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학교(Quality School)만들기 15년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911 | 작성일 : 2012년 9월 9일

            좋은 학교(Quality School) 만들기, 15년
-‘소극적 대안학교’에서 ‘적극적 대안학교’가 되기까지

                                                                      양업고등학교
                                                            교장 윤병훈 신부

1. 대안학교의 출발

  1) ‘대안학교’ 설립
  과거나 현재도 우리나라 교육은 입시위주의 시장경제 경쟁논리로 학교현장 구성원(학생, 교사, 학부모)들 모두가 힘들어 하는 것이 현실이다. 1995년, 나는 교육현장에서 상처받고 학교 밖에서 배회하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세우기 위해 대안을 찾기 시작하였다. 이에 천주교 청주교구는 나의 뜻을 지지하여 그들에게 ‘생명에 빛’이 되어주기 위한 학교설립을 도와주었다. 그런 뜻이 구체화되어 우리나라에 최초로 6개의 정규형 대안학교가 1998년에 탄생하였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양업고등학교(이하 ‘우리학교’)이다. 지금은 인가받은 정규형 대안고등학교만도 전국에 24개로 그 수가 늘어났다.
  설립당시, ‘대안학교’라는 용어 사용에 제동을 걸었다. 왜냐하면 ‘대안’이란 용어를 사용함은 공교육의 문제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이런 용어 사용의 제한으로 6개의 정규형 대안학교를 초중등 교육법 시행령 90조, ‘특성화고등학교’에 포함시켰다. 1항은 당시 실업고등학교가 아닌 전문 직업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자동차, 에니매이션, 미용고등학교 등을 포함시켰고, 제2항에는 ‘자연친화적이고 다양한 체험학습으로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신장시키고, 인성교육으로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는 학교’라는 내용으로 여기에 ‘대안학교’를 포함시켰다. 이런 사실은 최초의 대안학교를 설립한 소수의 당사자들만 아는 부분이다. 현재 90조 1항의 ‘특성화고등학교’는 과거에 사용한 실업계 고등학교 대신 특성화고로 학교유형을 고정시켰다. 그러나 90조 2항에 해당하는 대안형 정규 고등학교는 ‘학교구분’에서, 학교유형적 측면에서 볼 때, 그 어느 곳에도 정확한 위치를 확보하지 못한 채 어정쩡한 상태로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현재 정규 대안형 고등학교가 전국에 24개가 있지만, 학교유형의 자리가 여전히 애매모호한 상태에 있다. 그러나 최근 우리학교와 같은 ‘대안교육 특성화고등학교’를 ‘대안형 자율고등학교’로의 전환을 위한 입법을 서두르고 있다. 학교의 정체성과 설립이념 등 해당 학교의 고유성 및 특성을 존중하여 자율권을 보장받는 학교로 정착시키기 위해 교과부가 노력하고 있다는 점은 비록 늦었지만, 크게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교과부(교육과학기술부)는 민간 주도형으로 대안학교 설립을 허가했지만,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다행히 대안교육 주체와 단위학교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하는 학교로 그 위상이 높아지고, 그동안 공교육의 대안으로 기여한 공로가 인정되어 교과부가 관심을 보이고는 있다. 그러나 정책을 입안하고 대안학교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행정관료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고, 새로운 담당자들은 ‘대안학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내온 점은 유감이며, 직무유기라고 본다.
  보다 큰 문제는 교육정책을 입안하고 적용하지만, 정권이 바뀌면 모두 용두사미 격이 된다. 그리고 그 책임 수행에 있어 일관성과 지속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대안학교에 일반학교의 기준(잣대)을 적용하는 교육정책은 잘못된 것이다. 

  2) 소극적 대안학교로 출발

  학교 밖의 아이들이 많았던 1995년, 당시 교육자에게 많이 읽혀진 ‘창가의 토토’라는 책이 있었다. 이 책의 내용은 한 교사가 한 아이의 문제행동을 문제 삼아 전학 갈 것을 지시하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교사는 아이의 마음을 읽지 못했고 일방적으로 무시했다. ‘전학 가라!’는 교사의 권유를 받고서도 어머니는 학교와 교사를 원망하지 않고, 그 아이에 맞는 대안학교를 찾아주려 노력하여, 틀이 없고 자유로운 학교를 만났다. 그 학교로 전학 간 아이는 학교생활이 행복했고, 대안학교의 교장선생님은 그 아이가 성에 대하여 상담을 청했을 때, 무려 3시간이나 자상하게 상담에 응해준다. 상담이 끝난 어린 아이는 마음이 훈훈해졌고, 자기도 자상하신 교장선생님을 닮아 교사가 되겠다는 꿈을 지닌다. 아쉽게도 그는 성장해서 교사가 아닌 의사가 되었지만, 학교에서 받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미 고인이 된 학교장에게 바친 이 책은, 이론이 아닌 실천적 감동의 교육서이다.
  나는 이 책을 통해 학교 밖의 아이들을 사랑으로 대해주리라 생각했다. 학교 설립 당시, 나는 천주교 청주교구가 운영하는 학교에서 윤리를 담당하면서, 성당의 주임사제로 생활하고 있었다. 한 사제에게 ‘새로운 교육’의 길을 걸어가도록 기회를 준 것은 큰 은총이었다. 내 안에 그 뜻을 담아 학교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학교 밖의 학생들을 구체적으로 만난 적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구체적으로 이런 학교를 세우겠다는 계획도 솔직히 없을 때였다. 그런 학교를 세울 의지만을 보인 것뿐인데, 성급한 언론은 나의 학교 설립계획을 가시화하였다. 신문 머리기사는 한 사제가 ‘퇴학생, 부적응 중도탈락 청소년을 위한 학교 세운다.’로 대서특필했다. 반응은 두 가지로 나타났는데, 그 하나는 ‘소외 학생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참 좋은 일이다.’ 또 다른 하나는 ‘내 지역에 학교설립은 말아 달라.’는 반응이었다. 지역 정서는 냉담했다. 그 당시 현수막 걸개는 “쓰레기장이 들어온다더니 인간쓰레기 학교 웬 말이냐!” 로 쓰여 있었다.

