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가이드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386 | 작성일 : 2012년 10월 4일
내가 만난 가이드
지난 2012년 4월, 나는 인도를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 이 여행은 금년 11월에 있을 2학년 학생들의 해외이동수업 관련 답사 목적이었다.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국내선 항공으로 콜카타로, 다시 항공편으로 바라나시로, 그리고 12시간을 밤새 달리는 열차편으로 아그라에 도착, 택시를 이용하여 자이푸르와 델리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쉼 없이 뜨고 내리고 달려서 꼬박 10일을 바삐 여행했다. 여행 가이드 덕분에 편안한 일정이었다.
가이드는 인도 현지인이었다. 잘 생긴 미남형의 그는 29세였고, 해외여행기록만도 50여개 국가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 ‘역마살 끼’ 덕분에 그는 자국은 물론 세계 나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유창한 언어 솜씨로 나를 사로잡았다.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종교 등 모든 분야에 박식했고, 인도의 힌두이즘과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간디 선생님을 닮았다. 나는 그와의 만남이 10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 이유는 내가 그의 자발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삶의 행복한 모습과 창의성이 담긴 모습에서 행복한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모습을 여행할 우리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졌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흔들어 깨울 만큼의 동기부여와 시야를 넓혀주는 일, 그리고 중요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하고, 목표를 갖게 해 주는 일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삶을 위해 방향제시를 해주는 가이드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훌륭한 교사로 삼아 학생들의 미래를 흔들어 깨울만한 동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여행이 끝나면, 학생들에게 소감을 듣곤 한다. 먼저 학생들에게 ‘여행 동안 무엇이 나를 사로잡게 만들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이 중요한 무엇인가를 얻고 돌아왔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그들이 경험한 모든 것들을 되새김질 하도록 하여 인생의 목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세상보기’가 끝난 후 많은 학생들에게 들었던 답은 구태의연했다. 박제되어 진열장에 잘 포장된, 정형화된 교과서스타일의 답을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는 결코 안 된다.
인도의 인상에 대하여 우리는 일반적으로 최빈국 정도로 이해하곤 한다. 그런 인상은 아마도 콜카타의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수녀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세계 세 번째 경제 대국이며, 1차 산업인 농업이 막강해서 미구에 경제부국으로 승승장구 할 나라이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인도를 경제발전의 동반자로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나는 가이드에게 “어찌 한국말을 그리 유창하게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인도인은 한국입국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의 첫 입국 시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의 11시간 구금도 당하고, 어렵게 입국에 성공, 알바하며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생으로 수학을 했습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성적부진으로 1년 후 퇴교 당했습니다. 당시가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저는 이러 저러한 숱한 역경을 딛고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는 프로 근성의 가이드 외에 인도 델리에서 삼성 갤럭시 폰 숍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부산에서는 여행사 간판을 걸고 일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의 역마살이 낀 행보가 세계를 알아갔고, 목표를 향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숱한 해외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 교과서를 통한 탐구로 얻어낸 지식의 통합 점은 그의 목표에 접근하며 미래를 행복하게 열어가고 있었다. 그는 곧 결혼할 것인데, 아내 될 사람은 한국인이며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인생 미래가 아름답게 펼쳐지리라는 믿음이 갔다.
우리 청소년들 대부분은 20대가 다 가도록 목표 없는 공부만 해 댄다. 고작 대학가기가 공부의 목표이다. 코너에 몰리면 그제야 목표가 생긴 양 나도 공무원 시험을 본다며 카드로 꺼내든다. 쓴맛을 보며 나이 30을 훌쩍 넘어서야 인생을 고민하니 불쌍하기까지 하다. 우리 학생을 마미보이, 마미 걸로 만드는 배후에는 부모들이 있다. 자녀들을 아침에 깨우는 일부터 세수와 머리 손질까지, 밥숟갈로 밥을 떠먹여주고, 양말과 옷가지를 신겨주고 입혀주어 학교를 등교시켜주고는, 자녀들은 오르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인데, 목표도 없고 독립심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과연 얼마나 행복한 미래를 열어갈까? 인생은 여행이다. 목표 없이 돈쓰며 나다니지 말라. 그래서 나는 특별히 가이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꺼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양업고, 교장, 윤병훈 신부)
지난 2012년 4월, 나는 인도를 여행할 기회를 가졌다. 이 여행은 금년 11월에 있을 2학년 학생들의 해외이동수업 관련 답사 목적이었다. 인도의 수도인 델리에서 국내선 항공으로 콜카타로, 다시 항공편으로 바라나시로, 그리고 12시간을 밤새 달리는 열차편으로 아그라에 도착, 택시를 이용하여 자이푸르와 델리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쉼 없이 뜨고 내리고 달려서 꼬박 10일을 바삐 여행했다. 여행 가이드 덕분에 편안한 일정이었다.
