버린다. 자녀가 못 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잘못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녀를 윽박지르며 여전히 강요한다. 옆에 자기 자녀를 앉혀 놓고 심한 말도 불사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지금까지 키운 공을 어디서 보상받느냐, 원통하다. 내가 널 낳은 것이 후회된다.” 이렇게 부모가 무서운데 자녀가 어떻게 부모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갈까.
자녀가 부모에게 자기 운전대를 빼앗기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건, 완전 아동 학대이다. 양순한 동물도 매일 반복적으로 괴롭혀 보라, 성질이 사납고, 결국 주인을 물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부모 밑에 그런 꼴이 자녀에게서 왜 일어나지 않겠는가. 부모는 여유있고, 질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미성숙한 자녀에게 이런 부모의 말과 행동이 어찌 역할이고 책임이라 하겠는가. 부모는 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이 아니라 성인일 뿐이다. 그런 일상의 반복이 어찌 자녀의 생명을 파괴해버리지 않겠는가.
이런 부모들 대부분이 완벽형의 성격이다. 그러나 부모와 반대성향의 자녀들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정리정돈도, 치밀함도 거리가 멀다. 그들은 자기 방식으로 적당히 이해하며, 늘 반복하는 것이 싫다. 특히 반복되는 간섭을 제일 싫어한다. 그들은 징검다리를 몇 단계씩을 점프하며 날아다니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지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늘 머릿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는 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매사에 결단력보다는 무계획적으로 즐기는 성격의 창의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말한다. “왜, 우리학교가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하면, 속 시원히 “부모님이 보이지 않아서” 라고 답했다. 이런 부모가 생각을 바꿔야 아이가 변한다. ‘나’의 눈높이에서 보지 말고, ‘자녀’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부모야말로 자신의 완벽함을 강요하지 말고, 자녀와의 차이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
부모 중에는 자녀의 운전대를 철저히 빼앗고 밀도 있게 간섭을 하기도 한다. 마치 전자 칩이 정확히 작동해야 하는 것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게 자녀를 간섭한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런 부모 밑에 있는 자녀는 자유롭지 못하다. 성장하면서 자녀는 부모의 눈치만 보며 아무 것도 자기 나름대로 하는 것이 없다. ‘일어나라, 밥 먹어라, 학교 가라, 휴대폰 꺼라, 학원 가라, 불 끄고 그만 자라.’ 이런 부모는 자녀에게 질리도록 지시하고 명령한다. 그러다 이러한 명령을 잘 따라주지 않으면, “너는 누굴 닮았니?” 하며 설교하고 훈화하다가, 상황이 더 심각해지면 자녀에게 폭력적 언사와 물리적으로 폭력도 불사한다. 그러나 자녀의 마음은 부모의 전통적인 틀에서 끊임없이 벗어나려하고, 늘 새롭게 살아가고 싶어 한다. 특히나 부모와 다른 성향을 갖고 있는 자녀라면 더할 것이다.
이런 부모로부터 자라나는 아이들 대부분이 문제가 많다. 유치원에서 초등 3학년까지는 부모 말을 그런대로 듣는다. 그러나 교육과정이 진행될수록 가정과 학교의 적응이 어려워진다. 성적은 하향 곡선을 그리며, 가정은 지옥이라 여기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등교거부와 가출에 시동을 건다. 이런 자녀 문제의 원인을 부모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다. 자녀가 문제를 일으키고 돌변한 것을 놓고 또 닦달을 하기 시작한다. 자녀는 부모의 눈을 피해가며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고 부정적 가면을 쓰고 행동한다. 엄마에게 덤벼들고, 심하면 발로 차며 무시한다. 이런 일을 겪는 엄마의 마음은 자녀가 한 없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이런 부모는 자녀 문제로 자녀에게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분별력을 잃어버린다. 자녀가 못 된 것이 아니라 부모가 잘못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자녀를 윽박지르며 여전히 강요한다. 옆에 자기 자녀를 앉혀 놓고 심한 말도 불사한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지금까지 키운 공을 어디서 보상받느냐, 원통하다. 내가 널 낳은 것이 후회된다.” 이렇게 부모가 무서운데 자녀가 어떻게 부모의 마음을 헤집고 들어갈까.
자녀가 부모에게 자기 운전대를 빼앗기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건, 완전 아동 학대이다. 양순한 동물도 매일 반복적으로 괴롭혀 보라, 성질이 사납고, 결국 주인을 물어 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부모 밑에 그런 꼴이 자녀에게서 왜 일어나지 않겠는가. 부모는 여유있고, 질적으로 성숙해야 한다. 미성숙한 자녀에게 이런 부모의 말과 행동이 어찌 역할이고 책임이라 하겠는가. 부모는 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이 아니라 성인일 뿐이다. 그런 일상의 반복이 어찌 자녀의 생명을 파괴해버리지 않겠는가.
이런 부모들 대부분이 완벽형의 성격이다. 그러나 부모와 반대성향의 자녀들은, 부모의 기대와 달리, 정리정돈도, 치밀함도 거리가 멀다. 그들은 자기 방식으로 적당히 이해하며, 늘 반복하는 것이 싫다. 특히 반복되는 간섭을 제일 싫어한다. 그들은 징검다리를 몇 단계씩을 점프하며 날아다니는 새로운 삶의 태도를 지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들은 늘 머릿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꿈꾸고 실천에 옮기는 자들이다. 그들 대부분은 매사에 결단력보다는 무계획적으로 즐기는 성격의 창의적인 사람이다. 그들은 말한다. “왜, 우리학교가 행복한가?” 라는 질문을 하면, 속 시원히 “부모님이 보이지 않아서” 라고 답했다. 이런 부모가 생각을 바꿔야 아이가 변한다. ‘나’의 눈높이에서 보지 말고, ‘자녀’의 눈높이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부모야말로 자신의 완벽함을 강요하지 말고, 자녀와의 차이를 존중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