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도덕이 영점인 사람
작성자 : 윤병훈 | 조회수 : 4,266 | 작성일 : 2009년 12월 2일
생활도덕이 영점인 사람
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사람과 동물의 비교행동에 관하여, “사람이 동물이면서도 사람인 이유는, 부끄러워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인간은 인격을 갖추어 간다.” 라고 말한다. 동년의 2세 된 어린이와 침팬지의 행동 비교 연구과정에서, 어린이와 침팬지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침팬지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반면에, 어린 아이는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이내 잘못을 후회하고 울음을 터트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 금전을 취할 때는 좋아라하면서 여기면서, 그 일이 노출되기라도 하면 그것이 뭐가 잘못된 일이라며 대들기까지 한다. 반성의 여지가 전혀 보이질 않고, 사건 제보자에게 문자를 날려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포한다.
한 학생이 ‘호주 가톨릭 세계청소년대회’(2008년)에 참석하여 전 세계 학생들과 여러 번 잠을 자며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때 참석하고 돌아 온 학생의 이야기이다. “유럽에서 온 학생들은 분실물이 있을 경우, 남의 물건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분실된 지갑은 여러 날 동안 똑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인이 쉽게 찾아가도록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질 않을 것 같습니다. 은근슬쩍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시치미를 떼겠지요. 선진 시민이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직’이란 덕목을 생각해 보자. 이는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데 아주 중요한 기초덕목 중 하나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직이란 기초덕목을 종속적으로 꾸준히 보고 배우며 학습될 때, 훌륭한 생활도덕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생활도덕이 형성되지 않는 청소년들은 남의 재물에 손을 대고도 일관되게 도리 짓만 하는 것도 문제고, 탄로가 나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을 만큼 부끄러움도 없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놀란다. 이는 ‘청소년들 자신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자녀에게 정직의 덕목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부모에게도 잘못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주머니에 손을 대고 돈을 꺼내 쓰던 버릇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습관화된 연유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런 경우는 매우 고치기 힘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중병’이리라.
여전히 문제가 생기면 부모들은 내 자식만 중요하지, 남의 자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남이 잘 못하면 용서라는 기초덕목도 없어 원칙의 잣대를 들이대고, 용서를 바라는 부모는 책임이라는 기초덕목을 소홀이 하고 있기에 교육현장은 더욱 어렵다. 사실 공동체에서는 건전한 생활도덕이 유지되어야 한다. 가해자가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공갈 협박하는 상황도 주변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일단은 문제청소년을 집단상담내지는 심리학적 치료를 계속해서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본다.
기초덕목인 정직을 청소년들이 벌써부터 어기는 원인이 성인들에게 더 큰 문제여서 그 잘 못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정치 권력자들도 정부 인사들도, 공무원들도 쉼 없이 국민들에게 정직을 어기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국민 앞에 큰소리를 치는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뭘 보고 기초덕목을 종속적으로 연결시키며 생활도덕을 형성해갈까 심히 걱정이다.
정직과 약속의 연속에서 ‘신뢰’가 생겨난다. 정직과 약속이 끊임없이 파기되는데, 어찌 신뢰를 바라는가. 가정경제가 중요해서 부모가 일터로 나간 후 돈이 곧 덕목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배우고 자라난 청소년들은 정직, 약속, 용서, 배려, 책임, 등 기초덕목들 하나 둘 병들어 간다. 경제를 살린답시고 온통 경제적 효율성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합의에 의해 도출된 원안이 파기되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들로 인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우리네 생활도덕은 병들어 간다. 원칙을 말하는 국민들과 잘 못을 합리화하여 몰고가려는 사이에 권력을 진 자들이 위화감을 조성하고 이러고도 국민 앞에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지도자들이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왜 깊이 성찰하지 않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한 심리학 연구에서는 사람과 동물의 비교행동에 관하여, “사람이 동물이면서도 사람인 이유는, 부끄러워할 줄 알기 때문이다. 그것 때문에 인간은 인격을 갖추어 간다.” 라고 말한다. 동년의 2세 된 어린이와 침팬지의 행동 비교 연구과정에서, 어린이와 침팬지가 똑같은 잘못을 저질렀을 때, 침팬지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반면에, 어린 아이는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이내 잘못을 후회하고 울음을 터트린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남의 물건에 손을 대 금전을 취할 때는 좋아라하면서 여기면서, 그 일이 노출되기라도 하면 그것이 뭐가 잘못된 일이라며 대들기까지 한다. 반성의 여지가 전혀 보이질 않고, 사건 제보자에게 문자를 날려 가만두지 않겠다며 엄포한다.
