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필연이 된 사람 중심의 만남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756 | 작성일 : 2012년 4월 13일

우연이 필연이 된 사람 중심의 만남

 매일 나는 1시간 동안 산책을 한다. 늘 향하는 산책길의 반환점에는 ‘화장품 공장’이 있는데, 공장 한 켠에는 잘 정리된 폐자재들과 원통형의 빈 용기가 쌓여 있다. 원통형의 용기는 좋은 재료가 담겨 있었던 듯 쓸모가 있어 보였다. 용기는 비록 폐품이지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는 생각과 함께 혹 쓰레기통으로 사용한다면 적합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오후, 나는 기숙사 사감과 함께 공장을 방문했다. 공장은 주말인지라 출입구만 열려 있을 뿐 휴무 중이었고, 침묵으로 가득했다. 공장에 들어서자 몇몇이서 화단 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우리에게 달려오며 공손히 인사를 했다. 그는 우리에게 어디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기 전에, “사무실에 들어가 커피 한잔 하시지요.”라며 친절하게 안내를 하였다. 안내를 받아 사무실로 들어가자, 그는 명함을 건네주면서 “이 회사의 책임자입니다.”라고 소개를 했다. 그리고 손수 커피를 마련해주었다. 우리 복장은 작업복 차림이었고, 신원도 확인하지 않았는데도, 그는 우리를 내빈 정도로 맞이해 주었다.
 그분은 브리핑하듯 회사소개를 해주었다. “오송생명과학단지에 조성된 부지에 회사 공장을 이전했는데, 화장품 재료만을 취급하며, 태평양화학의 아모레 화장품과 프랑스 굴지의 화장품 회사와 기술 제휴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원들이 틈틈이 지역사회와 연계하여 봉사활동을 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이윤의 일부를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환원해줄 계획도 있음을 설명해 주었다. 내가 그 부분에 관심을 보이자 그는 회사 대표와 상의해서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그 이외에도 자신의 가정 이야기며, 자녀 이야기, 회장에 관한 신상정보, 회사운영 전반을 소개하며, 경영철학도 이야기해 주었다.
 시간이 제법 되었을 때, 그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우리에게 물었고, 방문 이유를 말하자, 그는 그것은 고물로 처리한다며 필요한 만큼 가져가라며, 그런 용도라면 더 좋은 용기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잠시 후, 그는 “저는 양업고 앞으로 자주 지나다닙니다. 어떤 학교인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교장 신부님을 뵙네요,” 내가 대안학교라고 말하자, “저는 대안학교의 교육철학을 좋아합니다. 제 자녀도 일반고를 졸업했지만 재학시절 자녀교육을 대안학교 마인드로 교육시켯습니다. 아들은 중국 상해로부터 멀리 위치한 중경이란 곳에서 유학중입니다. 저는 자녀교육 동안 사교육과 획일적인 교육방법을 거부했습니다.” 회사와 학교의 철학이 서로 대안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생각에 박자가 잘 맞아갔다. 그는 학교를 직접 찾아뵙겠다고 했고, 나도 그를 초대하겠다고 답해주었다. 그는 인문학을 전공한 CEO라고 했고, 훌륭한 창의성을 지닌 경영철학이 그에게 묻어났다.
 오늘 만남은 우연이지만 필연처럼 배운 점이 많았다. 나와 우리 선생님들도 학교 내방객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려고 노력하지만, 그의 손님맞이에 비하면 우리는 한 수 아래였다. 회사 책임자는 공식적인 방문이 아니었기에 사무적으로 일을 끝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사무적인 일보다는 사람을 존중해 주었다. 이분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점심 때가 되었고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돌아오는 길은 목적 달성 이상으로 금의환향하는 사람처럼, 콧노래가 절로 나오며 행복한 마음이었다. 쓰레기통 몇 개를 구하러 회사를 찾은 것이지만,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은 용돈까지 두둑이 받은 듯한 뿌듯함과 행복감으로 넘쳐났다. 그분은 아마도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남의 계기는 폐품격인 용기로 비롯되었지만 사람중심의 만남을 통해 더 소중한 감정을 맛볼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 그 일 안에서 큰 의미를 선물을 주셨다는 생각에 깊은 감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