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양업을 지키고 게시는 신부님께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362 | 작성일 : 2011년 3월 1일

                        언제나 양업을 지키고 계시는 신부님께

  신부님, 민용이예요. 설은 잘 보내셨어요? 떡국은 드셨고요? 미리 편지를 써 보내드리고 싶었는데 졸업한지 1년이 지나서야 편지를 쓰네요. 저는 며칠 전 할머니 댁에 가서 갈비찜, 민어구이, 매생이국, 북어포무침, 굴 넣은 떡국 등 맛있는 것 많이 먹고 세뱃돈도 두둑이 받고 귀여운 조카들 세뱃돈 주고 왔어요. 겨울이 되고 하얀 눈이 보이니 자꾸만 양업 생각이 나요. 이상하게 양업은 시간이 지날수록 잊혀지지 않고 오히려 더욱 또렷하게 생각이 나네요.
  신부님, 평소에 했어야 할 말, 지금 드려서 죄송해요. 감사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신부님,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학교에서의 즐거움이 신부님으로 인해 존재할 수 있었단 걸 그 때는 잘 알지 못했어요. 화이트 데이 때 방송으로 전교 여학생들을 불러 한명, 한명 예쁜 사탕을 나눠주셨을 때 저희들은 정말 행복했어요. 신부님이 건네주시던 묵직한 사랑의 무게가 그리워집니다. 그렇지만 가끔 중저음 voice로 “애들아, 잔디 밟지 마라! 그러다 다 죽는다.”고 방송을 하실 땐 아이들은 “신부님이 우리보다 잔디를 더 사랑해!”하고 불평을 했었죠. 한밤중 비상식량은 동이 났고 모두가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며 “왜, 야식을 금지시키는 거야 엉엉”하고 굶주린 배를 움켜잡을 때도 있었답니다. 물론 참지 못하고 시켰던 적은 있으나 맹세코 손에 꼽혀요. 후배 녀석들 아침밥 먹으러 오지 않는다며 가서 깨우라고 우리에게 본의 아니게 화를 내실 땐 ‘아침밥을 먹고 말고는 개인의 자유가 아닌가?’하며 투덜댈 때도 있었어요. 돌아보고 나면 우리들을 염려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을 보여주신 행동이 청소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넓게 보지 못하는’ 자기 주관적 관점 때문에 잘 보이질 않았나 봐요. 저는 제가 신부님을 ‘교장신부님’으로만 생각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어색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그런 존재 말이예요. 아마도 그건, 신부님께서 보여주신 성직자의 모습과  한 학교 교장이 갖추어야 할 약간의 카리스마 그리고 지도자의 모습만 대부분 보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참 이상하죠. 졸업식 전날 밤, 새벽 신부님 차례가 되어 편지를 쓰는데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졸업식 날, 신부님이 절 곽 껴안아 주시면서 부드럽고 낮은 목소리로 “졸업을 축하한다.”해 주셨을 때 눈물이 왈칵 났어요. (물론 수술한지 2달도 되지 않은 제 코를 신부님이 당신의 어깨 속으로 꼭 묻어버려서 그랬는지 몰라요? 아 이제 신부님 뵙기가 어렵겠구나, 항상 학교에 계시던 분을 내가 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에 설움이 복 받쳐 안 그래도 붓기 안 빠진 눈으로 펑펑 울었댔죠. 그 뒤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을 껴안으며 보기 흉하게 코를 훌쩍거렸고요. 이번 양업제에 가서 신부님 뵈었을 때 몰라보게 훌쭉해지신 깨진 항아리 몸매를 보고 ‘ 오, 운동 꾸준히 하셨군!’ 하면서도 동시에 걱정이 되었어요. 동기들 역시 너무 훌쭉해지신 것 같다며 힘이 없어 보이신다고 걱정하더라고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신부님, 신부님이 계셔야 양업도 더욱 활기차고 재미있지 않겠어요. 신부님의 솥뚜껑 같은 손으로 악수를 하고나면 제 오동통한 제 손은 한없이 날씬하게만 느껴졌고 한동안 얼얼하기까지 했어요. 그 에너지 아마 지금의 양업을 만들어 내고 양업의 학생들 어여쁘게 멋지게 자라게 했던 것 같아요. 가끔 말썽도 부리지만 활발하고 또래에 비해 배려 심과 생각이 깊은 양업 아이들 정말 멋져요.
  제가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신부님 보약 지어 드릴게요. 저와 다시 만나는 그 날, 그 큰 손으로 제 통통한 손 한번 세게 잡아주세요. 신부님 사랑해요.
  (제10대 학생회장을 역임한 김민용(충북대학교 인문사회대학 심리학과 재학)졸업생이2011 2.7일에 학교장에게 보낸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