한 학생이 ‘호주 가톨릭 세계청소년대회’(2008년)에 참석하여 전 세계 학생들과 여러 번 잠을 자며 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때 참석하고 돌아 온 학생의 이야기이다. “유럽에서 온 학생들은 분실물이 있을 경우, 남의 물건에 전혀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분실된 지갑은 여러 날 동안 똑같은 자리에 놓여 있었습니다. 주인이 쉽게 찾아가도록 했던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질 않을 것 같습니다. 은근슬쩍 자기 주머니에 넣고는 시치미를 떼겠지요. 선진 시민이 무엇이 달라도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정직’이란 덕목을 생각해 보자. 이는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데 아주 중요한 기초덕목 중 하나이다. 어린 시절부터 정직이란 기초덕목을 종속적으로 꾸준히 보고 배우며 학습될 때, 훌륭한 생활도덕을 갖추게 된다. 그런데 생활도덕이 형성되지 않는 청소년들은 남의 재물에 손을 대고도 일관되게 도리 짓만 하는 것도 문제고, 탄로가 나면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을 만큼 부끄러움도 없다는 점에 많은 이들이 놀란다. 이는 ‘청소년들 자신의 문제’라고 보기에는 자녀에게 정직의 덕목을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은 부모에게도 잘못이 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의 주머니에 손을 대고 돈을 꺼내 쓰던 버릇이 끊임없이 반복되며 습관화된 연유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이런 경우는 매우 고치기 힘든 ‘부끄러워할 줄 모르는 중병’이리라.
여전히 문제가 생기면 부모들은 내 자식만 중요하지, 남의 자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남이 잘 못하면 용서라는 기초덕목도 없어 원칙의 잣대를 들이대고, 용서를 바라는 부모는 책임이라는 기초덕목을 소홀이 하고 있기에 교육현장은 더욱 어렵다. 사실 공동체에서는 건전한 생활도덕이 유지되어야 한다. 가해자가 잘못에 대한 부끄러움도 없다는 것도 문제지만 공갈 협박하는 상황도 주변을 더욱 곤혹스럽게 만든다. 이를 어찌해야 할지. 일단은 문제청소년을 집단상담내지는 심리학적 치료를 계속해서 바로 세워야 한다고 본다.
기초덕목인 정직을 청소년들이 벌써부터 어기는 원인이 성인들에게 더 큰 문제여서 그 잘 못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힘들다. 정치 권력자들도 정부 인사들도, 공무원들도 쉼 없이 국민들에게 정직을 어기고도 부끄러워 할 줄 모르고 국민 앞에 큰소리를 치는 것이 현실이다. 청소년들이 가정에서 사회에서 뭘 보고 기초덕목을 종속적으로 연결시키며 생활도덕을 형성해갈까 심히 걱정이다.
정직과 약속의 연속에서 ‘신뢰’가 생겨난다. 정직과 약속이 끊임없이 파기되는데, 어찌 신뢰를 바라는가. 가정경제가 중요해서 부모가 일터로 나간 후 돈이 곧 덕목이라는 잘못된 사고를 배우고 자라난 청소년들은 정직, 약속, 용서, 배려, 책임, 등 기초덕목들 하나 둘 병들어 간다. 경제를 살린답시고 온통 경제적 효율성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 사이에, 합의에 의해 도출된 원안이 파기되고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일들로 인해 서로를 불신하게 만들고, 그로 인해 우리네 생활도덕은 병들어 간다. 원칙을 말하는 국민들과 잘 못을 합리화하여 몰고가려는 사이에 권력을 진 자들이 위화감을 조성하고 이러고도 국민 앞에 부끄러워 할 줄 모르는 지도자들이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고 있음을 왜 깊이 성찰하지 않는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