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합니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965 | 작성일 : 2012년 6월 7일

결혼합니다

  졸업생 최지애(양업, 제6기, 추계 예술대학 졸업)가 학교를 찾아 왔다. 지애는 ‘2012.06.09. 오후 6시, 살랑이는 바람과 꽃들이 만개한 지애네 집 뜨락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두 손 꼭 잡고 한길을 걷고자 합니다. 포근하고 따사로운 정으로 감싸주신 고마운 분들께 감사하는 맘을 전합니다. 꽃보다 아름답게, 햇살보다 따듯하게 살겠습니다.’ 라는 꽃향기 가득한 결혼식 초대장을 내밀었다. 옆에 있는 신랑 박재관(홍익대 경영학 전공, 회사원)을 “참 착한 사람입니다.”라고 소개를 하길래, 나는 빙그레 웃으며 “또 뭐가 씌웠나 보다.” 한마디 했다. 이내 인사를 나누고는 지애는 학창시절이 되어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나는 지애에게 “어머니가 학교에 기증했던 통나무 테이블도 잘 있다.”고 하자, 더욱 반가워하면서 그 곳을 향해 달려가 보기도 했다.
  산속의 꽃과 나무, 숲, 풀 향기 나는 아름답고 좋은 학교라며, 둘이서 시간 가는 줄 몰라 했다. 졸업생들 모두가 그랬지만 지애도 정든 교정을 돌아보고는 “정말 아름다운 학교예요. 제가 학교 다닐 때, 운동장에서 돌을 골라내고 잔디를 심었었지요. 그 때의 수고가 이렇게 아름다운 학교가 될 줄이야.” 그 전만해도 학교는 나무 한 그루 없이 먼지만 풀풀 날리는 삭막한 학교였다. 지애의 학교 자랑에 신랑도 덩달아 좋아하며 학교가 아름답다고 맞장구를 쳤다.
  지애에게 자네 동기들이 누가 있는지 물어보니, “원지, 주연, 성락, 강석, 태우, 현진...” 이라며 동창들의 이름을 줄줄이 꺼냈다. 당시의 말썽쟁이들이 훌쩍 커 버려 그들이 졸업한지도 6년이 지났다. 친구들 소식이 궁금해졌다. 당시는 다루기 어려운 말썽쟁이였는데, 그 때만 해도 학생들이 기가 세서 120명 정원에 80명을 넘지 못할 때였다. 약자들이 그 놈들 때문에 버텨내지를 못하던 시절이었다. 아마 지애가 졸업한 걸 보니 기가 센 학생이었던 모양이다. 지금도 그 놈들 철부지 모습이 눈에 선하다. 교사의 보람은 학생들이 커가는 모습에서 성숙함을 볼 때라 여겨졌다.
 지애는 광주에서 이 학교로 유학을 왔다. 언제나 귀교 시에는 무거운 첼로 가방을 챙겨들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어머니의 딸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었다. 첼로를 전공한다고 음악 수녀님이 지도교수를 소개해주고, 학교는 레슨을 받으러 서울에 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열심히 연습을 했다는 기억이 살아났다. 지애가 서울 아현동 소재 추계예술대학 관현악부 첼로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었다.
  내가 페이스북을 하기에, 학생들 소식을 자주 접한다. 최근에는 지애가 친구를 맺자고 나에게 청하면서 “신부님, 2012.6.6 오후 4시에 곧 기쁜 소식을 갖고 학교를 방문하겠습니다.” 라는 내용을 보냈다. 지애를 기다렸는데 결혼 초대장을 들고 나타난 것이다. “신부님! 또 다른 기쁜 소식이 있어요. 예술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지원했는데 13대 1의 경쟁에서 당당히 합격했다는 소식을 막 전해 들었어요. 그 소식에 기절을 할 뻔했습니다.” “지애야, 기절하지 그랬니? 아마도 신랑도 기절할 걸.” “신부님, 여전히 썰렁 개그하시네요.” 기쁜 소식에 서로 환하게 웃으며 혼인과 합격을 동시에 축하해 주었다. 결혼 소식에다 명문 이화여대 대학원의 합격 소식은 지애에게는 학교를 더 급히 방문하고자 하는 원의에 최고의 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어머니가 준비해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찹쌀떡 케이크를 선생님들과 함께 나누었다. “신부님, 이 학교가 아니었다면, 저는 오늘의 영광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옆에 신랑도 함께 기뻐하고 있었다. 신앙생활 잘 하라는 권고와 부부관계에 대한 특강을 방문 선물로 해주었다. 그리고 하느님 축복을 빌어주었다. 지애는 신랑과 함께 축복과 특강에 감사해 했다. 지애야, 행복하게 잘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