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안나푸르나를 향한 산행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3,805 | 작성일 : 2011년 12월 24일
네팔 안나푸르나를 향한 산행
2011년 11월 26일부터 1학년 40명과 5명의 교사는, ‘창의, 인성교육으로 학업성취도 향상’이란 학교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네팔 해외 이동수업’을 진행했다. 이 세상보기는 학생들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며 궁국적으로는 자신의 학업성취를 잘 실현하기 위함이다.
네팔의 브랜드는 에베레스트를 포함하여 8000미터 이상 14개의 봉우리이다. 비행기가 네팔 상공을 접근하자 ‘눈이 산다는 곳’ 히말라야가 한 눈에 들어왔다. 순간 저 산의 신비스러움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심장이 뛰었다. 우리 일행은 포카라 베이스 캠프 호텔에서 1박을 하며 산행준비를 끝내고, 네팔에서는 제법 잘 생긴 버스로 트레킹 출발지인 Dhampus(H.1650)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20명씩 두개조로 나누어 다른 출발지에서 안나푸르나를 향해 첫 걸음을 떼었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료들이 있기에 걷기 시작했고, 여섯 시간을 걸어 첫 숙소인 Deurali(H.2100) 에 무사히 도착해 1박을 했다.
날이 밝고 또 다시 걷기 시작했고, 계곡바닥에 서자,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녹슨 심장이 순간 뚫리는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가파른 산을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고. 평탄한 길과 계곡 바닥을 지나면서 콧노래가 나왔다. 그 날도 실히 여섯 시간을 걸었다. 도착한 곳은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로 들어가는 관문 격인 Chhomrong(H.2170)이었다. 오후시간은 히말라야가 짙은 운무(雲霧)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포터와 셰르파는 산악인들의 은인으로, 산판을 날아다니며 산악인들을 도우며, 우리가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입에 맞는 식단과 숭늉을 준비한다. 별밤의 새벽과 일출, 그리고, 조명을 받은 산은 트레킹의 동력이었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Annapurna South(H.7219), Machhapuchhre(H.6993)는 장관이었다. 그곳에서 이틀을 가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H.4130)에 이른다고 했다. 그곳을 보지 못하고 촘롱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삼일 째 산행이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낙오자 없이 여전히 똑같은 속도로 아무 부담 없이 걸었다. 촘롱 출발지에서 저 멀리 도차지라고 하는 Tadapani(H.2680)가 보였다. 그 숙소를 목전에 두고 휴식하였는데, 점심식사 메뉴는 라면이다. 라면 맛이 특별하다. 그날 숙소는 짙은 운무와 질척이는 습기로 찝찝해 잠을 설쳤다. 다음 날에는 Ghorepani(H.2860)에서 묶었는데 그날 저녁 메뉴는 토종백숙이었다. 육질 맛이 끝내주었다.
새벽 5시 Poonhill(H.3210)을 1시간 정도 산행을 하여 올랐다. 우리가 네팔 이동수업에서 오른 최고봉인 셈이다. 그날도 운무에 명산들은 가려있었다. 실망의 빛으로 있는데 갑자기 무리 속에서 함성이 터졌다. 구름 사이로 설산(雪山)의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한 부분, 또 한 부분, 그러다가 히말라야 전체의 설산을 보여주었다. 감동, 또 감동,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 우리가 있던 덕분으로 누리는 하느님의 축복과 은혜로움이었다. 이번 산행의 절정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감격했고, 자신이 자신을 극복했다. 그 힘든 산행을 이겨냈고, 내 인생길에게 에너지가 되었음을 보게 되었다. 산행 중 마주친 한국인 등산객들은 우리 학생들을 칭찬했다. “너무 의젓하고 인사도 잘하고 멋있는 학생들입니다. 어디 학생입니까?” 교육목표처럼 우리 양업인들은 미구에 네팔의 명산만큼이나 큰 사람 되어 있을 것이고, 시대에 걸 맞는 글로벌 인재로 우뚝 서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히말라야 8천고지 이상의 14좌처럼, 새벽을 알리는 하늘의 영롱한 별처럼 우리 학생들은 세상 속에 빛날 것이다. 벌써 그들 안에서 곧 큰 산을 볼 것이라는 마음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2011년 11월 26일부터 1학년 40명과 5명의 교사는, ‘창의, 인성교육으로 학업성취도 향상’이란 학교 교육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네팔 해외 이동수업’을 진행했다. 이 세상보기는 학생들이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만들어 가기 위한 노력이며 궁국적으로는 자신의 학업성취를 잘 실현하기 위함이다.