  3) 막연히 ‘사랑으로 교육하겠다.’는 생각은 곧바로 한계를 낳았다

  학교 설립 소식은 교육계와 교회로부터 신선하게 받아드려 졌지만, 지역의 반응은 냉담했다. ‘문제아, 부적응아, 중도탈락 학생을 위한 학교’ 설립 소식은 시간이 가면서 지역 주민들을 자극했다. 그럴수록 학교는 수용의 개념인 ‘소극적 대안학교’로 인식되어 갔다. 설립을 꿈꾸던 1995년부터 1998년 개교까지 무려 3년 간 주민들과 만났다. 이런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충실해졌고, 친환경적인 새 땅에 새 건물을 잘 지어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경남의 한 동료 대안학교는 설립당시 폐교된 학교를 이용해 개교를 했는데, 입학식 날, ‘우리를 존중해주는 학교가 고작 이런 것이냐’ 며 모든 건물의 유리창을 쇠파이프로 박살냈다. 우리학교의 신축과정은 매우 힘들었지만, 지금의 아름다운 학교환경은 학생들이 다니고 싶어 하는 학교로 만들어 갈 수가 있었다. 
  학교 모양을 갖추는데 6년이란 시간이 소요되었다. 개교식 날, 교회 인사들과 교육계 수장을 포함 2000여명의 내빈들이 참석했다. 그 날 학생들이 보여준 생각 밖의 풍경은, 내빈들에게 혀를 차게 만들었다. 내빈들은 돌아가는 자리에서 내 어깨를 두드리고 격려해 주었지만 걱정이 담겨 있었다. “신부님, 이 아이들 어떻게 지도하실 겁니까?” 40명의 학생이 4000명의 위력을 지닌 것처럼 다양한 문제를 노출시키며 우리를 시험했다. 선생님과 주민들은 놀라서 한숨을 토해냈다. 주민들과 교회, 교육계 모두 우리학교를 ‘문제아 학교’로 낙인찍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그들을 올바르게 교육하겠다는 결심은 문제 행동의 누적으로 힘이 쇄진해 갔다. 학생들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장애(ADHD), 우울증, 자살충동, 폭력, 성의 노출과 오염, 무단결석, 약물중독, 등 부정적 학생들로 간섭과 통제를 싫어하는 미성숙한 학생들로 넘쳐났다. 교실은 텅빈 채로, PC방으로 내달렸고, 출석부는 흉한 상처로 새까맣게 결석을 표시하고 있었고, 흡연으로 학교가 담배꽁초로 가득했다. 당시, 우리학교를 지원한다는 학생에게 중학교 담임교사는, “그 학교가 어떤 학교인지 아니? 너무나 무서운 학교야.” 라며 원서도 써주지 않았다. 7,8년이 지나도록 학교가 위치한 충북에서는 거의 한 학생도 지원하지 않았다.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이자.’란 교육목적의 실현은 까마득하게 멀게만 느껴졌다.

  4) 사랑과 또 다른 실제적인 훌륭한 교육방법은 없는가?
 
  일반적인 학교교육 방식은, ‘보스형 리더십’으로 학생을 통제하는 전통주의 교육방식이다. 이는 어른(교사․학부모)들이 청소년들을 강력한 외적 통제방식으로 학업성취도를 향상시키려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에 의해 상처받은 학생들에게 교육방식은 분명 달라야 했다. 비록 학생들이 일반학교 학생들에 비해 인성 면에서 미성숙하고, 지식 면에서도 부진했지만, 나는 그들에게 ‘자유’를 선물했다. 사랑과 자유라는 수단을 교육방법으로 채택하고 학생들이 자발성과 자기주도성을 키워가도록 도와주기로 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동료 사제들은 나에게 스파르타 식 교육으로 그들을 감시하는 울타리를 치고 강력한 통제를 해야만 교육의 효과를 가져 온다는 주장을 권유하기도 했다. 나는 학생들의 행동이 심한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 외적으로 통제하고 싶었지만, 학생들이 언젠가는 자신을 리드할 수 있는 내적통제를 하도록 ‘민주형 리더십’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 선택은 과연 잘 한 일일까를 놓고 고민하게 만들었다.
  가톨릭 학교헌장에 명시된 ‘예수님의 사랑’을 통한 생명교육, 우리가 끊임없이 인내하며 학생을 ‘존중하고, 기다려주고, 함께하고, 눈높이 수준으로 그들을 대하며’ 인간구원과 참 행복을 실현해가는 인간복음화를 실현하는 과학적인 교육방식을 찾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실천하기로 마음먹었다.
 

2. 좋은 학교 만들기의 과제들
 
  1) 풀어야 할 문제해결의 과제는?

  우리가 직면한 첫째 과제는, 교육의 주체인 교사들이 학생을 변화시킬 만큼 변하는 것이 과제였다. ‘어떻게 하면 부정적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과제의 해결 방안은 선생님들의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마태 9,13).”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부정적 인간을 사랑으로, 긍정으로 회복하는 것과 이를 뒷받침할 방법을 찾는 길이었다. 일반학교 방식으로 교육받아 길들여진 대부분의 교사들이 기다려주고 학생들의 눈높이로 낮아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속수무책으로 쏟아 붓는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전혀 몰라 ‘소극적인 방식’인 외적통제를 할 수 밖에 없었던 시절에 이를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 일로 학생들은 거세게 반항했다. 우리가 여전히 통제를 하기에 집단으로 학교를 뛰쳐나가기도 하고 “우리들을 위한 학교가 고작 이런 것이냐? 일반학교 보다 더 하다.”고 항변하고 있었다. 우리는 이상향의 방법으로 접근하려 했지만 교사가 그들에게 보여준 것은 여전히 언어적 폭력에 가깝고, 지시, 명령, 간섭, 통제, 비난, 설교로 일관하는 것이 모두였다.
  개교식 전에 교육철학의 골격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한국 심리상당연구소 소장이신 ‘김인자 교수’를 만난 것은 학교에게 큰 축복이었다. 교수님은 교사들에게 거의 매일 ‘좋은 학교’ 만들기와 학생 문제의 해법을 놓고 상담기법인 현실치료를 강의해 주셨다. 윌리암 글라서 박사가 주창한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을 설명하고 이 방법의 목적은 좋은학교(Quality School)를 만드는 것이라며 실제적인 강의를 해주었지만, 교육구성원 모두 대안학교에 처음이라 교수님이 자상하게 설명해 준다 해도 우리 학교 구성원들은 경험의 무지로 이해하질 못했다. 열강하는 교수의 이론은 여전히 우리에게 뜬 구름 잡는 그런 느낌이었다.
  둘째 과제는, 우리학교가 ‘소극적 대안학교’를 탈출하는 것이었다. 과연 암울한 교육현실의 굴레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교육공동체가 노심초사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우리가 만난 ‘현실치료’가 과연 적극적 대안학교로 만드는 교육방법인가? 그렇다면 이 이론을 어떻게 학교에 적용할 것인가도 고민의 과제였다. 또한 ‘우리학교가 현재의 실험학교로, 미래의 희망교육의 비전을 제시하는 학교로 성장할 수 있을까?’가 또 다른 과제가 되었다. 복지시설인 수용의 개념 학교가 아닌, 진정한 교육을 통한 인간성장과 성숙을 도모하는 학교로 발전하고 공교육의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 줄 성공적인 학교로 만드는 것이 더 큰 고민거리였고, 과제였다.
 최근 발간된 ‘길은 걷는 자의 것이다.’ 라는 책 속의 주인공처럼 우리도 길을 걸어보는 수밖에 별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살아 보자, 그리고 우리도 말해보자. 문제를 문제 삼아 야단쳤고, 변화를 당겨 급조하려고 지시하고 명령하고 비난하던, 그래서 악순환이 거듭되어 문제는 그대로 문제로 남고, 관계가 엉망이 된 경험들을 끊임없이 지속하면서 ‘현실요법’의 내용을 조금씩 알아갔다. 교사들이 학생들의 문제행동에 대한 원인을 제대로 규명하고, 긍정적인 언어로 풀어 가면 자연스럽게 문제해결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2) 양업으로 좋은학교(Quality School)를 만들자

