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하나됨을 위하여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212 | 작성일 : 2012년 12월 29일

대림 제3주일(12.12.16)                                                    제758호
행복한 하나 됨을 위하여

 구성원 모두가 행복한 하나를 이루기가 쉽지 않다. 남을 생각하지 않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는 세상을 불행하게 만들고 힘들게 한다. 그래서 가정 구성원 사이에도 공통의 하나 된 마음이 부족해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는다.
 우리는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하나 된 행복을 도출하기에는 시도조차 삐걱댄다. 하나 된 행복을 위해서는 구성원이 성숙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결코 이를 실현해 낼 수가 없다. 아주 어린 시절 수학 계산에서 실수를 더하라면 금방 답을 얻었지만, 학년이 오르고 실수가 아닌 분수셈을 만나고서 더하기가 난처해 복잡한 마음이었다. ‘분수를 떤다.’라는 말이 있다. 서로가 분수를 떨면 하난 된 행복을 실현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세상사를 놓고 각자의 마음을 정확한 실수로 표현하면 좋으련만, 각자는 실수를 감추고, 대신 분수 같은 복잡한 생각을 하고 행동으로 옮기니 문제 해결 시작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얼마 전 학교급식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근무자들이 권익보장을 위해 경고성 일일 파업을 단행했다. 이에 대한 학부모들의 반응은 ‘아이들을 볼모로 하는 파업은 있을 수 없다며, 그들을 당장 학교에서 몰아내야 한다.’는 비난을 쏟았다고 한다. 비정규직 종사자들도 소극적 권리를 보장받기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 또한 그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없다. ‘15년 비정규직 급료가 월 100만원’이라, 정규직은 소극적 권리를 법으로 보장받으면서도 비정규직들은 최저 생활비에 미치지 못하고 극한 상황에 내 몰려 지낸다. 자기 자식 한 끼 밥 대신 빵으로 먹인 것을 놓고 학부모가 마음이 상할 수도 있으나, 비정규직 문제의 심각성을 헤아리지 못한 학부모들의 비난 때문에 하루 종일 그들 마음이 우울했을 것이다. 비정규직 종사자들이 문제의 해법으로 일일 파업만으로 해결 될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런 작은 쟁의가 언젠가는 비정규직인 그들도 정당한 처우를 받을 것이라는 희망에서 하는 몸부림이다.  무료급식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조리사의 정당한 권리 주장과 문제해결을 놓고 심각한데 사안을 놓고 더하기를 시도하는 마당에 공통분모도 없이 분수를 떨고 있으니 나도 속이 상한다. 고용자와 피고용자 사이에 건전한 협상 테이블을 놓고 마주 앉아 어른답게 성숙한 자세로 공통분모를 찾는 노력을 보여주었으면 한다. 당장은 문제가 수면 아래에 있지만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면 하나 된 행복이 이루어 질 것이다.
 살아가며 구성원들이 하나 된 행복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린 시절, 산수 시간에 실수를 더해가는 계산은 쉬웠지만, 갑자기 만난 분수 더하기 셈은 조금은 빨리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들 분수를 더할 때면 최소공배수를 공통분모로 하여 통분하고 크기를 똑같이 하는 분수를 만들어 이를 더하면 하나 된 분수의 답이 나온다는 것이 신기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이 셈법은 쉬운 계산이 되었지만, 현실적용에 있어 한 사안을 놓고 합의된 답을 얻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계산이다. 비록 어린 시절은 ‘오지 선다형’의 답을 구하는 셈 정도의 지식에 한정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어른은 지식을 실생활에 응용하여 생명이 되게 하는 법을 실천해야 한다. 어린 시절의 단순 지식은 어른에서는 지혜로 만들어야 한다. 이럴 때 수학을 잘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 된다는 것은 바로 이런 지식과 관련지어 성숙한 해법으로 공통분모를 찾아내는 것이다.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이루는 자연스런 방법으로 이와 같은 공통분모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서로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은, 서로가 살아가며 행복해질 수 있는 공통분모이고, 이가 바탕이 되었을 때 사회는 행복한 하나 됨을 이룰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행복한 하나가 되려고 해도 분수 셈처럼 공통된 밑바탕이 없다면 하나 됨의 시도는 불협화음만 무성할 수밖에 없다.
 공부해서 세상을 행복한 하나 됨으로 실현하도록 하는 노력이 ‘교육’이다. 유치원부터 여러 교과목을 익히는 이유도 어른이 되었을 때 각자의 위치에서 지혜로운 자로 살기 위해서이다. 교육은 공동선을 이루는 공통분모를 찾아 합의된 하나를 먼들 줄 아는 성숙한 인간 만들기 기초를 마련하는 것이다.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의 ‘조화’와 ‘일치’에서 생성된 공통분모를 마련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을 때 사회는 하나 된 행복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