가이드는 인도 현지인이었다. 잘 생긴 미남형의 그는 29세였고, 해외여행기록만도 50여개 국가라고 말해 주었다. 그런 ‘역마살 끼’ 덕분에 그는 자국은 물론 세계 나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유창한 언어 솜씨로 나를 사로잡았다. 인도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종교 등 모든 분야에 박식했고, 인도의 힌두이즘과 민족주의로 똘똘 뭉친 간디 선생님을 닮았다. 나는 그와의 만남이 10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그 이유는 내가 그의 자발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삶의 행복한 모습과 창의성이 담긴 모습에서 행복한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모습을 여행할 우리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어졌다.
교사의 역할은 학생들이 여행을 통하여 자신을 흔들어 깨울 만큼의 동기부여와 시야를 넓혀주는 일, 그리고 중요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하고, 목표를 갖게 해 주는 일이다. 교사는 학생들의 삶을 위해 방향제시를 해주는 가이드가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그를 훌륭한 교사로 삼아 학생들의 미래를 흔들어 깨울만한 동력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나는 언제나 여행이 끝나면, 학생들에게 소감을 듣곤 한다. 먼저 학생들에게 ‘여행 동안 무엇이 나를 사로잡게 만들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학생들이 중요한 무엇인가를 얻고 돌아왔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은 그들이 경험한 모든 것들을 되새김질 하도록 하여 인생의 목표를 결정하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늘 새로운 ‘세상보기’가 끝난 후 많은 학생들에게 들었던 답은 구태의연했다. 박제되어 진열장에 잘 포장된, 정형화된 교과서스타일의 답을 들었을 뿐이다. 그래서는 결코 안 된다.
인도의 인상에 대하여 우리는 일반적으로 최빈국 정도로 이해하곤 한다. 그런 인상은 아마도 콜카타의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테레사 수녀님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도는 세계 세 번째 경제 대국이며, 1차 산업인 농업이 막강해서 미구에 경제부국으로 승승장구 할 나라이다. 지금의 우리나라가 인도를 경제발전의 동반자로 여기는 것도 이런 이유이다. 나는 가이드에게 “어찌 한국말을 그리 유창하게 하느냐?” 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인도인은 한국입국이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한국의 첫 입국 시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의 11시간 구금도 당하고, 어렵게 입국에 성공, 알바하며 한국어를 열심히 배웠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장학생으로 수학을 했습니다. 생활비를 벌어야 했기에 성적부진으로 1년 후 퇴교 당했습니다. 당시가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저는 이러 저러한 숱한 역경을 딛고 한국어를 배웠습니다.”
그는 프로 근성의 가이드 외에 인도 델리에서 삼성 갤럭시 폰 숍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부산에서는 여행사 간판을 걸고 일하는 사업가로 변신했다. 그의 역마살이 낀 행보가 세계를 알아갔고, 목표를 향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했다. 숱한 해외여행을 통해 얻은 경험, 교과서를 통한 탐구로 얻어낸 지식의 통합 점은 그의 목표에 접근하며 미래를 행복하게 열어가고 있었다. 그는 곧 결혼할 것인데, 아내 될 사람은 한국인이며 일본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의 인생 미래가 아름답게 펼쳐지리라는 믿음이 갔다.
우리 청소년들 대부분은 20대가 다 가도록 목표 없는 공부만 해 댄다. 고작 대학가기가 공부의 목표이다. 코너에 몰리면 그제야 목표가 생긴 양 나도 공무원 시험을 본다며 카드로 꺼내든다. 쓴맛을 보며 나이 30을 훌쩍 넘어서야 인생을 고민하니 불쌍하기까지 하다. 우리 학생을 마미보이, 마미 걸로 만드는 배후에는 부모들이 있다. 자녀들을 아침에 깨우는 일부터 세수와 머리 손질까지, 밥숟갈로 밥을 떠먹여주고, 양말과 옷가지를 신겨주고 입혀주어 학교를 등교시켜주고는, 자녀들은 오르지 공부만 잘하면 된다는 식인데, 목표도 없고 독립심이 부족한 청소년들이 과연 얼마나 행복한 미래를 열어갈까? 인생은 여행이다. 목표 없이 돈쓰며 나다니지 말라. 그래서 나는 특별히 가이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꺼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양업고, 교장, 윤병훈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