  학교 교표는 건강의 상징인 노란색 바탕이다. 그 표지의 글자는 최양업 신부의 영성을 닮고자 하는 ‘양업고등학교’, 사랑의 학교, 하느님의 학교라는 의미로 ‘십자가와 교회를 상징하는 건물’, 그리고 ‘1998’이란 설립연도, ‘좋은 학교’라는 글귀가 담겨 있다. 이 표지는 함축적으로 우리학교의 교육철학을 담고 있다. 여기서 뜻하는 ‘좋은 학교’란 윌리암 글라서의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이 지향하는 교육목적으로의 ‘좋은 학교’를 의미하며, ‘현실치료’는 학생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활용하고 있다.
  학교가 학생들에게 자유를 제공하고, 비록 철부지 학생들이 자유를 남용하고 방종할 때라도 이 방법으로 그들을 건강한 자유인으로 만들어 주리라는 확신을 가졌다. 어른들의 강력한 외적통제 방식에 불만을 가진 학생들은 반항으로 문제를 표출한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에게 자유를 제공하고, 그것으로 자신의 내적통제능력을 향상시켜 현실 문제를 스스로 풀어가도록 돕는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학교생활을 진행하면서도 학생들은 학교에 불만을 가지고 문제를 일으키며 교사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만,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고 사랑해주었기에 인성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학교에 대한 애교심과 교사에 대한 존경심이 함께 성장했다.    학생들은 우리학교를 알릴 기회가 있을 때면 ‘좋은 학교(Quality School)’ ‘행복한 학교’라며 홍보했고, 학부모들도 미래의 학교다운 학교라며 홍보하고 있었다. 이런 홍보는 차츰 경쟁력을 지닌 학교로 발돋움 했고, 지원율도 높아갔다. 교사와 학부모가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이 달라지자 학생들도 힘을 받기 시작했다. 개교 후 그들의 반란은 힘들었지만 더 큰 훌륭한 교사로 성숙시켜주었다. 새로운 부모의 모습과 교사의 교직관이 정립되었고, 이는 학생들이 성장하는 희망의 불씨가 되어 주었다.    우리학교를 지원한다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인지도가 높아지자, 이제 중학교 담임선생님들은 “양업고등학교 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나요?”라고 묻는 학교가 되었다.

  3) 교육원리의 적용과 10년 삶의 이야기

  초창기 학생들의 대부분은 흡연을 선택하고 있었다. ‘화재가 발생할까?’ 마음 조렸고, 흡연 장소가 무분별하여 담배꽁초가 학교 이곳저곳에 널려있었다. 책도, 교실도 싫어하는 학생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의 수단인 담배를 빼앗는다면, 흡연문제는 더 심각해지고, 교사와 학생 간 관계성만 악화되었을 것이다. 학교장은 학교 정문에다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 흡연 터를 만들어 주었다. 이는 흡연을 허락한 것이 아니라, 시간이 지나며 그들이 좋은 수단을 찾을 것이라는 기대와 기다림 때문이었다.
  금연하도록 학생과 자상스럽게 대화해 주었으며 잘못된 경험의 세계를 바꾸어주기로 했다. 언제나 사랑으로 다스린다고 하지만 그들 모습이 너무 비참해서 야단치고 닦달하기도 했다. 이런 나보다 선생님들이 더 자상했고, 기다려주고 학생들을 존중하고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학생들의 흡연문화는 학생들 사이에 담배 상납, 후배 괴롭힘, 동료 폭력, 양아치 근성 등을 양산했는데, 군대도 아닌 학교의 수직적 조직사회에 동물세계처럼 양육강식의 지배로 후배들은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지냈을까.
  또래집단이 생활의 중심에서 주체가 된 것은 개교 후 7년이 되어서야 변하기 시작했다. 한 학생이 ‘전체회의’ 시간에 외쳤다. “여러분 여기가 수용시설입니까?, 학교입니까? 학교라면 우리의 학교문화를 바꿔야 합니다. 흡연문화가 개선되길 한 없이 기다려주는 선생님들을 우리가 존중해 드려야합니다. 선생님을 존중한다는 것은, 바로 학생이 학생답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전체학생이 그 학생의 제안에 듣다가 한 두 명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자 모두들 일어섰다. 그는 학생 속의 힘의 강자도 아니고, 구석에서 언제나 학교를 좋은 학교로 만들 각오를 하는 학생이었다. 흡연 터를 없애자는 학생 안에서의 자발적인 제안과 전체학생들의 동의가 흡연 터를 학교 밖으로 추방시킬 수 있었고, 이러한 일련의 성취는 개교 후 7년의 세월이 지나서 이룬 쾌거였다. 좋은 학교가 되는 조건의 첫 신호탄이었다. 교사가 아닌 학생들에 의한 자발적인 결정은, 전체 흡연 비율을 15% 대 이하로 줄일 수가 있었다. 이 일 이후 학교는 도난과 학교폭력 등이 현저히 줄어들었고 행복한 학교가 되어갔다. 
  학생들의 두발은 처음부터 다양한 색깔로 염색되었으며, 각 신체부위에 장식된 피어싱은 교사, 학부들로서는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들의 가을 단풍과 같은 염색머리가 정상적인 단정한 검은 머리색으로 돌아오는데 꼭 3년의 시간이 걸렸고, 그들을 기다려주고 함께했던 교사는 머리가 빠져나으며, 학부모들은 검은 머리 색이 백발로 변했다. 기다림이 얼마나 힘든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사랑해주고 존중해주고 기다려주면, 학생들의 인성이 자라나고 바르게 변해갔다. 어른들은 자녀를 동일시하여 조급하기도 하고, 성과를 바라고 남들에게 칭찬받길 좋아해서, 자녀를 존중하지 않고 부정적 언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지금 생각하니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않고, 성숙한 척 하며 지낸 날들이 부끄럽기도 하다. 성숙하지 못한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어 너무도 감사하다.


