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보기를 통해 탄탄한 생명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570 | 작성일 : 2011년 6월 27일

세상보기를 통해 탄탄한 생명력으로 성장할 수 있다

 ‘과거제’처럼 어제도 오늘도 이 땅의 사람들은 신세를 고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또한 그 몸부림은 정신적 가치를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명예를 얻거나 물질적 부의 가치를 얻고자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간다. 교육인가 하는 것 때문에 국민 모두가 여유라고는 한 치도 없다. 오르지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질 높은 교육을 위한다며 자녀 출산도 하나를 고집한다. 둘이 벌어 하나 밖에 없는 자녀를 최고로 키워보자는 일념 때문이다. 둘이 벌어 한 명의 자녀를 위해 어린이집부터 유치원을 거치며 자녀가 무거운 가방을 끌고 사교육시장을 다니도록 강요한다. 그러다보니 돈을 버는 부모는 부모대로 지치고 자녀 또한 심리적 불안에 시달려 지치게 한다. 서울의 한 학생이 도시를 떠나 우리 학교에 입학을 했다. 그것도 서울 노른자 학생이다. 외아들이라서 얼마나 귀엽게 컸겠는가. 아이가 자라며 청하는 것이면 엄마는 모든 것을 들어주었을 것이다. 이런 학생이 도심을 탈출하여 여유를 부리는 시골 대안학교를 선택하였다.
 이 학생이 입학을 해서 ‘세상보기’를 시작했다. 서울에 있으면 지금쯤 고등학교를 다니며 사교육시장을 서성이며 정신없이 지냈을 것이다. 여기 학교 기숙사는 한 방에 5명씩 잠을 자야 하는 곳으로 친구들과 몸을 비비며 생활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뜻을 맞춰주는 가정이 그리웠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이 학생이 시골의 한 친구 집을 찾았다. 1박 2일의 친구 집 방문에서의 시간은 자기가 생활했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자기는 외아들로 성장했으나 자기가 찾은 친구는 장남으로 동생 넷을 거느리고 있었다. 유순하게 지내는 형제들은 밥을 먹을 때나, 작업을 할 때나, 잠을 잘 때에도 존중과 배려로 불편함이 없이 협동적이었던 것이다. 자기는 누나가 하나 있지만 매일 네 것 내 것 따지며 투정을 부리고 자기 성질을 이기지 못해 싸우기도 하고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었다. 이 친구의 형제들은 많으면서도 사로 다투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며, 자신의 부족함이 없으면서도 투정부리던 내면을 보게 된 것이다. 1박 2일을 지내고 온 아들은 부모에게 “엄마, 내가 잘못 살았어. 친구의 형제들은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며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이 너무나 부러웠어.” “그래, 좋은 것 보고 왔구나.” 엄마는, “제 아들이 양업 학교에 입학한 후 공동체 속에서의 지기관리능력이 훌쩍 컸어요. 양업은 좋은 학교입니다. 아들이 학교생활 속에서 세상보기를 하니 좁아터진 아들이 큼직하게 커가네요.” 그리고는 환하게 웃어 보인다.
 KBS 제1TV 공개홀에서 패널들과 교육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 아들도 출연했다. 사회자가 학생에게 “이번에 학교 현장학습을 다녀왔다고 들었습니다. 어디 갔다 왔나요?” 라는 질문에 그 학생은, “낚시체험하고 왔습니다.” “학생으로 아주 특이한 체험을 하고 왔군요. 어떤 내용을 체험했는지 말해줄 수 있나요?” “네, 제법 잡았습니다. 붕어를 수 십 수 낚아 올렸습니다. 그런데 저는 외향적인 성격에 자제하는 능력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밤새껏 고기를 낚으며 입질을 할 때나 하지 않을 때나 기다리며 바라보는 속에 자제하는 마음의 여유를 낚았습니다. 물고기도 낚았지만 마음을 다스리는 소양을 낚은 것이지요. 하하.”
 우리는 교실에서만 지식으로 배운다고 알고 있다. 교실 밖의, 교과서 밖의 널려있는 지식들을 세상보기 안에서 학생들은 많은 것을 배운다. 남이 손에 지워주는 지식이 아니라 자기가 손수 삶의 현장에서 세상보기를 통해 지식을 알아간다. 이 세상보기 속에 얻은 교육적 감화력은 지식과 결합하여 생명을 이루는 동력으로 기억되고 생명은 튼튼하게 자라간다. 부모는 언제고 자기 자녀를 어린아이로 취급하며 간섭하고 통제한다. 그러나 이미 자녀를 키우고 여유로워진 조부모님들의 생각은 다르다. 바라볼 줄 알고 가다려 줄줄도 알고, 그래서 웃음이 있고 행복하다. 공부하라고 닦달하지 말고 세상보기의 기회를 통하여 스스로가 공부하도록 도와주는 것, 스스로가 홀로서기를 통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 자신도, 부모도 모두에게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