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식물과 사람에게서 찾다.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425 | 작성일 : 2011년 3월 1일


영성, 식물과 사람에게서 찾다

  방문을 여는 순간 향기로 가득했다. 난이 꽃대를 세우고 꽃향기를 뿜어냈다. 나는 꽃향기에 흠뻑 취했다. 난이 심겨진 화분은 심한 갈증 상태였고, 영양분도 전혀 없어 보였다. 엄동에 생명이 휴면상태일 텐데도 냉기 서린 방에서 난은 꽃대를 길게 뽑고는 꽃향기를 피워냈다. 나는 예쁜 난 꽃을 보며 생명의 경이로움에 푹 빠졌다. 그리고 칭찬이라도 하듯 나는 난 잎 자락을 쓸어내렸다. “난아, 너는 어찌 이런 향기를 피어냈니, 만물의 영장이라는 나는 귀한 생명을 지니면서도 너 만큼 향기를 내지 못했는데, 오늘따라 내가 부끄럽구나.” 그리고 꽃을 피워낸 향기 나는 난을 보며 ‘영성’의 의미를 생각했다.
  나는 현재교육이 인성교육을 뛰어넘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교육이 진정으로 향기 나는 인간을 만들려면 인성교육만으로는 부족하다. 생명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무엇인가 동력이 있을 법했다. 살아가며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다. 이들이 인성을 뛰어넘는 비결이 무엇인가? 한 생명이 고통을 극복하고 드러내준 꽃향기를 맡으며 나는 이를 ‘식물이 보여준 영성’이라고 하고 싶다. 그 ‘영성’의 의미를 난 속에서 찾고 기뻐하면서, 그것처럼 ‘사람이 보여준 영성’의 의미를 찾아본다.
  최근 ‘울지마, 톤즈’라는 영화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해준 주인공이 있다. 고(故) 이태석 신부님의 삶에서 우리는 진정한 인간의 향기를 맡을 수가 있었다. 청소년 시절, 최고의 엘리트가 예수님과 접목되어 자신을 철저히 비우기 시작하고, 가난한 아프리카 수단 땅에 삶의 둥지를 틀었다. 한센 병으로 신음하는 암울한 톤즈 사람들에게 자신을 아낌없이 내어준 신부님의 사랑으로 생명의 부활을 이루어 냈다. 그의 죽음 앞에 예수님의 생애가 인간구원을 위해 마냥 슬펐던 것처럼 그분도 그랬다. 신부님은 온전히 자신을 비우고 또 비우면서 병고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생명이 되어 주었고, 그가 남겨준 생명은 생생한 부활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신부님은 예수님께로 향한 믿음과 신앙고백으로 열정의 생을 불살랐다. 가히 초월적 삶을 사신 신부님에게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영성’을 더 잘 보았다. 
  인간이 초월적 존재인 그분과 인격적인 만날 때 인간은 더욱 품격 높은 인간이 된다.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은 우리도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고, 생명을 나눌 수가 있고, 자신을 철저히 비울 수 있다는 삶의 확신과 희망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난이 열악한 환경이지만 고통을 극복하고 생명을 피울 때 초월적인 힘을 볼 수 있으며, 그 안에서 영성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고 이태석 신부님은 예수님의 삶을 자신에게 접목시키며 가난한 자들의 생명과 구체적으로 직면했다. 그를 통해 발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는 삶의 동력으로 우리를 변화케 하고  생명의 기적을 이어간다. 사람들은 그가 남긴 아름다운 향기에 취하고 싶어 한다. 사람들에게 신앙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에게서 예수님을 만나게 하며 하느님을 보는 표지가 되어 우리를 하느님께로 인도한다. 많은 이들의 기복적 신앙생활을 행동하는 실천적 신앙으로 일깨워주고 있다.     
  우리도 신부님처럼 예수님을 닮아 살 수 있다. 인간의 궁극적 목적을 알게 하고, 썩어 없어질 재물이 목적이 아님을 신앙교육에서 알아가야 한다. 부정한 욕심과 윗자리에서 교만을 떨던 사람들에게 신부님은 진정한 회개를 촉구한다. 인생길에서 예수님을 만나 영원한 생명을 위해 성실히 사신 신부님은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피어나 우리들 마음 안에서 부활한다. 
  척박한 환경에서 피어낸 난을 보고 취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척박한 환경에서 가난한 생명과 지낸 신부님의 삶을 보고 취하고 싶은 이유가 있다. 생명의 영성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교육은 종교교육에 접목된 영성교육이어야 한다는 결론적 주장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