  학교에서 해가 중천에 뜬 어느 날, 기숙사에서 커튼을 드리우고 야행성 학생들이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내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이놈들아, 해가 중천에 떴다! 농부들은 이른 새벽부터 논밭에 나가 일하는데 빌어 처먹을 놈!”이라고 비난하며 언어적 폭력을 썼다. 다음날 학생들은 내가 잘 가꾸어 놓은 화분들을 운동장에 내동댕이쳐 박살을 냈다. 마치 화분들의 모습이 학생들에게 얻어맞아 나뒹구는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또 내 감정은 폭발해서 선생님들에게 “화분 깬 놈 찾아내요. 이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퇴학입니다.”라고 했다.
  내 감정이 원상태로 회복한 저녁 시간에 수녀님이 찾아 왔다. “신부님, 그 아이들은 교실이 싫고, 선생님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고, 야행성으로 밤을 지새우다가 잠이 들었을 텐데, 신부님의 비난, 언어적 폭력이 그들을 그렇게 행동하도록 자극한 것이 아닌가요?” 순간 나는 아차 싶었다. 기다려 준다고 했는데 또 상처를 주었구나 하며 나는 그들을 다시 불렀다. “왜, 그랬지?”, 학생들은 고개를 숙이고 죄인처럼 앉아 있었다. “신부님, 솔직히 저희도 학교에서 잘 지내고 싶어요. 책과 노트와 연필을 지워버린 저희가 학교에서 할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의욕도 없고요. 이 학교에 와서 그래도 사람 되려고 노력 중인데, 더 솔직히 무기력하고, 내 자신을 보면 비참하고 절망적이 되지요. 그런 저희 심정을 살펴주지 않으시고 우리를 걷어차고 비난했을 때, 교장 신부님께서 우리를 이해해 주시는 교장으로 바꾸어 드리고 싶었어요.” 나는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내 안에 박힌 고정관념이 무섭다는 것을 알았다. 선생님들도 나에게 “신부님이 소리치고 폭발하면 엄청나게 저희도 스트레스 받습니다. 신부님은 학교 설립을 했으니 야단치지만, 그 아이들 불만이 저희에게 쏟아지면 암에 걸릴 것 같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그들이 선택한 행동이 부정적일 때라도 학생이 일으킨 문제에 매달리지 않고, 그 원인을 찾아보려 했고, 문제해결에 있어 좋은 방법과 수단이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진정한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4) ‘현실요법’의 이론와 실제

  윌리엄 글라서 박사의 ‘현실요법’은 하나의 피상적인 이론이 아니다. 매우 실제적이고 구체적으로 검증된 상담기법이다. 이 상담기법은 윌리엄 글라서 박사가 문제 청소년들과 생활하면서 ‘실험학교’를 운영하며, 오랜 동안의 경험에서 만든 상담기법의 작품이다. 나는 요즘 스마트 폰을 보면서 모든 지식과 경험을 연결하여 만든 작품임에 놀라고 있다. 마찬가지로 이 상담기법이야말로 우리 부모와 교사가 시장경제논리로 경쟁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학생들을 생활지도하고 상담하는데 꼭 필요한 훌륭한 작품인 상담기법이라 말하고 싶다.
  내가 직접 문제 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를 운영하며, 한국 심리상담 연구소 김인자 소장을 만나 이 상담기법을 만난 것은 큰 축복이었다. 비록 당시에는 이 이론에 대해 상당 기간을 그분에게 설명 듣고 배우면서도 좀처럼 마음에 와 닿지 않고 이해하기 힘들었다. 우리의 경험된 세계에는 그 설명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윌리엄 글라서의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을 우리학교의 교육원리로 채택했고, 교육계획서에 문자화했다는 점이다.
  십 수 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우리가 행하고 학생들과 생활하는 모든 것들이 ‘현실요법’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의 상담기법인 ‘현실요법’이 책 속에 이론으로 있다가 동력이 생겨나고, 책 밖으로 나와 움직였던 것이다. 부적응하고 미성숙한 청소년들의 현재의 모양 실태가 부정적으로 작용할 때라도 긍정적인 언어로 학생들을 대하는 방법을 알아갔고‘ 마이너스 상태를 플러스 상태로 변화시켜가는 방법을 터득해 갔던 것이다.
  졸업식이 있던 날, 졸업 식장의 풍경은 일반학교의 상황과 전혀 달랐다. 첫 졸업식 날, 졸업미사가 1시간 정도 진행되었고, 졸업식이 무려 3시간 진행되었다. 무려 3시간 졸업식을 했지만 졸업생들은 미동도 하지 않고 감동의 졸업식을 거행해 냈다. 그들이 졸업식의 주인답게 내빈들을 감동시켰고, 내빈들은 기립박수를 보냈다. 성숙한 졸업생들이 고마움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다려주고, 함께하고, 그들 수준의 눈높이로 대해주고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사랑의 실천과 문제를 놓고 그들을 닦달하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 긍정의 언어로 자긍심을 갖게 했던 교육원리가 그들을 훌륭하게 만들어 낸 것이다. 그 이후 우리는 교육목적인 ‘사랑으로 마음을 드높인’ 감동을 계속 보게 되었다. 
  학생들은 졸업식이 끝났는데도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떠나기 아쉬워했다. 일반학교의 졸업식에서, 옷을 찢고, 밀가루를 뒤집어쓰며, 속옷만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그 원인은 학교가 그들에게 외적 통제만으로 간섭한 감옥이고, 그 감옥이라는 곳에서 탈출하려는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다. 다니고 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행복한 학교가 되기에는 어른들의 외적 통제방식은 결코 학교문화를 좋게 만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문제아는 없다. 단지 사춘기를 지나며 학생들은 문제를 지니고 고민하며 살아갈 뿐이다. 그런데 어른들이 이런 청소년들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모르면서, 청소년들이 빠르게 변화되기만을 강요한다. 이런 어른이 더 문제다. 어른이 변하면 아이들도 넉넉히 변한다. 문제가 보이면 언제나 청소년에게 긍정의 언어로 대했으면 한다. 어른이 조급하면 아이는 질식해 버린다. 아이들이 가출하고, 등교거부 하고, 성당을 싫어하는 것은 미성숙한 성인들 때문이다.”라고 주장하고 싶다.

