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폭력을 왜 학교폭력이라 하는가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633 | 작성일 : 2012년 3월 1일

                      교육폭력을 왜 학교폭력이라 하는가

 작년 12월, 대구 중학생 왕따로 인한 자살로 사회 이슈화된 학교폭력! 이를 근절키 위한 대책을 정부가 속속 내놓고 있다. 대책은 가해자 학생을 엄히 다루고, 학교에는 그 책임을 묻겠다는 강성책이다. 그러나 과연 꼬여있는 구조적인 악을 해결하는 데 이런 노력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 의문이다.
 학교가 왜 폭력으로 시달리는 양육강식의 현장이 되었는가? 그 원인부터 분명하게 찾아야 한다. 개교 후 내가 처음 만난 학생들은 모두가 문제아처럼 여겼으나, 원인을 알아보니, 강성 부모와 교사로부터 공부를 못한다고 질책을 받아 피해자로 찾아 온 학생들이었다. 학생들은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잠에 취해 있었고, 교사와 학생이 만나는 교실은 텅 비어있고, 그나마 있는 학생들은 졸고 있었다. 밤이 되면 학생들은 야행성이 발동되어 질펀한 술판을 벌렸고, 즐거움과 쾌락적인 행동을 보여주었다. 남학생들은 자기만의 도피처인 PC방으로 달아나거나, 여학생은 화장을 짙게 하고 무단 외출하여 원조교제를 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나는 그들 모습을 보며 문제아로 여겼는데, 그들 속사정을 알고부터는 마음이 아파왔고 내 자신이 자성하기 시작했다.
 과연 부모와 교사가 학생들을 올바로 사랑하며 교육했는가? 기성세대들의 무지한 교육관과 강성 욕심이 학생과 자녀들에게 무자비하게 교육폭력을 자행했음을, 그로 인해 공부를 못해 존중받지 못해 상실감을 갖고 살다가, 이 학교에 찾아 온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부모와 교사로부터 지시 명령, 비난, 언어폭력, 설교 등으로 인해 상처를 입었던 대상이 찾아오는 행복한 학교를 세우겠다고 하면서도 나 역시 교육폭력으로 그 학생들을 대했음을 발견하였다.
 어른 생각으로는 학생이나 자녀에 대한 외적통제가 나름대로 학습동기를 부여하는 게기가 되고 사랑하는 것이라 여기고 있지만, 그런 방법이 결코 아이들에게는 도움이 되질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공부를 따라갈 수 없는 학생을 교사가 선수학습으로 자상하게 돕지 않으면서, 날마다 부모와 교사는 그들을 공부 못하는 문제아로 치부하여 무시하며 비난했고 무거운 설교를 했던 것이다. 학생들이 처음부터 공부를 못한 것이 아니라 아예 교사가 부모가 아이들을 더 이상 공부를 못하게 만들어 버린 가해자였던 것이다. 이런 일들로 관계가 망가진 학생들은 공부를 못하기에 학교가 싫증났고, 스스로 등교거부를 하고 중도탈락을 했던 것이다. 과연 이런 교육폭력의 피해 학생들이 학교가 행복하겠는가. 학교에서 밤 10시까지 꼼짝도 못하게 하고 고문 아닌 고문에 견디는 많은 학생들이 자기만의 즐거움을 만들 방법을 왜 찾지 않겠는가. 동물의 세계에서나 봄직한 약자들을 노려 뺐고 양아치처럼 구걸하고 훔치고, 때리고, 왕따시키고, 힘의 우위를 확보하며 자기 존재감을 드러내려 하지 않겠는가.
 나는 학교폭력이라는 말이 기성세대들의 교육폭력으로 원인이 된 것을 감추고 그 책임을 학생들에게 전가시키려 만든 위장된 용어라는 것을 이제 당당히 말하고 싶다. 기성세대들은 책임을 질 줄 알고 직무유기한 것에 대하여 반성하는 태도로 좀 더 솔직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학교가 책임지고 학생들이 행복해하는 천국이 되도록 만들어 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