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자녀에게 아름다운 생명을 만들어 주어야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360 | 작성일 : 2011년 5월 20일

                          부모가 자녀에게 아름다운 생명을 만들어 주어야

 생명이 있기에 세상은 아름답다. 건강한 생명이 어우러진 세상은 더욱 아름답다. 모든 생명체가 아름다운 것은 하느님께서 손수 마련하시고 당신의 전 존재를 인간에게 양식으로 내어주신 덕분이다. 하느님께서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을 참 생명으로 마련하시고 믿음의 사람에게 먹게 하심으로 생명이 되게 하신 덕분이다(요한6.22-59). 부모님도 하느님의 사랑을 닮았다. 자신이 자녀의 양식이 되어 먹여주신다. 그리고 어린이들, 사춘기 청소년들이 이 양식을 먹고 자라난다. 자녀를 위해 참된 양식이 되어주신 부모는 황혼에 이르러 자신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며 즐거워한다. 이런 부모를 만난다는 것은 자녀에게 축복이요, 은혜이다.
 부모의 자녀양육에 대한 프로그램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엔터(enter)를 치고 자녀 양육의 과정을 들어가 보지만 중대한 에러가 발생해 있음을 본다. 돈을 벌어 자녀를 양육한다는 마음에 살아가지만, 자녀는 갈등하고 신음하다가 아름다운 생명이 되기를 거부하고 생을 스스로 마감한다. 바로 ‘자살’이다. 왜 자녀가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부모가 자녀에게 생명이 되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의 문제의 해결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의 강제와 강압으로 대하기에 자녀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이는 자녀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먹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방식으로 가공의 생명을 먹으라고 강요하기에 생겨난 일이다.
 몇 해 전의 일이다. 아버지는 일 중심이었고, 피곤하다는 이유로 자녀와 대화가 전혀 없었다. 일에 지친 아버지는 문제를 지닌 큰아들에게 메가톤급 폭언을 했다. “동생만도 못한 놈”이라며 상처를 주었고, 이에 아들은 점점 무기력해져 갔다. 소심한 아들은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무시당하고 갈 곳이 없다고 생각한 아들은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고 목숨을 끊었다. 동생과 다툼을 벌리던 아들에게 아버지는 소리쳤다. “나가 죽어!” 하며 등짝을 두들겼다. 아들은 순간 아파트 아래로 몸을 날려 투신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자기 탓’이 아닌 ‘학교와 친구들 탓’으로 돌려 원망했다.
 이번엔 유형이 좀 다른 한 학부모가 어두운 얼굴을 하고 나를 찾아왔다. “아들이 가출하고, 등교거부를 하고, 학교 밖에서 폭력서클인 ‘일진회’에 가입했습니다. 모두 제가 자녀에 대한 관심이 없었던 이유입니다.” 아버지는 자녀 양육의 프로그램화가 잘못 되었음을 깊이 성찰하고 있었다. 아버지의 문제 해결 방법은 오르지 강제와 강압이었다. 아들이 가출하고 등교거부를 하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학교 밖의 친구들과 어울렸다. 문제의 해결에 대한 돌파구가 있다는 생각에 나는 이 부모의 아들은 결코 자살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나는 그 아버지의 깊은 성찰에 힘입어 아들을 사랑하고 기다려주고, 함께 해주라는 부탁을 했다. 분명 자녀양육에 대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시도하는 부모의 아들은 시간이 지나면 빠르게 정상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나는 강압적인 남편을 사랑으로 인내하며 남편과 아들 사이에 중심잡고 서 있는 아내의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상담을 마치고 돌아가는 부모의 편안한 모습에서 행복이 싹트고 있었다. 이제 이 부모는 자녀에게 자신의 생명을 양식으로 먹여주는 일을 할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그 부모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다. 예수님을 참 생명으로 모시는 우리 신앙인들은 자녀들에게 또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생명을 먹여주는 삶을 살아야한다. 그래야 자녀가 건강한 생명으로 살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