 5) 현실요법을 뒷받침 하는 교육과정 편성
   
  학생들의 긍정적 변화를 돕기 위해, 교사들은 스스로 퇴근을 반납했다. 낮에는 교실에서 교사로, 밤에는 기숙사에서 사감으로 지내며 학생들이 제대로 서도록 지렛대가 되어주었다. 시간이 제법 지나자 학생들이 교사의 희생적 마음을 헤아려 주었고, “우리가 이제 생활의 주체가 될 테니, 선생님들은 가르침의 주체가 되어주세요.” 하며 학교장을 찾아와 교사들이 퇴근을 하도록 건의했다. 나는 우리 학생들이 얼마나 훌륭한가를 보고 감동했다.
  조금은 여유가 생겨난 교사들은 교육의 주체가 되어갔다. 나는 세계의 대안학교를 경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윌리엄 글라서가 주창한 교육원리를 실제 생활화하는 미국의 일리노이즈 초등학교(헌팅턴우즈)를 방문했고, LA의 국제 세미나에도 참석했으며, 일본의 여러 대안학교의 모습과 유럽 등지의 대안학교를 탐방하며 견문을 넓혔다. 또한 학교 자체적으로 매주 수요일이 되면 교사들이 함께 모여 연수와 세미나 등을 펼치며 대안학교 교사의 질을 높여갔다. 교사와 학부모의 연대를 통하여 교육원리를 공유했고, 자녀들의 교육발전에 관심과 참여를 독려했다.
  학생들의 생활이 좋은 모습을 보이자 부모님은 욕심이 생겼다. 사람 만들어 달라다가 이제는 대학가게 해 달라고 한다. 학교는 다시 힘들어졌다. 학부모는 기다려주지 못하고 늘 성화를 부렸다.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성화를 부려대는 학부모들의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이 더 문제였다. 교육구성원은 학생들 농사를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놓고 학생수준에 맞는 교육과정 편성과 교육목적, 교육목표, 교육방법과 원리들을 점검하며 교육과정을 편성하기로 했다.
  인성이 바로서야 공부를 할 수 있다. 학생들이 이미 경험된 부정적 세계를 좋은 긍정의 경험들로 채워주는 작업이 필요했다. 처음 교실수업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들로 산으로 현장으로 찾아다니며 체험으로 여러 가지 다양한 지식을 만났다. 교실에서의 지식 쌓기를 싫어했기에 산악등반, 봉사활동, 현장체험학습, 청소년 성장프로그램, 종교 활동, 노작, 가족관계 등을 교육과정으로 설정하고 실천했다. 이것은 부정의 경험을 상쇄하고 좋은 경험으로 공부의 필요성을 인식시켜주기 위해서였다. 이런 활동으로 그들은 공부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새벽 늦은 시간까지 공부방에서 늦깎이로 밀린 공부를 해서 목적을 달성해 갔다. 또한 해외 이동수업을 실시하여 글로벌 시대의 안목을 갖추게 했다.
  지금은 학생들이 교실수업에 흥미를 가지는 학교가 되었다. 이런 교육과정의 편성과 운영은 선행학습으로가 아닌 선수학습을 통해 수준 높은 수업에도 잘 적응토록 한 것이 적중했다. 우리 학교의 학업성취도가 75% 이상 향상된 것은 ‘좋은 학교’라는 윌리엄 글라서의 주장과 일치한 것이다. 인성교육은 나를 세우는 교육이며, 내가 제대로 서게 되면 지식교육을 전념하는 학생으로 발전한다. 이는 ‘현실요법’을 돕는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매김을 한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3. 적극적 대안학교로 태어나다

 1) 좋은 학교가 된 조건들
 
  우리학교는 교육원리인 윌리엄 글라서의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이 지향하는 좋은 학교 (Quality School)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학교이다.
  ‘좋은 학교’의 조건으로, 첫째, 교사는 학생들을 지지해주는 따뜻한 수업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교사와 학생 간에 관계에서 교사가 힘의 우위를 내세워 대립각을 세우면 안 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학생들을 언제나 격려해주고 칭찬해 주며, 절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
  둘째, 학생들에게 효용성 있는 공부를 시킨다. 학생들에게 질적인 수업을 위해 효용가치가 있는 공부를 시켜야 한다. 학습자에게 학습과정에서 왜 배워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인식 시켜주고, 배워서 학생들에게 유익한 면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제시해야 한다. 그것들은 심미적, 예술적, 지적, 또는 사회적 효용가치들이다.
  셋째, 학생들은 소질과 적성이 다르기에 각자의 능력에 따라 최선을 다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질적 학습을 하려면 시간과 노력이 요구된다. 여기에 선행학습 뿐 아니라 선수학습을 시켜주고 교사들의 기다림과 인내가 따르는 것이다.
  넷째, 학생들 각자가 자신의 학습을 평가하고 향상시키게 한다.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학업성취도가 향상되도록 교사가 학생에게 암시해주는 것이다.
  다섯째, 질적 학습은 늘 행복감을 수반하다. 학생들에게 물어보아라. “나는 과연 학교생활이 행복한가?” 학생들 대다수가 그렇다고 답하면, 이는 좋은 학교이다.
  이와 같은 질적인 좋은 학교 조건으로 들어가기 위해, 학부모와 교사는 전통교육방식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현실요법을 적용하며, 기다려주고 함께하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러한 질적 학습을 위해 노력한 결과, 학교는 무단결석과 학교폭력이 점차 줄어들었고, 부정적인 학교문화는 개선되어, 좋은 학교(Quality School)의 조건을 충족해 갔다.