네팔의 브랜드는 에베레스트를 포함하여 8000미터 이상 14개의 봉우리이다. 비행기가 네팔 상공을 접근하자 ‘눈이 산다는 곳’ 히말라야가 한 눈에 들어왔다. 순간 저 산의 신비스러움을 더 가까이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심장이 뛰었다. 우리 일행은 포카라 베이스 캠프 호텔에서 1박을 하며 산행준비를 끝내고, 네팔에서는 제법 잘 생긴 버스로 트레킹 출발지인 Dhampus(H.1650)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20명씩 두개조로 나누어 다른 출발지에서 안나푸르나를 향해 첫 걸음을 떼었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동료들이 있기에 걷기 시작했고, 여섯 시간을 걸어 첫 숙소인 Deurali(H.2100) 에 무사히 도착해 1박을 했다.
날이 밝고 또 다시 걷기 시작했고, 계곡바닥에 서자, 만년설이 녹아 흐르는 물소리가 땀을 식혀주고 있었다. 녹슨 심장이 순간 뚫리는 시원함을 느끼게 했다. 가파른 산을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고. 평탄한 길과 계곡 바닥을 지나면서 콧노래가 나왔다. 그 날도 실히 여섯 시간을 걸었다. 도착한 곳은 안나푸르나 베이스 켐프로 들어가는 관문 격인 Chhomrong(H.2170)이었다. 오후시간은 히말라야가 짙은 운무(雲霧)에 가려 볼 수가 없었다. 포터와 셰르파는 산악인들의 은인으로, 산판을 날아다니며 산악인들을 도우며, 우리가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입에 맞는 식단과 숭늉을 준비한다. 별밤의 새벽과 일출, 그리고, 조명을 받은 산은 트레킹의 동력이었다. 바로 눈 앞에 펼쳐진 Annapurna South(H.7219), Machhapuchhre(H.6993)는 장관이었다. 그곳에서 이틀을 가면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H.4130)에 이른다고 했다. 그곳을 보지 못하고 촘롱을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삼일 째 산행이다. 학생들도 선생님들도 낙오자 없이 여전히 똑같은 속도로 아무 부담 없이 걸었다. 촘롱 출발지에서 저 멀리 도차지라고 하는 Tadapani(H.2680)가 보였다. 그 숙소를 목전에 두고 휴식하였는데, 점심식사 메뉴는 라면이다. 라면 맛이 특별하다. 그날 숙소는 짙은 운무와 질척이는 습기로 찝찝해 잠을 설쳤다. 다음 날에는 Ghorepani(H.2860)에서 묶었는데 그날 저녁 메뉴는 토종백숙이었다. 육질 맛이 끝내주었다.
새벽 5시 Poonhill(H.3210)을 1시간 정도 산행을 하여 올랐다. 우리가 네팔 이동수업에서 오른 최고봉인 셈이다. 그날도 운무에 명산들은 가려있었다. 실망의 빛으로 있는데 갑자기 무리 속에서 함성이 터졌다. 구름 사이로 설산(雪山)의 그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한 부분, 또 한 부분, 그러다가 히말라야 전체의 설산을 보여주었다. 감동, 또 감동,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에 우리가 있던 덕분으로 누리는 하느님의 축복과 은혜로움이었다. 이번 산행의 절정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감격했고, 자신이 자신을 극복했다. 그 힘든 산행을 이겨냈고, 내 인생길에게 에너지가 되었음을 보게 되었다. 산행 중 마주친 한국인 등산객들은 우리 학생들을 칭찬했다. “너무 의젓하고 인사도 잘하고 멋있는 학생들입니다. 어디 학생입니까?” 교육목표처럼 우리 양업인들은 미구에 네팔의 명산만큼이나 큰 사람 되어 있을 것이고, 시대에 걸 맞는 글로벌 인재로 우뚝 서있으리라고 확신한다. 히말라야 8천고지 이상의 14좌처럼, 새벽을 알리는 하늘의 영롱한 별처럼 우리 학생들은 세상 속에 빛날 것이다. 벌써 그들 안에서 곧 큰 산을 볼 것이라는 마음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