 2) 두 번째 교육목표의 설정

  모든 교사들의 상술한 시간과 노력의 투자는 ‘좋은 학교’를 이루고자 한, 두 번째 학교 과제를 향해 출발하게 되었다. 두 번째로 교육목표를 재설정한 것은 학교의 영광이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바탕으로 마음을 드높이기 위해 ‘자기를 존중하고 남을 배려하는 학생, 좋은 행동의 선택을 하고 행동에 책임을 지는 학생, 창의, 인성교육을 통하여 학업성취도를 향상시켜 나가는 학생’으로 목표를 정했다. 이러한 목표를 설정한 것은 개교 후 8년만의 성과였다.
  우리학교의 질적인 학습을 위한 다양한 교육경험들이 학교 역사실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이러한 다양한 여러 자료들을 종합하여 책으로 제작하여 우리들의 노하우를 공교육 현장에 벤치마킹시키려는 시도를 시작했고, 이러한 일련의 노력들은 우리들에게는 새로운 의무로 다가왔다.
  교과부의 교육정책에 관련된 프로젝트에 우리 학교의 질적 경험들이 빛을 발했다. 책으로 만들어져 소개되었으며, 바른 인성교육 및 특색 있는 교육활동의 공모전에 참여했다. 그 결과 ‘특색 있는 학교 만들기 선도학교’ 운영, ‘제1회 대한민국 좋은 학교 박람회’ 참가, ‘금연예방 선도학교’ 운영, ‘학교문화 선도학교’ 운영, ‘언어문화 개선 선도학교’ 운영 등으로 학교가 대통령상을 수상했으며, 우리학교는 여러 번에 걸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을 수상하였다. 부자연스럽고 위축되기까지 했던 부정적인 소극적 대안학교가 이제는 학생들이 직접 고백하는 매우 행복하고 머물고 싶어 하는, 졸업 후에도 끊임없이 찾아오는 좋은 학교(Quality School)로 매우 자연스러운 ’적극적인 대안학교‘로 새롭게 태어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3) ‘적극적인 대안학교’로 태어나다

  우리학교가 보여준 소위 ‘문제아들을 훌륭하게 키워낸 교육’ 성공사례는 시․도 교육청을 통하여 전국에 알려져,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각 시도 교육청에서도 공교육 차원에서도 대안학교를 설립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기 시작했다.
  공교육에서 대안학교를 설립하는 데 우리학교는 벤치마킹의 모델이 되었고, 우리학교의 노하우는 전국 공교육 쇄신에 교사가 컨설턴트로 참여하게 되었다. 현재 학교장과 교감, 교사들은 전국의 교육현장에서 실제적으로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특히 학교장은 우리나라 가톨릭학교의 교육헌장에 명시된 학교답게 새로운 복음화의 대안이 되는 교육방법들을 제시하는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다.
  우리학교의 대안교육 실천은, 한국의 가톨릭 학교의 교육쇄신에도 영향을 주었다. 소외계층의 인간구원이라는 측면에서, 현장교육에 새 복음화의 불을 붙였다. 준 공립화 되어있는 가톨릭학교의 설립 정체성이 사라져가는 가톨릭학교들은 우리학교의 교육활동을 보면서 새로운 결심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 학교의 이러한 노력들은 가톨릭교회 내에도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모델이 되었으며, 가톨릭정신을 학교가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2010년 한․일주교회의 시, 한국과 일본의 많은 주교들이 우리학교를 방문한 것이 이를 입증한다. 우리학교는 개교 후 10여 년 동안 시골의 작은 장소에서 ‘소극적 대안학교’로 침묵하며 지냈지만, 이제 우리의 노력은 세상에 새롭게 부상하며 빠르게 ‘적극적 대안학교’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4) 새로운 희망의 대안을 찾아서

  ‘그들은 단지 낙오자들일 뿐이다.’ 이런 비난을 듣고 자란 학생들이었지만, 그들이 잠에서 깨어났을 때 그들의 생동감은 놀라웠다. 공부 못한다고 문제아라고 성화를 부릴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지도한 교육방법이 학생들을 훌륭한 인재로 태어나게 했다. 학교는 교육과정을 그들 수준에 맞추어 편성했으며 인성교육을 전적으로 실시했던 때도 많았다. 그들에 맞는 적절한 수업은 졸업 후에, 사람다운 사람, 하나의 성숙한 인격자로 발돋움했고, 의사, 공인회계사, 인류 요리사, 경영인, 장교, 사업가, 음악인, 성악가, 미술인 등 다양하게 인재를 태어나게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대안학교는 부정적 정보가 더 많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학교를 ‘소극적 대안학교’라는 인식으로 고정하고 있다. 문제아는 없다. 다만 살아가며 문제를 만날 뿐이다. 어른들은 그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야 하는데, 해결 능력이 없다. 그렇다면 어른이 더 문제가 아닌가.
  학교 설립 후, 15년이 지난 우리학교는 이제 그들이 생각하는 ‘소극적 대안학교’가 결코 아니다. 우리학교는 학생과 학부모가 신뢰하는 행복한 학교로 성장했다. 학생과 학부모의 지원 욕구가 매년 상승해 작년에는 8대 1의 경쟁률을 보이며 우뚝 서 있다. 이러한 결과는 기적과도 같은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우리학교는 가톨릭이라는 보편적인 의미를 지닌 대안학교 특유의 브랜드로, 가장 신뢰도가 높은 학교로 성장했으며, 이는 ’하느님의 학교‘ ’사랑의 학교‘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4. 인성교육 학교에서 영성교육 학교로의 도약

  1) 새로운 희망의 대안을 찾아서

  우리학교가 ‘적극적인 대안학교’로, 전국의 학생과 학부모가 선택하는 좋은 학교로 발전한 것은, 하느님의 사랑과 구성원의 희생으로 가능했다. 혹자들은 이런 성공을 하기 위한 진통의 내용들을 보지 않고, 학교가 개교 당시의 문제아들을 위한 학교가 아닌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하는 학교로 설립정신이 변질되었다고 말들 한다. 그러나 우리학교처럼 자율적이고 주도적인 학생 양성의 관점에서 일관성과 지속성을 지니고 상담기법을 통해 격려하고 지지하고 실천한다면, 우리만큼 공교육도 빠르게 좋은 학교(Quality School)로 발전할 것으로 확신한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의 편성․운영의 핵심은 ‘자율성과 자기주도성’ 신장, 창의적이고 글로벌한 인재 육성‘임을 제시․진술하고 있다. 그런데 현장교육의 현실은 여전히 경쟁에서의 우위 점유를 위해 노력할 뿐, ‘자율성과 자기주도성’ 신장, ‘창의적이고 글로벌한 인재 육성‘의 목표 달성을 위한 접근은 무기력하기만 하다. 이러한 관점에서, 적극적 대안교육은 미래교육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2) 우리학교는 ‘인성교육’으로 교육의 대안을 찾았다

  학생들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의 편성․운영이 대안이며, 인성교육의 실천이 대안이었다. 선수학습의 부족으로 지식교육의 전달 장소인 교실을 떠난 학생들에게 교실이 될 수 있는 대안을 찾았다. 그 교실은 보다 넓은 세상과 자연이라는 교실이다. 드넓은 세상과 자연을 체험한 그들은 지식의 필요성을 알게 되었고, 스스로 교실로 돌아왔다. 교실 수업이 싫어 교실을 외면한 학생들이, 교실로 돌아와 지식교육을 자발적으로 하게 된 것은 매우 감동적인 일이었다. 학생들은 ‘인성교과’를 통한 다양한 체험학습장에서 산과 들을 만났고, 다양한 세상과 사람들을 만났다. 폭넓은 세상을 체험하고, 글로벌 시대에 맞는 해외 이동수업을 편성․운영하여 실천했다. 이러한 교육과정의 편성․운영으로 학생들은 세계를 보다 폭넓게 알게 되었다. 국․내외의 다양한 체험은 학생 스스로 자신의 목표를 찾아가게 하였으며, 목표가 생겨난 학생들은 내적으로 자신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학생들의 자기 주도적 학습은 미래를 생각하고 자신의 취미와 적성을 앞세운 대학을 선택했고,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것과 연결되었다.
  개교 초기, 교사들의 지시와 학생들의 반발로 생겨난 교사-학생 간의 단절은, 상처 받은 학생들을 학교 밖으로 쫒아내는 결과를 가져왔다. 당시의 학생들 내면은 부정적 사고와 부정적인 에너지로 가득 차 있었다. 모래알처럼 자기중심의 학생들은 나 자신만을 생각하고 공동체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학생들은 긍정적으로 변화될 것이며, 우리학교 교육은 부활을 보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인성교육’ 활동으로 이를 실현해 냈다. 학생들은 인성교과를 통해 성숙해 갔고, ‘자유’를 통한 자율성’ 신장을 위해 ‘다양한 체험교육’을 실천했다. 그리고 부분을 종합할 수 있는 능력을 창출해 갔다. 결론적으로, 우리학교인 대안교육의 성공은 ‘인성교육’이라는 사랑과 전 교육공동체의 협력이 녹아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3) ‘인성교육’을 뛰어넘는 더 좋은 대안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 개정교육과정’을 발표하고, ‘창의적 체험활동(자율, 동아리, 진로, 봉사활동)을 3년 과정 204단위 중 24단위로 편성하여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우리학교의 인성교육에 비하면 매우 부족하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또한 대학입시사정관제의 도입으로, 인성교육 부분을 중시하므로 인성교육은 과거에 비해 크게 향상 될 것이다. ‘인간다운 인간 육성, 훌륭한 인재양성’이 중시되어야 한다는 교육의 본질적 접근이 부각되어 매우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우리학교 뿐 아니라 ‘인성교육’을 중요시 하는 모든 대안학교들이 한 차원 높은 학교로 인정받고, 일반학교에 벤치마킹하는 학교가 되어 있다. 이제는 또 다른 교육방법을 찾아야 할 시기이다. 이것이 대안학교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안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이며, 명문 가톨릭 학교인 ‘논산 대건고’의 교육방법은 ‘영성교육’을 내세우고 있다. 이는 장기간 학교경영을 주도적으로 하는 학교장의 책임 있는 마인드에서 비롯되는 분명한 대안이다.
  가톨릭 학교 교장들 연찬회에서 영성교육 방법을 발표하자, 학교장들은 긍정적으로 인정은 했지만, 영성교육이 매우 생소하다는 표정으로 접목이 쉽지 않은 이상적인 방법이라며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가톨릭학교 교사들의 생활 속에 나타난 소극적인 신앙생활과 세속화된 삶의 상황에서, 영성교육 방법은 큰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산 대건고는 이를 실천하여 학업성취도를 높이고 있다. 논산 대건고등학교의 실천 사례는 모든 가톨릭학교가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인식과 매우 신선한 충격으로 심금을 울리는 교육방법이라는 데 모두가 동의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 학교는 교사와 학부모가 신앙을 통해 ‘인성교육’을 뛰어넘어 또 다른 대안인 ‘영성교육’에 대해 숙고해 보아야 한다. 비록 ‘영성’이란 단어가 쉽게 일반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또 다른 대안인 영성교육을 학교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
  인성과 영성이 무엇이 다른가? 개념정리를 해 보자. ‘인성교육’은 사람을 만드는 1차적이고 인위적인 노력이다. 경험과 지식을 쌓으며 종합하여 나 자신을 정립해 가는 교육이 인성교육이라면, ‘영성교육’은 축적된 경험과 지식을 하느님과 관련지어 모든 사안을 머리로 생각하는 것 뿐 아니라, 이를 가슴과 발까지 끌어내려, 나와 공동체를 연결하여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해 나가는 2차적이고 신앙적인 노력이다.  또한 영성교육은 공동체를 건강한 생명으로 만들어 가는 노력의 과정이다. 인성교육이 ‘나’를 이루는 교육이라면, 영성교육은 ‘나’를 넘어 ‘공동체’를 위하고, 공동선을 이루어 내는 교육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우리학교가 지향하는 ‘영성교육’은 ‘자유’, ‘자발성 교육’을 더욱 심화시켜, 보편적 진리의 말씀과 행동을 우리의 실제 생활에 접목, 적용함으로써 공동선을 지향하는 대안학교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상술한 설명으로 ‘인성’과 ‘영성’에 대한 개념이 정립될 것이며, 그 차별성을 이해하고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안학교 중에서도 ‘영성교육’을 실시하는 학교가 있다. 원불교에서 설립한 많은 대안학교는 ‘마음공부’를 채택하고 있는데, 그 방법도 개인의 변화만이 아닌, 건강한 공동체를 이룩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러한 특색있는 시도는, 교사와 학생들에게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면서, 공동체를 살리는 교육방법으로 일반화 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공식화된 교사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이를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학생들이 15년을 지나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드높여 긍정적인 방향으로 질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경험했다. 물론 미성숙한 학생들의 공동체이기에 아직도 조율하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은 질적으로 사랑과 배려의 마음이 드높여져, 상처 입은 동료들을 치유해 주는 동료로 거듭 태어나는 모습을 우리는 체험하고 있다. 이러한 우리학교의 교육적인 상황 아래서 ‘영성교육’의 정착은 조기에 달성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우리학교가 이제까지 ‘인성교육’을 실천하여 모든 교육적 노력을 개개인을 성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어 왔다면, 이제는 사랑으로 가슴을 움직여 훈훈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영성교육’의 교육혁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이다.
  4) ‘영성교육’의 의미와 나아갈 방향
 
  게임중독과 ADHD 증후군을 유발하는 전자기기의 중독은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SNS로 빠르게 정보가 오고가며 이는 또 다른 청소년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이런 문제를 바르게 잡아나가기 위해서는 ‘인성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영성교육’으로 접근해서, 마음으로 성찰하고 공동체를 위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피도록 도와야 한다. ‘인성교육’보다 한 차원 높은 심성계발을 통해 긍정의 에너지로 공동체를 건강하고 풍요롭게 가꾸는 교육이 ‘영성교육’이다.
  개교 15년을 지내는 우리학교의 학생들은 자치적으로 생활을 리드해 간다. 그렇기에 이런 작업은 주도적으로 감당할 수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유에 대한 훈련을 받았고, 일반학교보다 높은 자율성을 갖고 자치능력을 보여주는 학생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학생 자치회는 자율적으로 저녁 22:00 시에 하루의 마무리를 하면서, 우리학교 선생님이 제작한 ‘양업인들의 생각을 키우는 글살이’ 책자를 펴들고 꼼꼼히 자신을 살펴간다. 교사의 지도가 아닌 학생 스스로 자발적으로 행하는 일과 하루 마무리를 행복하게 진행해 나가고 있다. 우리가 ‘인성교육’으로 이루어낸 ‘좋은학교(Quality School) 양업’이 ‘영성교육‘으로 공동체를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는 학교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5) ‘영성교육’은 미래교육의 또 다른 대안이다

  교육은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을 실현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교육에서 최고의 값을 찾는 방정식이 교육현장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참 값을 만나는 방법이 바로 ‘영성교육’이다. 
  ‘영성교육’이란 용어 자체가 종교적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만, 일반인들이 거부감을 표할 필요가 없다. ‘영성교육’이란 용어를 보편적인 용어로 교육현장에 실질적으로 적용하여, 가난한 이들과 소외받는 학생들에게 향하는 교육, 나아가 공동체를 건강하게 살리는 교육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오늘날 우리 학교는 오랜 동안 고통을 통해 교육의 부활을 체험했다. 개교에서 오늘날까지 학생들의 부정적 행동들은 우리를 실망시켰고, 그런 고통들로 좌절하고 말 것이라며 우리를 절망케도 했다. 그러나 죽음 같은 고통의 좌절감은 죽음이 아닌 생명으로 태어났다. 이것이 우리가 체험한 교육부활이다. 우리학교 교육가족의 ‘교육부활’ 체험은 인간구원을 위해 더 높이 비상해야 한다. 
  우리학교가 직접 체험한 교육부활은 우리들로만 만족하고 기뻐할 것이 아니다. 우리의 교육부활, 우리의 노하우를 공교육에 공급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는 것이 이제는 우리의 또 다른 사명이며, 소임으로 생각해야 한다. 교육현장에서 우리가 경험한 모든 체험들을 종합하고 분석해서 바른 인성교육의 실천과 창의․인성교육의 적용과 나아가 영성교육의 실천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의 사랑과 관심, 배려, 소통이 사람들을 향해 움직이고 그들에게 온전히 전해져서 참된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을 해야 한다. 교육은 교육가족이 힘을 합하여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일련의 연속적인 과정이므로, 결국 행복의 가치를 내재하고 있어야 한다. 경쟁이 아닌 협력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가꾸어 가는 것, 그 안에서 내가 행복할 때 그것이 바로 진정한 사랑의 교육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영성교육’이다.
 

5. 끝내며

  좋은학교(Quality School) 양업의 발전과정을 살피면서, 우리가 경험한 것을 여과 없이 진술하였다. 또한 더 ‘좋은 학교’ 만들기 대안으로 현실요법의 심화를 통한 ‘영성교육’ 실현을 언급하였다. 우리는 ‘소극적 대안’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들을 성장시키는 과정에서 ‘현실요법’이 상담기법으로 좋은 방법임을 확인했고, ‘적극적 대안’으로 활용되었다. 처음부터 우리학교가 채택한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을 학생들에게 적용함으로 자율적이고 자기 주도적으로 ‘바른 인성교육’을 실현했음을 자부한다. 이제 그 ‘인성교육’을 뛰어 넘어 향상된 대안으로 ’영성교육‘을 꺼내들었다. 
  결론으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극적 대안’의 대안교육 현장에서 몸소 사랑을 실천한 결과 우리는 ‘적극적 대안’을 찾아내었다. 교육방법과 교육원리로 자유를 선물하고 현실요법과 교육과정을 통하여 자율성과 자기 주도성을 신장시켰으며, 학생들의 성장과 성숙을 도모하였다. 이것은 헌신적인 희생적 사랑과 끊임없는 존중과 배려라는 생활지도와 상담의 결과이다. 우리학교의 대안교육이 성공하기에는 전 교육공동체의 협력이 녹아있다. 즉 현실요법을 통한 ‘인성교육’은 좋은 학교(Quality School)를 지향하며 학교문화를 개선하고 학교를 명문으로 성장시켰다.
  이제 ‘인성교육’을 뛰어넘는 보다 좋은 대안을 찾는 데 고심해야 할 시점에 왔다.‘인성교육’을 뛰어넘는 또 다른 대안인 ‘영성교육’을 학교현장에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일관되게 지속적으로 펼치고자 한다. ‘나’를 이루는 인성교육 보다 ‘나’를 세우고 뛰어넘어 ‘공동체’를 위하고, 공동선을 이루어 내는 ‘영성교육’으로 새로운 교육혁명을 이루어 내야 한다. 이런 ‘영성교육’은 우리의 학교의 정체성 즉 ‘자유’를 통한 자신의 내적통제와 자발성을 신장시키며 학생들이 ‘목적적 인간’을 살아가도록 노력할 것이다.
  William Glasser 박사의 ‘선택이론과 현실요법’의 심화가 학교 구성원들 간에 구축된다면 ‘좋은 학교’로의 발판이 마련되고, ‘영성교육’으로 진일보하여 행복한 학교로 정착될 것이다. 실제로 본 이론을 교육현장에서 구체적인 교육원리로 채택하여 실천한 결과, 오늘날의 양업고등학교, 교육 수요자가 오고 싶어하는 명문학교가 되었음은 자명하다. 이는 건학의 교육이념의 변질이 아니며, 삶으로 이루어진 값진 결과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